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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디 강 교회음악 작곡 발표회/세천사 합창단 카네기 홀 공연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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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들어 흐르는 눈물을 닦을 수 없어서이리라. 객석을 향해 환하게 웃음 짓던 얼굴들이 하나 둘, 무대 천정을 바라보면서 애틋한 표정으로 일그러진다. 눈꺼풀을 부지런히 깜박이는 모습이 안쓰럽다. 내면의 깊은 샘에서 터져 나오는 물기를 몸 안으로 다시 담으려는 몸짓 아닌가. 뜨거워진 눈시울 때문이리라, 흰 날개옷과 검은색 턱시도를 입은 60여 명의 남녀 합창대원들의 얼굴이 붉디붉다. 프로그램에 명시한 15곡을 마친 후에 3번째로 이어지는 마지막 앙코르 송을 부르는 마음이 오죽할까. 수많은 날 동안 얼마나 힘들게 연습하고 인내했을까. 만감이 교차하는 무대의 정서에 감염이 되었는가. 청중들도 한숨을 지으며 앞섶을 적신다.


뉴욕 카네기 음악당, 주디 앤드 아서 쟁클 홀(Judy and Arthur Zankel Hall). 작곡가 위디강 씨의 교회 음악 작곡 발표회 현장. “순교자라는 타이틀이 음악회의 성격을 고스란히 대변해 준다. 서부 캘리포니아 출신 신예 지휘자 최은향씨가 이끄는 빛소리여성합창단과 세천사합창단이 위디씨의 음악을 만나 신들린 화음을 연출한다. 오선지에 누워있던 음표들이 일제히 일어나 걷고 뛰고 춤춘다. 합창, 사람의 성대라는 악기에서 울려나오는 오케스트라. 깊은 음색과 절묘한 톤의 어울림이 순수한 감각을 일깨운다. 곡 한 편 한 편마다 섬세한 대리석 조각 작품을 선을 따라 만지는 느낌이다. 감동과 교감이 불러들인 공명의 진폭을 느끼고자 눈을 감으니 세상의 시공간이 아닌 것 같다.


“Programmatic Music”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메시지를 놓치지 않으려면 어떤 자세로 감상을 해야 할까. 오주영씨가 바이올린과 하나가 되어 위디씨의 작품을 시청각적으로 표현한다. 활화산처럼 솟구쳐 오르다가 쏟아지는 폭포수처럼 폭발하고, 절제와 격정을 압축시켜 환상의 세계로 이끈다. 바이올린 현만으로는 부족한가, 젊은 그의 몸과 혼이 온 감각을 집중시켜 절규하고 전율한다. 그의 피아노 반주자 칼로스 아빌라 씨가 그와 눈빛으로 호흡을 맞추는데 왜 나의 숨이 턱턱 막히는 걸까.


위디씨는 지휘자의 곡 해석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기대치 않았던 오블리가토를 비롯하여 절묘한 다이내믹과 엑센트로 곡의 이미지를 잘 살렸단다. 자신의 곡이 관객들에게 생소할까봐 일반 곡들도 부탁했는데 한국의 어느 유명 지휘자들이 만든 음악보다 훨씬 독창적이고 아름답단다.


지휘자 최은향씨가 해석하는 작곡가의 작품세계가 인상적이다. “서정적이고 섬세한 그의 음악에는 시가 있고 이야기가 있다. 템포가 느리고 어둡고 슬프고 어렵다. 쉽게 부를 수 있는 평범한 곡이 아니다. 기쁨은 누구나 쉽게 표현할 수 있지만 슬픔은 인생의 깊이와 경험에서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그 단조 분위기가 좋았다. 악보를 받고나서 어떻게 해석할까, 마음이 설렜다. 맨 처음 합창대원들의 반응은 이게 뭐지? 였다. 연결이 안 되는 느낌이랄까. 연습을 거듭하는 동안 스타일이 드러나면서 점점 더 좋아했다. 선택한 일반 곡들이 그의 작품이 지닌 빛을 가리지 않고 짝을 이루도록 세심한 배려를 했다. 청중의 반응을 보고 합창단의 모토인 커뮤니케이션에 성공했구나 싶어 기뻤다. 예술은 소통이다.” 그녀는 우리 합창단원들만이 노래를 부른 게 아니다. 하늘 천사들이 함께 노래했다.”고 말문을 닫는다.


발표회 직전 그녀는 청중에게 말했다. “금줄에 옥구슬을 하나하나 꿰듯이 그렇게 작곡가의 음악을 완성시켰습니다.” 무의식중에 동의를 하는 마음이 기쁘고 즐거웠다. 두 사람은 상대방이 하는 예술의 품격과 가치를 금세 알아차렸을 것이다.


위디씨는 화가이자 작곡가이고 시인이다.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미술을, 줄리어드 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했다. 2008년도에는 스토리문학에 시로 등단했다. 미술과 음악과 문학, 그는 예술의 세 장르를 무리 없이 아우르고 거느린다. 각 장르가 서로를 격려하고 부추기며 소통함으로 그만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창출한다. 한 뿌리에서 나왔으되 서로 다른 모습으로 표현된 예술이니 얼마나 장단이 잘 맞겠는가.


그는 우둘투둘 반부조 같은 엠페스토 기법으로 비발디와 베토벤과 자연을 주제로 초대형 그림을 그린다. 추상화 같은데 선명한 초현실주의 화법을 펼친다. 그의 그림 속에는 음악과 시가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 불가리아 배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체코슬로바키아 모라비안 필하모닉이 그의 수상작을 연주했다. 오케스트라 곡만 50편이 넘는다. 그의 시는 초현실적인 비유와 암시와 암호로 가득 차 있다. 그의 등단 시 제로의 두께는 동인집의 타이틀이 되었다.


그는 올해 78세이다. 이제 시간이 없다고, 그래서 눈치 보지 않는다고, 터져 나오는 창작의 끼를 어찌 다스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짓는다. 하루에 7시간 이상 시와 그림과 작곡에 매달리는 집념의 예술가. 목선에서 찰랑이는 은빛 머리칼이 아우라처럼 빛나는 그를 대하노라면 열정의 실체를 바라보는 것 같다. 합창대원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는 눈길이 그지없이 따뜻하다. 합창대의 화음에 반해버렸다고,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과분하고 또 과분하다고 말하는 사람. 체구 작은 거인, 어디에서 그토록 폭발적인 에너지가 나오는지 경이롭다.


지휘자 최은향씨는 치과의사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내려놓고 음악의 무대에 나선 사람이다. 그녀 역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그녀에게 이 세 가지는 소일거리가 아니다. 예술에 대한 어찌할 수 없는 사랑의 분출과 발현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연습하고 노력한다.


이번 카네기 홀 공연이 주는 의미가 크다. 한국인의 수준 높은 예술세계를 미 주류 사회에 널리 알린 점 이외에도 재능 있는 예술인들의 활동이 한인 재림교회의 이미지 창출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작곡가와 지휘자 두 사람이 음악으로 나누는 대화가 관객과 어떻게 소통을 이루고 멋진 하모니를 연출할 수 있는지 증명해 주었다. 공연은 성공적일 수밖에 없었다. 미술과 음악과 문학의 3종 예술에 대한 두 사람의 깊은 이해는 물론이거니와 지나온 생애를 통하여 거두어들이고 벼려온 의식의 확장과 현상 너머를 바라볼 줄 아는 혜안이 큰 몫을 했으리라.


공연은 막을 내렸는데 객석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할렐루야’, 위디씨의 곡 해설 문구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한번 살고 한 번 죽었습니다. 비겼습니다. 한번 살고 한번 죽고 다시 살았습니다. 이겼습니다. 21로 이겼습니다. 영생! 할렐루야를 크게 외치는 이유입니다.”


공연장 밖으로 나와서 뒷걸음으로 걸었다. 어두운 밤하늘을 향해 역류하는 조명 아래 고색창연한 자태로 빛나고 있는 카네기 홀을 바라보았다. 예술이 주는 영감을 입고 상징적인 유기체가 된 건물. 낯선 도시를 걷는데 마음에 울림이 되었는가. 위디씨의 탄식어린 음성이 그 위에 겹쳤다. “, 예술이여, 한 사람의 예술을 온통 차지한 예술이여.”


깊은 가을인데 맨해튼의 밤공기가 따스했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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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아님의 댓글

no_profile 하정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순교자" LA 공연이 1월 20일 오후에 지퍼 홀에서 있습니다. 카네기 홀 공연을 관람하지 못하신 분들에게 적극적으로 권합니다. 교회 음악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기회이고, 예술의 참 향기를 흠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자신있게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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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위덕님의 댓글

no_profile 강위덕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하정아 문인께 감사를 드립니다. 뉴욕까지 저의 곡 발표회에 참석하기 위해 남편님과 함께 비싼 비행기와 호텔 비,  카네기홀 입장권까지 자비로 담당하며 참석해 주심을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더욱이 과분한 평에 감사를 드립니다.
감히 이런 자리에 답글을 올릴 입장이 못 됨에도
삼가 바람의 자격으로 이 답글을 올림니다.
황송하다는 말씀밖에 다른  할 말이 없습니다. 할 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참으로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 글을 올려주신 하정아 집사님에게 감사를 드리고
무엇보다도 세천사합창단과 빛소리 합창단 지휘자님과 단원 모두에게 눈물로 감사를 드립니다.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소속되어 있는 오주영 바이오리니스트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오주영씨께서는 이번 연주를 위해 옷까지 맞추어 저의 음악과 일관성을 이루어 주신 것에 대하여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연주의 비용으로 많은 돈을 후원해 주신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일일이 존함을 밝히고 싶었으나 몇몇분이 이름 밝히기를 원치않으셔서  삼가 웹공간을 통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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