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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의 묵시록 (시와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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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의 묵시록

강위덕

풀벌레 키드기는 소리도 지나치지 못하는 저 오지랖, 너는 있는 것마다 툭툭 건드리며 세상을 떠돌아 다녔지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에 길난 역마살이지 겨울이 되면 너의 하늘이 딴청 피운 사이 한계의 벽을 넘어 맨땅과 외도를 했었지 더러는 객기 넘쳐 곤두발질하고 더러는 후미진 언덕배기에 소리 없이 눕기도 했지

石石廻廻

돌들의 행보가 흘리고 간 억 천의 세월, 不見과 發見사이 인간의 눈에 발견된 너 수석아 너는 저 거대한 백색의 책을 보았지 열리지 않는 입을 꽉 다문 페이지, 지상의 온도를 빼앗은 불온의 예언서를 하늘이 내린 백색테러야 이 백색 테러는 노아의 방주가 없지 선거공약이나 트릭도 없어 네가 숨어 살았던 전생처럼 온 누리가 하얗기만 해 서울의 높은 빌딩이 다 들어가고도 남을 그리움 때문에 선연한 겨울 바닥을 긁으며 너는 말했지 백색테러가 몸을 풀려면 십년은 걸릴 거라고 시간을 제 안에 삭혀 수많은 파문을 마음에 새기고도 아무 말 없이 물살의 지도를 받으며 억세고 짧은 갈기에 살이 찢기는 동안 눈에 뜨이지 않는 계곡에 숨어 심연의 암호를 분석하고 있었지 죽음 그 후에야 이생을 억 겹 반추하듯 고름을 빼낸 허탈한 구멍에 새빨간 새 피가 출렁일 때 너무나 황홀한 꿈이 거기에 불탄다했지 뒷 페이지에 앉아 이마에 수건을 동여맨 각주(脚註)처럼 유려하게 얼굴을 내 밀수 없는 서언(序言)이나 결론(結論)처럼 화끈하게 주장을 펼 수는 없어도 다만 지금은 들메끈을 고쳐 매고 있는 중이라고, 십년의 끝은 바로 지금이라고, 반쯤 남은 커피 잔이 졸고 시계가 눈을 비빌 때 새벽은 고동친다고

* 석석 회회 ; 돌과 돌이 돌고 돈다

해설

전통 서정시나 환상파의 시들이 서로 섞여 유행하고 있습니다.

전자가 보수 미학을 강조한다면 후자는 전위미학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보수와 진보가 대립되고 긴장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러나 전자는 전근대 미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직도 자아, 주체를 신뢰하고

자아와 대상의 동일성이 대상을 착취하고 그 폭력행위라는 사실을 모르고 사는 듯합니다.

정서나 상상력을 매개로 자연을 노래한다지만

자연은 그저 자연일 뿐입니다.

꽃은 그저 피는 것이지 무슨 기쁨, 슬픔, 그리움 같은 것을 모릅니다.

그럼에도 너무 말들이 많고 무슨 소린 줄도 모르는

번다한 수사를 마치 필연성인양 큰소리를 냅니다.

 분리, 불안, 무, 죽음을 묘사해 나간들 이런 것들은

고요한 치장에 불과 할뿐 아니라

가만히 있는 자연을 꼬집어 뜯고 학대하며 괴롭힙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쏜쌀같이 세찬 시냇물이

돌의 물렁뼈까지도 깨끗이 행겨내며 돌들을 굴리고,

덩달아 서로끼리 톡톡 건드리며 지나가도 상관하지않습니다.

돌과 돌사이를 이탈하며 흙 속에 뭍혀도 흙과 외도를 하려니 합니다.

돌들의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는 다는 약속으로

-무언의 묵시록-이란 제목을 붙침니다.

문법으로 친다면 청아한 복고 주의도 아니고

 세련된 포멀리즘도 아닙니다.

석유등잔에 먼지가 앉아 등피가 된 옥춘당의 감미,

저녁놀빛이 부서지는 유년시절의 사금파리,

 마호가니로 틀을 짠 망가진 진공관 엠프,

잡음이 가랑비처럼 날리는 무성영화의 역사막,

무쇠추가 달린 대나무의 다 닳은 눈금,

 어쩌면 이미 존재하지 않을 옛 시절의 가슴 저리는 향수,

조사법과 구문을 부리는 형식의 감촉,

 詩로서가 아니라 애잔한 노스텔지어를 끄집어내여 바람을 잡는것 같습니다.

이런 형식의 시에 L 도식을 참고로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xml:namespace prefix = v ns = "urn:schemas-microsoft-com:vml" /> (Es)s

                                                             계

                                                  상

                                          상

                                                                            un

ego, a                                                                                                  A, other

여기에서 ego,a인 주체가 결정하는 것은 대타자 A이고

대타자는 무의식적으로 s를 향하지만 상상계는 s를 거부합니다.

여기에서 -무언의 묵시록-이 a라면 a의 대타자는 A인데

정신병환자는 대타자인 A가 없기 때문에 상상계도 없습니다.

정신병환자가 길을 잘 찾는 원인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아무런 방해도 없이 ego,a가 직접 Es, s로 화살표를 정하기 때문입니다.

감정을 초월하는 전위 예술가는 대타자를 찾고 대타자를 찾는다고 하여도

무의식적으로 s를 향하는 의지와 관계없이 무궁무진하고 한계가 없는 상상계에서

그 목적을 찾으려 하기 때문에

논문처럼 서언이나 각주를 달지 않아도

-무엇인것 같은 작품!-이

상상계에 머무는 동안 커피 잔이 졸고 있는 것도 이러한 원인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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