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는 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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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는 청산
박유동
천만 년을 우뚝 솟은 산아
전쟁의 포화에 수없이 불탔었고
총칼을 쥔 전사의 유골도 아직 묻혔거니
너의 암반에는 세월의 주름이 깊고
산천초목에도 연륜을 새겼거늘
산아 너는 이 땅의 역사를 잘 알리라
민족의 울분을 참지 못하여
내 벼랑바위를 붙잡고 통곡할 적에도
산은 마냥 끄떡 않고 장엄한 기세였더라
이 나라 하늘을 높이 떠받들고
나에게 무궁한 힘을 주면서도
너 청산은 묵묵히 말이 없었더라
산봉마다 파헤쳐진 전쟁의 깊은 상처
너는 오히려 아름다운 꽃잎으로 휘덮었고
간혹 내 원한의 목소리 외쳐대면
산은 내 목소리 메아리쳐 되돌려 보낼 뿐
지난 풍상고초 다 잊고 살라고
온갖 산새 불러 즐거운 노래 들려주었더라
아 이 나라의 비통한 역사 어이 참으랴
오늘도 이 늙은 시인은 장편서사시 높이 읊건만
어떻다 청산은 무사태평 말이 없느냐
한 많던 할아버지도 산에 가서는 고이 잠들고
고지에서 희생된 용사도 통 말이 없으니
정녕 내가 죽어 청산에 묻혀서나 그 뜻 알려나.
-2009년 <신문예>1-2월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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