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나무 새잎 순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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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잎이 허둘부러지던 지난여름에 석류 열매가 점차 붉은 빛깔을 입을 때, 덩달아
마음도 꿈도 익어갔었다.
하루가 다르게 무성한 잎 사이에 자태를 뽐내며 설레게 하던 계절이 엊그제 같다.
궁금해서 들여다보고 안부 하다 보니 가을이 바싹 다가선다.
그러고 보니 열매가 한껏 탱글탱글하여 성숙한 그 자태가 마치 더 바랄 것 없이 자신
있는 20대 여성 몸맵시라 방금 터질듯하였다.
가을 햇살에 속 알맹이까지 아주 빨갛게 물들어 오죽하면 보기만 하고 입을 대지 못
하였을까. 혀를 대기조차 아까웠었다.
늦가을까지 횡간 받침 나무에 걸쳐 늘어진 열매가 아래를 오가는 이마와 부딪치기도
하나, 그래도 그 부딪치는 즐거움까지 주던 석류나무.
나중에는 열매가 화가 치밀었던지 제힘에 딱 벌어져 삐 즘이 보이는 속내가 보기 좋
았다. 반하면 아무렇게 보여도 다 아름답듯이 말이다.
마침내 이집저집에 돌려주고 잎이 다 떨어지니, 이젠 한해가 다 저물었나 보다 하며
허전함이 몰려왔다. 자녀를 여읜 부모 마음도 이럴 테지.
이젠 가지만 남아 하늘이 언뜻언뜻 훤히 보이기 시작하면서 성급하게 봄을 재촉한 적
이 있다. 그러다 깜박 잊던 차 이렇게 한지 일주일이 되니 새순이 참외 씨만큼 자랐
다.
어제 드문드문 간신히 본 그 작은 순이 하루 사이에 콩나물시루에 완연히 솟아오른
싹처럼 새순이 눈에 가득하다.
이젠 몇 차례 비만 오면, 가지에 제법 잎이 수북하고, 얼마 또 지나면 석류 꽃망울이
보일 테지, 그러면 오히려 벌이 먼저 모여들어 꽃을 재촉한다.
이렇게 하여 인생살이에 나이테를 더한다. 갈수록 무덤에 가까워지는 줄 모르고
새잎 순을 보면서 작년 가을 풍만한 석류를 성급하게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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