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한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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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꽃길 찬란했던 봄날에
봄앓이도 하지않고
여름내내 들판에 서있을때도
바람부는대로 흔들리며
물새의 집을 지키던
푸르도록 행복한 갈대
숲이었다
겁없는 마부를 만나
평생 덜거덕거리며 다니던 이삿길
지겹도록 먼지만 먹고 살았어도
광대처럼 익살스런 마부의 간지럼에
행복한 웃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다
새끼들 날아간 서쪽으로
빈둥지 이고 서있는 허깨비처럼
푸석거리는 억새풀 하나
아내는 처음으로 가을을
앓고있다
그래도 우리는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세월
적당한 온도로
보듬고 껴안으며
따습게 살았는데
입을 딱딱 벌리며
받아먹던 새끼들
무한정 떠넘긴 내리사랑일랑
단 한번도 세어보지않고
살았는데
봄날이 그리운게다
여름도 그리운게다
뻥뚫린 갱년의 저 큰 구멍
바람소리 술술새는 빈둥지앞에서
타다남은 등걸 모아 숮불지피는
마부의 약탕기에
행복 한첩이 끓고있다
마지막 처방이 끓고 있다
아침 저녁 채전밭에 심어놓았던
스킨쉽 서너뿌리 캐서 넣고
내년오월 유럽여행 가자는 약속 한뿌리도 넣고
가구를 여기저기 옮겨보자는 당귀 이파리도 한줌넣고
연말에 음악회 한번 가자는 달콤한 감초도 썰어넣고
이것저것 생각나는대로 대추 한주먹도 집어넣었다
중전마마
행복 한첩 대령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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