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외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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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외유
삼십이년동안
눈앞에서만 살던
살가운 아내는 한번도
자기만의 시간을
떼어가지 않았다,
적어도 한달전
오십년지기 소꼽친구가
느닷없이 전화로
꼬시기 전에는.
결국 아내는
아직도 단풍이 예쁜
시카고의 가을 한 모퉁이
꽉찬 삼주를 잘라서
바로전날 사두었던 여행가방에 담고
인천행 아시아나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처음으로 움켜쥔 자유
어색한 얼굴로 돌아서서
"당신 나없이 석주를 어찌 지내지?" 하고
얄팍한 손수건 하나 떨어뜨린다.
텅빈 여행가방속에 있던
그 삼주일은
눈깜짝할 사이 만삭이 되어 돌아왔다,
터질듯이 배가부른 가방도
입속 가득히 고속으로 자라난
얘기들도.
저녁여덟시
산모는
현대 제네시스 앰뷸런스에
실리는 즉시로
양수가 터졌다.
경험없는 돌팔이는
쉴새없이 조잘대며
깔깔거리며
밀려나오는 얘기들을
받아내느라
그동안의 삭막했던 불경기를
다 잊어버렸다.
예전의 그 병실
함께누운 자리에서
"당신만한 남자가 없어..."
마지막 탯줄이 떨어진 시간이
벌써 밤 열두시다.
"아! 그래 난 참 부자로구나"
삼주일동안 내속에서도 자란 한 아기의
옹알거리는 소리 들으며
불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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