소나무(시와 시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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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강위덕
바위와 바위 사이
바위처럼 변해 있는 소나무 한 구루 서 있다
마치 돌의 몸이 기억하는 어떤 기호가
나무이면서 바위에 접골 돼 바위의 척추가 되어 있는 듯
대체 얼마나 오랜 세월 바위에 끼어있으면 저런 무늬를 띄는 것인지
200년도 넘었을 조선 왕조 때
두 개의 바위는 본래 한 개의 바위였다
소나무 씨알 하나 이 바위에 떨어져
소나무로 자라 뿌리를 내리고
그 질긴 근가락으로 그 큰 바위를 두 개로 쪼개었다
이제는 바위와 바위 사이 그 부조(浮彫)는 암각화(岩刻畵) 같지만 내재율의 두근거림이
동계(動悸)의 물결처럼 그렇게 흐르고 있다
해설
돌아가신 아버지를 모신 선산은 소나무 숲 속입니다.
그 숲속 나무들은
노년의 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허리를 펴지 못하고
비스듬히 혹은 구부정히 서 있고
그러한 허리춤에는 깊이 팬 상처들이 있습니다.
그런 소나무를 보노라면 저절로 미간이 오그라듭니다.
끔찍했던 옛일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소나무들의 상처는 일제 식민지시대에 있었던 박해의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태평양전쟁 말기에 우리의 숟가락 밥그릇까지 빼앗아
전쟁 무기의 재료로 썼고
전국방방곳곳의 소나무에 칼질을 하여
송진을 채취해 선박연료와 항공 연료로 썼습니다.
그럼에도 독야청청의 푸른 잎과
얼어붙은 흙속의 질긴 뿌리는 바위와 추위를 움켜잡고 우뚝 서 있습니다.
공기가 희박한 산꼭대기에서는
산소를 찾아 아래로 뻗어나가는 가냘픈 가지를 보노라면
마치 간절함을 외치는 인간들의 언어와 비슷합니다.
언어는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가리키듯
지시하기 위한 도구라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을 뒤집어엎은 사람은
스위스의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1857-1913)입니다.
소쉬르는 대상이 먼저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먼저 있다고 말합니다.
마치 성경말씀 같습니다.
성경에도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성경적 개념이 아니더라도
언어가 없다면 만물이 존재한다고 하여도 무용지물입니다.
있으나 마나입니다.
만일 강위덕이라는 말이 없다면 사람들이 나를 구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나무들 중 소나무처럼 생긴 소나무의 시니피앙은 소나무입니다.
소나무의 뿌리는 어떤 다른 나무보다도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돌바닥에 떨러진 소나무의 씨알하나가
집 둥치만한 바윗돌을 둘로 쪼갭니다.
소나무의 시니피앙을 겨냥한 오늘의 시는
언어의 혁명을 부르짖으며
아카데메이아의 숲을 맨발로 걷던 플라톤의 모습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 티마이오스는 도발적인 씨앗의 원형이라고 말합니다.
소크라테스도 그의 스승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험준한 길을 걸어갑니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의 돈 많은 친구입니다.
그는 사형을 언도받고 갇혀 있는 소크라테스의 탈옥을 설득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일연지하 친구의 도움을 거절합니다.
아테네의 항복으로 끝난 전쟁후의 소용돌이에서 결국 사형을 당했지만
그 이름과 교훈은 현대를 살아가는 문명 속에서도 뜻있는 사람들의 뿌리가 되고 있습니다.
기호는 바로 태생입니다.
언젠가 소나무의 기호가 나의 날개 쪽지에 힘을 주는 기회가 주어지는 때,
바로 그때는 내 마음에 원점이 성립되는 날입니다.
원점이 벡터 값을 가지면 원심이 되는데
고무 새총이 돌멩이를 날린 후에
빈 가죽보만 남듯이
마음이 소진되면 그 자리엔 제로가 소환되고
바로 제로의 그 자리에 분기탱천이 솟아난다는 원리입니다.
요사이 과학자들은 적은 것을 연구하는 학문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제로의 개념도 화학물질과 관계가 있다고 보는 학문일 것입니다.
세포의 기본단위인 원자는 크기가 1밀리미터의 천만분의 1입니다.
미세 전자 현미경으로는 볼 수도 없고
전파 전자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미세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적은 원자 하나가 사람이라는 생물체의 분모가 되어
인간 우주의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적은 씨앗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 적은 씨앗하나가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적은 일에 진지한 오늘의 문명은 적은 것이 세계의 양심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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