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빛과 그림 /이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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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그림 / 이연희
눈부신 햇살이 내방 가득 쏟아졌다. 화사하게 반짝이는 그 빛을 따라 하늘을 보니 넓고 맑은 창공은 호수인양 푸르다. 내 마음은 한 마리 학이 되어 호수 위를 나른다. 다시 방안을 본다. 여전이 빛나는 햇볕은 따뜻한 행복을 내게 안겨 주고 있다. 바쁜 시간들이 지나고 집에 돌아올 가족들을 기다리면서 오늘도 하루가 저문다. 무심코 쏟아지는 햇빛 저편의 해지는 석양을 본다. 횐 구름, 먹구름, 보라구름, 노란 구름, 분홍색 구름으로 예쁜 언덕의 나무들 그리고 산들이 펼쳐 있다. 보기 드문 하늘 그림에 나는 그만 와... 하고 소리쳤다. 저 하늘 좀 보라고 누구든 부르고 싶었다. 그러나 집에는 나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시진을 찍으면 된다고 얼른 핸드폰을 꺼내어 구도를 잡아보니 어림도 없는 먼 거리였다. 할 수 없이 스케치라도 하고 싶어 도구 룰 찾다가 그것마저 여의치 않아 초초하던 마음은 무력하게 퇴보된 자신을 발견 하면서 현실을 받아들이자니 서글펐다.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을 한 아름 안고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그림들을 마냥 아쉬워하며 보고 있었다.
나는 그림을 무척 좋아했다 성경학교 때는 필요한 그림들을 그렸고 유치원에는 한 달에 한 번씩 바뀌는 교육 주제에 맞게 그려 붙이곤 했다. 아이들 교육 일환으로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견학 할 때면 교사들 간에 하는 말이 미술관에 오면 원장까지 챙겨야하니 힘들다는 농담 겸 진담이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그림 앞에서 돌아 설 줄 몰랐다. 내 손을 가만히 잡아끄는 교사를 따라가며 산처럼 높은 그림 값은 내 형편에 사치라기 이전에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었던 시절 나는 왜 그리도 갖고 싶은 그림도 많고 그리고 싶은 그림도 많았는지... 그림을 포기할 수 없는 욕망이 불쑥 불쑥 내 속에 버티고 설 때면 재정을 고려하고 내 실력을 불안해하면서 해가 자꾸 갔다.
어느 날 동창이라며 전화가 왔다. 이름은 익은데 얼굴은 아리송하니 영 떠오르지 않았다. 약간은 설레는 마음으로 약속 장소로 가면서 오랜 세월 후라 알아보기나 할까, 대화는 얼마나 이어질까, 그는 무엇을 좋아 할까, 점심은 어디에서 먹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들어서자니 그가 나를 이내 알아보고 웃으며 손을 잡았다. 나도 그를 곧 알아보고 정말 반가웠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헤어져있던 시간들을 하나하나 되돌려가며 꽃을 피웠다. 일어설 시간이 되었는지 시계를 보던 친구가 “그런데 너 화방은 어디서 하니? 너 시간되면 잠깐 들려가고 싶은데” 라고 했다. 그의 말을 이해 못한 나는 “내가 하는 유치원? 구경 할게 뭐 있니? 그리고 이 시간엔 아무도 없다, 라고 하자 너 그럼 화방 안 하니? 라고 반문했다. 그제야 잘못 알고 있는 그에게 “하고 싶은데 못 했어 아직도 하고 싶은 생각은 여전 하지만 여건이 돼야지... 하며 내게 “너 학창 시절에 그림 하면 화제에 오르고 큰 상도 받은 경력이 아깝다면서 실망이라도 한 듯 밖을 보며 그 역시 감정을 숨기는 듯 했다. 헤어 질 때 자주 만나자며 돌아선 그가 나를 다시 불러 세우더니 “하고 싶으면 늦기 전에 해라, 후회처럼 불행한 것도 없다더라.” 하며 활짝 웃었다.
나는 그 이듬해 봄 친구의 충고 때문인지 격려 때문인지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남들은 축하니 행운이니 했지만 첫 학기를 보내면서 시간과 재정을 쪼개어 수업에 들어가느라 허둥대는 동안 기대했던 설렘은 서서히 사그라져갔다. 야외서나 실내서나 작품을 시작하면 완성하지 못하고 자리를 떠야 할 것을 대비하여 초보시절엔 사진 쟁이 같이 사진도 많이 찍어댔다. 시진 속에는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물체나 명암들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어서 많은 도움과 깨달음으로 자신감과 더불어 내가 지닌 문제들을 교정해 나가는데 점차 쉽게 익숙해갔다. 자상한 배려가 있는 교수님, 유능한 실력가 교수님, 엄하신 교수님, 이분들은 참 좋은 스승이셨다. 우리학급 동료들은 이분들을 존경했고 그림에 대한 조언 듣기를 시샘하며 좋아했다. 그림의 재미도 컸지만 동료들과 나누는 교제도 그림의 재미만큼 컸다. 삼 년이 후딱 가고 세월이 우리를 시원섭섭하게 떠밀어 보냄을 아무도 이기지 못했다.
그 후 우리 동료들은 해마다 3회씩 그림들을 한데 모아 사용료를 요구하지 않는 대학 캠퍼스에서 합동 전시회를 갖곤 했다. 우리 동료들은 대단한 실력가 들이라 인물화, 정물화, 또는 초상화 쪽을 전시 하는데 비해 실력 없는 나는 주로 풍경화를 전시 했다. 풍경화는 내가 그리기 수월하고 똑같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장점이 있기에. 그러나 나는 한편 실력 있는 동료들을 은근히 부러워하면서 내심 슬며시 주눅이 들지만 전시회가 끝날 때면 내 그림은 거의 매진되는 이유가 나를 버틸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되곤 했다. 동료들은 자기들이 나를 들러리 서주었다면서 한턱내라는 그들의 아우성에 밀려 나는 번번이 돈 많은 채무자가 되곤 했지만 기분은 전혀 싫지 않았다. 자기의 그림을 전시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마추어 화가들의 마음은 모두 즐거워 언제나 함께 모이면 하나가 되곤 했다. 그때 그 시절 그림은 내 삶의 재미와 자부심과 활력을 얻게 하는데 한 몫을 했다.
어느 날 남편과 함께 미국에서 일하기 원한다는 어느 목사님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나는 가슴이 철렁하는데 남편은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결국 그이는 내게 설득 반 명령 반으로 가는 것을 통보했다. 나는 그 당시 일도 취미도 재정도 점점 커져만 가는 내 자리를 뜨기 싫었다. 모두 놓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그러나 한번 마음먹은 남편을 이길 힘이 내겐 없었다. 급하게 떠나가 버린 남편을 야속해 하며 집이며 사업이며 이런저런 뒷일을 힘들게 청산하고 물설고 낫 설고 말도 설은 미국에 남편을 따라 온지가 여러 해가 되었다. 이곳에 살다 보니 나의 우선순위가 바뀌어 옛날처럼 그림에 심취되지 않는다. 굳이 갖고 싶은 그림도 특별히 그리고 싶은 그림도 없다. 들러리들이 없는 태평양을 건너 온 탓인가. 아니면 진수를 모르고 싫어 버린 탓일까. 아마도 두 가지 모두를 포함한 세월을 경과한 결과이리라. 하지만 글 쓰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삶을 글 속에 담아내는 것처럼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도 그림 속에 자신의 마음을 그려 넣는 것의 길들여진 세포들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그림은 때때로 내 마음 가까이에서 때로는 멀찍이서 눈 맞춤을 하며 서성거린다.
오늘 화사하게 밝은 빛으로 따뜻한 사랑의 열기를 내 방 가득 채워주던 햇빛이 새삼스럽게 고맙다. 그 햇빛 속에 들어있는 생명의 원소들과 엄청난 에너지, 그리고 하늘과 땅을 아름답게 채색하는 위대한 햇빛을 생각한다.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는 말씀이 순간 뇌리를 스쳤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이 신의 영역에 있으며 신의 능력은 온 우주를 감싸고 있음을 더 밝히 이해하면서 몸과 마음이 후끈 달았다. 지난날 그림을 더 잘 그리려고 사진을 찍어대든 일도 생각난다. 필름을 현상했을 때 빛을 통해 들어온 물체가 얼마나 선명하게 클로즈업되어 내 손안에 쥐어있었나를 생각한다. 나의 삶도 신이 만든 빛 속에서 그분의 법칙에 따라 한 장의 그림으로 사진 찍혀 지지 않을까. 오! 이제부터라도 나의 삶이 아름답고 값진 그림의 작품으로 빛을 만드신 분의 손안에 있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미주재림문학> 수필 신인상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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