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끝에 아직도 맴도는 울릉도 호박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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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은 먹거리가 흔하니 참, 호강한다고 해야 할까. 6.25를 전후하여 동네에
모여 놀던 어린 시절, 그때는 먹거리나 어린이 주전부리가 흔하지 못한 때였다. 그 당
시는 깡보리 밥도 마음껏 못 먹고 배고프다가 어쩌다 설날, 자기 생일이나 돼야 그립
던 흰 쌀밥을 먹어본다. 지금이야 흰 쌀밥은 오히려 건강에 해롭다고 하나 이는 복에
넘치는 소리다.
그런 마당에 하루 두 세끼 식사 외에 먹거리는
어쩌다 동네에 나타난 뻥튀기 아저씨
나 와야 강냉이나 보리 튀밥을 마음에 그려본다. 부모에게 졸라서 다행히 성사되어
튀밥을 튀기는 날이면 세상 기쁜 날이다. 식량을 아끼는 판이니 누렁지가 생기는 일
도 없기에 누룽지로 만든 튀밥은 여느 튀밥보다 맛이 고소하다. 이런 튀밥을 달짝지
근하게 하기 위해 인공 감미료인 사카린이나 당원이란 걸 흔히 넣어 튀기기도 한다.
이런 날은 집안에 경사다.
그러나 이런 먹거리는 얻어걸리는데 시간이 걸리고
부모에게 졸라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또 뻥튀기 아저씨가 어쩌다 동네에 나타나면, 아이들이 심란하게 날뛴다. 요새
아이들은 그들의 조부모 세대가 어렵사리 얻어먹던 간식에 얽힌 뒷얘기를 들으면 어
떻게 생각할까. 지금도 한국 식품점에는 여전히 튀밥이 눈에 띄나 고급 과자나 사탕
에 익숙한 아이들이라 볼품없이 투명하고 긴 비닐봉지에 보이는 때깔 없는 튀밥이 그
들에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어쩌다 어느
해,
설 전후 가래떡에 꿀을 찍어 먹는 맛이야 물론
꿀맛을 겸하니까 참
달기도 하나 이런 꿀 바른 떡은 그래도 넉넉한 가정에서나 볼 수 있는 먹거리다. 하지
만 일년내 언제나 자주 보는 가래 엿은 엿판에 이리저리 또는 뚜아리처럼 휘휘 감아
진열한 것도 있지만도 검정 참깨를 입힌 엿가래와 마찬가지로 윷가락처럼 일정한 크
기로 만들어 나란히 진열한 엿판도 있다. 특히 당시 형 또래들은 이런 엿을 가지고
'엿가락 치기'라는 놀이를 한다. 엿가락을 딱 부러트리면 부러진 면에 구멍이 숭숭 보
이는데 상대보다 큰 구멍을 가진 엿가락을 고른 사람이 승자가 되어 패자가 엿 값을
대신 부담한다. 이때 옆에서 구경하는 어린이들은 나중에 형들에게서 얻어먹는 그 엿
맛보다 더 재미있다.
그러나 맛으로 말하면 울릉도 호박엿만
하랴.
아이들은 마음이 뒤집혀 멀쩡한 살림
도구를 부모 몰래 저고리 섶에 감춰서 살그머니 자기 집 사립문을 나와 집 모퉁이를
돌아서 부모에게 들키기 전에 냅다 엿장수에게 뛰어든다. 이때 엿장수는 커다란 빈대
떡처럼 엿판에 퍼진, 얼기 성기 뿌려진 꽃가루 같은 색이 담긴 엿 표면에 두틈하고 묵
직한 끌의 손잡이를 큰 가위로 내려쳐서 엿을 분리하여 떼어주고 인심 쓰듯 덤으로
조금 더 떼어 주면, 세상에 귀한 것을 얻은 것처럼 그 아이는 기뻐 날뛰었다.
하여간 그 당시에 손쉽게 튀밥을 먹으려고, 헌 고무신, 쇠붙이, 사이다병, 찌그러진
알루미늄 그릇(양은 냄비나 주전자) 등 고물을 주고 튀밥과 맞바꾸는 고물장수를 기
다린다. 그러나 이보다 아이들이 미쳐 날뛰는 먹거리는 뭐니뭐니해도 '울릉도 호박
엿'을 능가할 만한 것이 없다. 손수레에 엿판을 싣고 먼지투성이 한복을 입었을망정
넓적하고 큰 가위(어린이가 양손으로 집어야 할 정도로 힘든 손잡이가 달린 가위)를
쩔그렁거리며 동네 입구에 미처 닫기도 전에 '울릉도 호박엿이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르는 울릉도 호박엿'이라고 가락과 장단에 맞춰 동네가 떠날 듯이 소리소리
외치는 엿장수 아저씨 뒤에는 벌써 아이들이 졸졸 따라붙는다. 독일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르던 아이들처럼.
지금 세상에 이런
'울릉도
호박엿'도 미국 한인 마켓에서 볼 수 있는지는 모르나
고국
에서는 울릉도 특산물로 현대식으로 포장하여 선전 판매하고 있다. 이곳에서도 언제
그 맛을 볼 수 있을까? 입안 가득히 엿을 넣고 우물거리며 단물을 미처 주체 못하여
입술 주위에 엿물 흔적을 남긴 추억!
참고: 옛날 독일 하멜른 시에 쥐가 너무 들끓어
사람들이 골머리 앓던 때 피리 부는
사나이가 나타나 모든 쥐를 돈을 받고 다 몰아낼 걸 시장과 약속하고 일을 마쳤으나
시장이 약속한 돈을 주지 않자 앙심으로 그 사나이가 다시 피리를 불기 시작하니 아
이들이 그 뒤를 따르기 시작하였다. 아이들과 함께 이 사나이는 산속으로 사라졌다는
동화가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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