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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덕에 향수를 다 바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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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이때까지 이 몸에 향수라곤 뿌려본 적도 없거니와 총각 때 얼굴에 로을 발랐

다가 얼굴 피부가 숨 막히듯 답답해서 씻어낸 적이 있다. 특히 여름에 향수를 뿌린 이

가 옆을 지날 때는 숨이 막히고 땀이 을 지경이니 물론 향수라는 것도 엄두 내지 못

하는 주제였다. 더구나 아내는 아무래도 여성이라 화장 냄새가 나는 듯 마는 듯하고,

남편은 으레 자연 미인을 선호하는 처지아내도 얼굴이나 입술에도 색칠을 모르고

40년 가까이 부부의 연을 맺고 살고 있다.


그러나 늦게 얻은 손자 때문에 늦게서야 향수에 대한 철을 들게 하는 사건이 생겼다.

평소에도 어린 녀석의 관심을 끌고자 무던히 애를 써도 잠시 그때뿐이고 할애비를 따

르는 일이 없다. 아마 웬만한 장난감치고 어느 어린이 못지않게 사 들고 그 꼬마를

곤 해도 장난감을 좋아해도 역시 할애비에게 안기지 않는다. 심지어 '아이 러브 유 소

마치'라던가, '아이 미스 유 마치'라고 하면 오히려 그 녀석 대답은 ', 아이 돈 러브

'''라고 말하며 단호하다. 할미에게는 언제나 그 녀석이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요란하다. 그러니 얼마나 할애비가 비참한가.


이거 무슨 비상대책이 없을까 하고 고심하던 중, 아내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할미가

그 녀석한테 '아버지가 싫으냐?' 하니까 그 녀석 왈, '스팅키하다'고 하더란 아

내의 귀띔이 언 떠오르기에, 옳다 됐다 싶어 책상에 굴러다니던, 엄지손가락만 한

작은 향수 기름병이 생각났다. 떤 연유로 그 병이 굴러다니게 되었는지 모르나 좌

우간 그 냄새를 빌리면 뭔가 이루어지리란 생각이 스쳤다.


전에는 손자가 방문한다고 하면 은근히 마음이 무거웠으나 이젠 시험해볼 만한 획기

적인 대책이 있으니 바로 이때다 싶어 샤워하고 옷갈아입고 물 향수를 새끼손가락

에 살짝 묻혀서 양쪽 귓불에 되는둥마는둥 스쳐주고 새끼손가락에 남은 습기를 머리

정수리에 비벼 향수 물를 없애고, 이젠 어디 두고 볼 일이라 싶어 기다리고 있는데

이 녀석이 열린 문으로 들어서는 게 아닌가. 들어서는 녀석을 덥석 안아 올리는데 여

느 때처럼 이 녀석이 처음에는 약간 움칫하더니 마침내 볼을 비비고 할애비를 꼭 껴

안으며 이쪽저쪽 귓불에 코를 들이대며 부산을 떠는 게 아닌가.


이거 참, 나이가 이토록 들어도 향수가 이렇게 대단한 위력이 있는 줄 몰랐다. '아이

러브 유'하니까 '아이 러브 할아버지'하는 게 아닌가. 이때 기분은 하늘이 뒤집혀 보

이는 판이었다. 하기야 청춘남녀가 서로 눈에 콩깍지가 씌우면 향수가 대수로운가.

바를 것 안 바를 것 가리지 않고 남녀가 가진 향기를 내려고 법석일 테지만 그런 걸

모르고 살아온 사람에게는 향수의 위력이 너무나 대단하였다. 손자를 유혹하기 위하

여 계속 써볼 만한 비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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