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을 실은 겨울 해변 (시와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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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을 실은 겨울 해변
강위덕
기어이 끊어낼 수 없었던 죄의 탯줄을 깊은 땅에 묻고 돌아선 날의 기억들처럼 찬 서리를 기억해 내는 막막한 벌판에 겨울의 밤이 열리고 있습니다. 귀뿌리에 대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던 가을이 놀란 토기, 오줌 싸고 도망가듯 겨울 소식에 화들짝 놀라 심장에 낙엽을 흩뿌리고 줄행랑을 쳤던 가을이 이제는 세상을 포기한 듯 겨울의 눈송이에 하얗게 묻혀 가고 있습니다 장대비 내리던 여름날 예쁜 꽃신이 떠 내려와 모래밭에 발자국을 남긴 것처럼 조난당한 사람이 죽기 전 깨알 같은 편지를 담은 푸레첸포스트가 병속에 사연을 싣고 오랜 세월 바람 따라 물결 따라 대양을 떠돌다 살 그리운 몸 노래기처럼 해변에 발자국을 남기니 생명을 앗아간 사연의 조그만 병은 초가집 모서리처럼 순해져 있었습니다
흉년에 주린 노인들과 사랑에 주린 젊은이들이 눈길을 해맬 때 가게 되는 곳, 눈 내리는 해변에는 이미 수많은 사연들이 거기에 와 있었습니다.
<감상>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봅니다.
그 시간들을 후회하듯이,
후회의 언어들을 기억해봅니다.
그 언어들이 주인을 잘못 만나 주인을 힐난하는 눈빛입니다.
수천, 수만 개의 언어의 눈들이 무서움으로 다가서는 순간입니다.
그 눈들에게
‘그래도 내가 살아온 냄새,
색깔, 소리들인데 어떻게 하냐?’라고 겨우 달래가면서
내 지나간 시간의 흔적들을 건져 올립니다.
”고향, 그곳의 가난, 그 가난과 평생을 함께한 ‘노모의 깊은 주름살’,
그리고 그 가난의 상징인 올챙이 국수가 높은 밀도로 긴밀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것들이 ‘저문 산 그림자 결무늬’와 연결된 하나의 이미지로 어우러졌다가 종래에는
‘붉은 한 점 허공의 무게가’ ‘깊은 허기로 내려앉습니다.
참 숙연해지는 가난과 슬픔입니다.
화려한 수사나 꾸밈이 없기에 오히려 언어의 조합이 찰지고 깊이가 더 느껴집니다.
단단하고도 묵직한 시어들에 의해 가난의 슬픔 속에서도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마치 아기가 태어나 자연스럽게 어머니 젖을 빠는 행위처럼
그것은 이미 자연의 섭리로 어머니의 뱃속에서 각인된 서정들입니다.
정교한 톱니바퀴와 같이 고도로 문명화된 기계적 사회에 살아가고 있지만
고향과 어머니라는 구심력은 늘 작동되고 있으며,
그것은 변치 않은 진리입니다.
시인이 자신의 지나온 흔적들을 건져 올려 쓴 시들은
고스란히 인간의 구심과 구원에 관한 것들입니다.
시인의 시는 곧 그 근원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시를 읽는 것은 흥미본위가 아니라
삶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삶의 어느 순간 홍수처럼 범람해오는 자신의 감정을 돌이켜 보고,
이기기 힘든 고통과 슬픔을 위로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시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고
세계를 둘러보는 일이기도 한데,
나와 세상을 이어주고
나를 나의 내면으로 이끄는 길이 되어줍니다.
때로는 오히려 슬픔을 더 깊게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게 위로가 되고
그곳에 바로 시의 힘이 있습니다.
조난당한 자의 깨알 같은 푸레첸포스트가
100년이 지난 어느 날
문자가 다른 외딴 나라의 해변에 발자국을 남겼을 때
수신자는 이미 이 행성을 떠난 지 오랜 후였을 것입니다.
뉴욕에 살 때 겨울이 되면 존스비치에 종종 가보곤 했습니다.
눈 내리는 대서양의 해변에는 80살도 넘었을
노부부가
빵가루를 한 봉지 가지고 와
겨울의 갈매기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갈매기는 그 노인들을 알고 있었던 듯
손바닥에 앉기도 하며 빵가루를 입에 물고는
다른 갈매기와 교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지금쯤은 그 노인들도
이 행성을 떠난 지 오래 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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