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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병에 담긴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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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병에 담긴 바다
강위덕
 
고장 난 가로등처럼 길 모서리에 사내가 서 있다
그 어깨엔 사막을 건너온 바람 냄새가 난다.
잃은 개 찾는 광고처럼
그의 가슴엔 전단지가 붙어 있다
 
homeless hungry help
 
지나던 여인이 물 한 병을 건네자
그 사내는 마개를 따서 꿀꺽 꿀꺽 두어 모금 마시더니
머리 꼭대기에 대고 물을 쏟는다.
메말랐던 온몸의 지느러미에 물의 감촉이 흐른다.
그는 지금 바다 속으로 다이빙하고 있다
꼬리지느러미를 활발히 흔들며
언어(言語) 이전으로 헤엄 친다.
흐늘거리는 랜덤함수가 궤도를 이탈한다.
일으켜 세울 수 없는 뿌리 약한 숨소리가
수식이 필요 없는 <무>의 소멸과 맞닿아 있다
 
 해설
 요사이 시인들끼리 모여 시에 다하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서럽고 부당한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감흥은 제쳐놓고라도

소통조차 안 되는 언어로 머리를 굴려 만든 시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교과서마저도 그런 시들이 순수 서정시를 대체 해 가고 있습니다.

순수 서정시는 도대체 먹히지 않는 시단과 평단에 대해

대다수 시인들은 아예 체념을 넘어 패닉 상태에 빠져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학 강단이나 젊은 시인들의 연구와 실험 시,

서구 이론이나 사회과학에 갇힌 시,

몸으로 쓰는 시가 아니라 머리로 짜낸 시,

체험이 아니라 이론이나 학습에서 나온 시가 대접을 받는 풍토에

시인들은 진작부터 분통을 터트리다가 이제는 아예 포기 해버립니다.
 인간은 개방적인 존재로서 공동성과 통일성에 그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이야기하거나

시에 대해 담론을 나눌 때 시인의 통일성에 의해서만 변호됩니다.

그럼에도 플라톤은

그의 관념론에서 헬라의 합리주의와 동양의 심비주의를 종합해나간 사건은

당대 단편적인 변증법적 방법으로

사물을 해석해 온 플라톤으로 서는 일대 큰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올 들어 이른 세살에 접어든 나로서도

나이에 걸맞은 취향과 입맛의 흐름을 탈피하고

현대공간의 무한을 느끼며

파스칼이 보았던 공간속으로 나의 시상을 올려놓는 것은

기적의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적이라는 언어는 죄가 되지 않는 범죄 행위입니다.

몰상식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상식을 벗어나는 순리의 역행은 다 범법행위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현재 73으로 살지 않고

37로 살아가는 죄를 짓고 있는 셈입니다.

노장 적으로 말하자면 무(無)라고 하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짙은 향수를 깔아놓고 살아간다는 뜻이겠지요. 

나이가 번질까봐 아예 테두리를 만들어 나의 생활권 바닥에 내려놓고  그 속에서 살아갑니다.
 저는 가끔 동료 시인들로부터

특히 시인은 아니지만 독서광인 저의 아내로부터

시를 쉽게 쓸 수 없느냐하는 권고를 받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미끄럼 기계를 타고 미끄러지듯

살짝 답례로 빠져 나갑니다.

사실 나는 매번 다시 태어나는 언어적 실천을 통해

의미에서 무한으로 무한에서 무로 치달으며

시의 본령을 확인하고자, 온갖 통념을 거부한 바로 그 상태로

그 짧은 순간을 수학적 사유에 의지해 적시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시의 재료인 언어의 창출은 현재 진행 중일 따름이기 때문에

익숙해진 협약이나 통념을,

그리고 사유의 감옥을 부수어 나가는

비판의 방법조차도, 개의치 않는 지도 모릅니다.
 철학이란 보는 일을 고쳐 배우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철학지망생이 애인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죽음이 무엇인지를 알기위해 죽어보아야겠다고 말했습니다.

애인은 어차피 죽을 요랑 이라면

소설에나 나옴직한 절벽의 투신이 어떠냐고 재안했습니다.

남자애인은 놀랐지만 그대로 하기로 하였습니다.
 
두 데이트,
 
두 청춘남녀는 서로 서로를 하나로 동여매고

높이 10cm의 돌로 된 절벽으로 뛰어 내렸습니다.

두 청춘남녀는 그 이후 50여 년간 꽁꽁 묶인 체

궤도를 이탈한 랜덤 함수의 값을 찾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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