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기도
페이지 정보
글씨크기
본문
유월의 기도
사월 중순 쯤 땅에서 돋아난
파란 이파리들 볼 때까지도 나는
내속 어두운 곳에서 아무것도
끄집어 내지 못했다.
캄캄한 땅속을 비집고 올라온
시퍼런 이파리들은 내 눈에 언제나
지나온 봄날들이 약속한 무언의
색깔이었을 뿐,
그러나 오늘은 문득 길을 걷다가
눈이 부신 함박꽃 앞에 선다.
유월의 햇살이 화창한 하루
시퍼런 이파리 위에 송이송이
분홍색 겹겹으로 피어서 흔들리는
아찔한 저 기적의 꽃 대궁이 앞에 선다.
너무 아름다워서
너무 신비하여서
난생 처음으로 울렁거리는 그 무엇을 나는
눈으로 토해냈다.
그리고 땅속에서 저 신비한 것을 피우는
그 누구에게
침침하고 어두운 내 속에서
단 한번이라도 그런 것
피우게 해 달라는 기도
유월의 햇살에 기대어
눈물처럼 살짝 비쳐보았다.
그리되면 나는
무슨 꽃으로 필까
피지도 않고 지는 꽃은
싫어
피었다가 지는 꽃도
싫지만
열매도 없이 지는 꽃은 더욱
싫어
- 이전글그 영광의 빛속으로 제 1부 출생과 배경- 박옥종 13.06.19
- 다음글멸치 대가리 수필 13.06.0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