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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앓이ㅡ유월의 꽃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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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앓이


1.

그것이  봄인지도 모르고

동네 계집아이들과 눈 녹은 산야를

물이 새어 미끄러운

하얀 고무신 신고

해가 지도록 뛰어 다녔던 

어린시절의 추억


2.

통영의  장터

덕지  덕지 겨울의 때가 

팔뚝에 묻어있는 아낙이

봄이 토해낸 각혈 
진달래 꽃 이파리를 

밀가루에  버물러 

가마 솥 뚜껑 엎어서  지져주던날

처음으로 봄의 맛이라는 것

잘근잘근 씹어 보았던 

유년시절의 기억


3.

하얀 포도송이 같은  

아카시아 꽃송이가

가녀린 봄 바람에

마지막 향기 쏟으며

신작로에 뿔뿔이 흩어져 내리던 날

아카시아 향기 가득한 

최고의 꿀을 땄다고

정오의 햇살 보다 밝은 미소로

삽작문을 여시며 들어 오시던

아버지의 얼굴


4.

그렇게 중년의 허리를 돌아

해는 봄의 추억들과 함께

서산으로만

자꾸 자꾸

기우는데


앞으로 남아있는

나의 봄은  도데체 몇개일까를 

손가락으로 세어보는

노년의

야릇한 기분


5.

생각해 보니

길다면 긴 세월속에

무심코 날려 보낸

나의 향기는 

누구의 기억속에도 없는

그냥 지난날의 

바람일 뿐

그 누구도 나의 꽃잎 속에서

달디 단 꿀 한 방울 딸 수 없던

이파리만 무성하게

흩날렸던 나의 기억들 


6.

그 기억속에서

건져내는

해 같이 떠오르는 빛 하나


죽은 나무에 달려서도

온 세상에 가득한 향기를 날리고

무화과 같이

꽃 이파리 하나 없었던 나무에서도

세상의 모든이들이 맛볼 수 있는

꿀송이였던 생명의 나무


그 밑으로

두손들고

돌아가는 길


7.

주여

그 나무 밑으로

아니 그 나무 속으로

나의 모든 봄 앓이들이

스며들게 하소서

거기서 오로지

당신의 향기와 열매만

영원히

자랑하게 하옵소서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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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원님의 댓글

no_profile 명지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어가 하나하나 나올 때마다 저는 시각적 이미지를 따라 저의 어린시절을 오갑니다. 나의 마음의 고향, 그 시절!  추운 날씨에 푸른기가 자꾸 줄어들어 물기 빠진 시레기, 집 뒤 처마밑에 걸려 말라가면서 나의 어머니의 손길을 기다리던 그 시절! 저의 마음은 시인의 시상을 따라 마치 지남철을 따라가는 클립처럼 기쁜마음으로 기민하게 이리저리 따라갑니다. 
"봄이 토해낸 각혈  
진달래 이파리를"
아무런 표현이 필요없습니다. 시인의 시어가 부럽고 존경스러울 뿐입니다. 

"앞으로 남아있는나의 봄은  도데체 몇개일까를 손가락으로 세어보는 
노년의야릇한 기분"
'서편제'의 작가 이청준 님이 심여 년 전에 "50이 되기 전에는 봄이 오면 '또 하나의 봄이 오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50이 넘으니 봄이 오면 '아, 나에게도 또 하나의 봄이 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하는 말씀을 듣고 나이듦의 의미를 뼈에 새겼었습니다. 작가의 말 한 마디가 생각을 바꾸고, 시인의 말 한 마디가 삶을 급히마시는 물에 풀잎 하나 띄웁니다.  
시인의 봄은 영겁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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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경님의 댓글

no_profile 장도경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어디서 오셔서 어디로 가시는 필객님이신지과찬의 어구속에서 없던 생명이 움트 오는 듯한 또 하나의 각혈 입니다.
이제는 가마솥을 엎어서 지질 것이 아니고마음판을 뒤집어서 지지고 또 지져도 계속 맛이 입속에 남아있는명지 원평이라고 할까요.님이 지나가시는 자리마다 시레기 같이움츠렸던 진달래 꽃잎들이 다시 붉게 피고 있군요.감사 드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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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원님의 댓글의 댓글

no_profile 명지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정무흠 과찬이십니다. 그냥 시인의 마음을 읽고 오버랩 되고 싶을 뿐입니다. 
그 밝은 아버지의 표정을 보고 얼마나 기쁘셨을까요. 마치 엄마가 기분좋으면 덩달아 기분좋아 가슴이 붕붕하던 때처럼요.
임진강 옆 아카시아 나뭇가지들에 하얗게 핀 아카시아꽃과 그 짙은 향기, 잎에 넣고 스~윽 훑어내는 그 맛과 향. 한국의 제과그룹 롯데에서 만든 '아카시아'껌을 어쩌다 씹을 때, 자연과 인공의 그 느낌. 어찌그리 그 어린 날의 기억이 선명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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