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나비의 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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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나비의 우상
박유동
잔나비 밑구멍이 새빨게
새빨간 것은 사과 사과는 단데......
공원에 온 아이들이 짝짝 놀려대니
잔나비란 놈 나뭇가지에 달랑 매달리고
바윗돌 꼭대기에 뻐쩍 올라서네
높은 하늘에 붉은 태양이라고
제 빨간 밑구멍을 드러내 보이네
그런데 곰이라는 놈 철창살을 흔드네
태양이면 뭐가 어떻다는 거냐
이 산에서 솟아 저산에 떨어져 죽으니
태양은 하루만 사는 하루살이 인걸
잔나비 성이 발끈 나서 정신없이 뛰며
저런 미욱하고 무식한 놈 봤나
천추만대 위대한 어버이태양도 모른다하네.
.......창작노트 (시에 대한 나의 편견)........
이 시는 동물들이 오늘날 현대 과학문명을 어떻게 볼 건가 하는 의문점을 갖고 동물의 생각을 시로 만들려 하였다. 태양은 하루 한번 아침에 솟아서 저녁이면 산속에 혹은 물위에 떨어져 죽으니 아마도 온갖 짐승과 날짐승과 물에 고기들은 저 태양을 날아다니는 하루살이로 생각할 거라며 시의 제목도 처음에는 <동물의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아무런 교양적 내용을 못 찾았다.
그러다보니 직립 보행도 하고 노동도 하는 영장 목인 잔나비는 생각이 다른 동물과 다르리라 단정해 봤다. 태양을 하루살이로 보는 곰이라면 두뇌가 좀 진화발전한 잔나비는 과학을 옳게 파악은 못한다하더라도 우리 인류의 시조들이 태양신 철학을 믿었던 것처럼 붉은 태양을 신비로운 미신으로 알고 그들은 아예 제 몸에 붉은 태양 문신을 달고 다닌다고 하겠다.
과학 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지금도 각종 미신과 우상화를 맹신하거나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도 아직 있다는 풍자적인 사상을 억지로 담고 보니 모름지기 시의 주제가 있는 것 같아 제목을 <잔나비 우상>으로 바꾸었다.
이렇게 시를 가상과 추측을 억지로 꿰맞추고 보니 시를 발표하기에는 미흡한 것 같으나 요즘 내가 보고 있는 국가로부터 수 십 억의 별장까지 지어준 한 유명 시인이 터무니없이 억지로 제목도 내용도 상관없고 행과 단어가 인과 관계도 없이 들쑥날쑥 무의미하고 애매한 시를, 시도 아닌 것을 시집에 끼워 넣었는데 시집의 수량을 채우려는 것인지 시인 자신의 위상에 손상만 줄뿐더러 독자들로부터 시에 대한 반감만 조성할 시를 왜 쓰는지 물론 워낙 유명시인이라 그의 다른 시집에서는 명시가 있겠는지 모르나 내가 본 이 시집의 수준으로는 과연 명시가 있을까 싶다.
시가 아닌 시라면 아무리 짧아도 끝까지 읽기가 힘든데 설혹 명시가 한두 편 끼웠더라도 그것을 보려고 북데기 더미를 들춰 볼 사람 없을 것이다.
그리고 유명 시인이라 해서 다 명시만 써야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 시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독자들이 시를 사랑하지 않고 시를 싫어하는 장본인이 바로 이런 시단사기꾼들이 시도 아닌 것으로 독판친다고 생각하면 몸이 떨리도록 격분한 나머지 그런 시 보다 나의 미흡한 시 <잔나비 우상>이지만 몇 배 아니 몇 백배 낳을 거라고 이렇게 내 놓아 본다.
시란 언어도 수법도 아니고 더구나 사건의 기술도 아니고 오직 생활 속에서 감동을 받는 아름다운 시적 영감을 포착하는 것으로 영감이 없는 시는 한편도 안 쓴다는 나의 개인적 편견인지, 그래서 다 늙어 오늘까지 무명시인인지 모르겠다. /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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