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에 드리는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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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은 벌써 삼월 하고도 삼일째라고 알려준다
바깥은 오십센티의 두께로 쌓여있는 눈 속에서
아직은 두텁게 그러나 하얗게 감싸고 누운
고뿔 가득찬 동장군의 이불이다.
아마도 봄은 저 눈밭 속에서 잠만 자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봄은 저 얼음 속에서도 얼어 있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며칠 후면
오히려 커다란 냉장고 속에서 가장 푸른 이파리들을
끄집어 내고
노오란 개나리 꽃잎을 쏟아 놓을 때
우리는 겨울의 거대한 냉장고가 녹아 내리는
여울목의 물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세월은 육십 하고도 두세개나 더 지났다고 내게 알려준다
그러나 아직도 세상은 육십의 허전함에 흔들리는 갈대 잎의
마지막 숨소리 같은 기도를 듣지 않는다.
어서 이 세상의 얼음같은 걱정들이 녹아서
어서 이 세상의 눈덩이 같은 두려움들이 녹아서
며칠 후
생명의 강물이 되어 흐르고
그 여울목에 너와 내가 이땅의 눈물을 씻어내는
마지막 빨래터에 설 수 있을까
삼월의 나의 기도여
부디 얼지 말아라
삼월의 나의 기도여
제발 녹지도 말아라
나의 기도여
예수의 믿음같이
우리 모두의 무덤가에서
마지막 봄인양 찬란하게
꽃으로 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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