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갈길 다 가도록" - 오영희 집사님(김중만 장로 사모님) - 경기 중학 수석 합격한 장남이 한강에서 익사한 크나큰 슬픔과 절망을 극복한 가족의 감동적인 이야기!!! > 글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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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갈길 다 가도록" - 오영희 집사님(김중만 장로 사모님) - 경기 중학 수석 합격한 장남이 한강에서 익사한 크나큰 슬픔과 절망을 극복한 가족의 감동적인 이야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뇌이며 우리 온 식구는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마치 악몽을 꾸는 듯 슬픔의 흑암 속에 쌓여 있었다. 그날 아침만 해도 할머니를 번쩍 안고 빙그르 돌며 "우리 할머니 최고야"하며 익살을 부리고 문을 나선 오빠에게 어찌 이런 일이... .


1956 년 초여름 유난히 밝은 아침 오빠는 수영반원 모두를 이끌고 한강으로 가 경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점심때쯤 벨 소리가 울려 창문 사이로 보니 파란색 교복을 입은 오빠 친구의 고개 숙인 모습이 보였다. 불길한 예감, 아니 무슨 일로 이 시간에 왔을까?


"글쎄, 수원이가...." 말을 잇지 못한 채 눈물을 흘렸다. 피가 온통 빠져나간 듯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옆에서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기절을 하시고...  ...


6.25 사변 때 아버님은 인민군 징용을 피하시느라 먼저 떠나시고 큰집 작은집 4,50명의 여자들과 꼬맹이 애들만이 피난길을 떠날 때 10살 짜리 오빠는 이 대행렬의 총책임자가 되어 가장 아닌 가장 노릇을 감당했었다.


경기 중학을 수석 합격하여 동료 친구와 선생님들의 칭찬의 대상이었던 모범학생, 집에서는 부모님께 둘도 없는 효자 아들이요, 다정다감했던 오빠. 그 오빠에게 어찌 이런 비극이... ...


우 리 집은 대대로 불도에 심취해 절을 내집처럼 드나들던 불교에 헌신적인 가정이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드나들었지만 그럴 때마다 "그 예수쟁이들 할일도 없지. 자기들이나 천당 갈 것이지 왜 이렇게 귀찮게 늘 찾아와!"하며 비웃기가 일수였다.


이웃과 친척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어 부족을 모르고 이 세상 부와  특권을 혼자만 누리는 것처럼 자고한 병에 톡톡히 걸렸던 셈이다.


이런 때에 닥친 이 슬픔의 폭풍 속에서 아무도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아무리 불경을 외워도 무슨 위로를 받을 수 있단 말인가! 한번 간 오빠를 어찌 다시 볼 수 있단 말인가!


어머니는 점점 쇠약해져만 가셨다. 아무 것도, 아무도 어머니를 위로해 드릴 수 없었다. 누렸던 모든 부도, 칭찬도 영화도 헛되고 헛된 것 뿐이었다. 심취했던 불도도 허공을 잡는 듯 무의미한 것 뿐이었다.


그 러던 어느 날, 불현듯 우리는 정사영 박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진찰실을 들어섰을 때 벽에 걸려있는 Harry Anderson의 그림 - 예수님의 인자하신 모습으로 환자를 고치시는 그 장면을 보면서 이상한 감동이 나를 사로잡았다. "사모님 사랑하는 아들을 다시 볼 수 있는 소망이 이 성경 책 안에 있습니다. 그 예수님이 곧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때 죽었던 그 아들을 다시 보실 것입니다."


힘없이 누워있던 어머니는 벌떡 일어나 앉으시며 "아니 제가 어떻게 죽은 아들을 다시 볼 수가 있단 말입니까?" 절망과 슬픔에 빠져있던 어머님의 눈동자는 희망의 눈빛으로 번쩍였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그 주님의 생명의 능력이 어머님의 마음을 touch 하신 듯이...


그날로부터 어머니는 그 기쁨의 소망을 믿으며 신구약을 일주일만에 다 통독하시고 온 식구들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이 말씀을 시간 날 때마다 들려주시곤 하셨다. "아 왜 이 생명의 말씀을 모른 체 이제까지 허송세월을 했단 말이냐. 내가 진작 수원이의 말을 들었더라면..."하고 후회를 하시곤 했다. 죽기 전에 오빠는 심각한 표정으로 "어머니 불교는 아무리 믿어도 헛것이니 우리 이제 예수님을 믿읍시다"하는 것을 야단을 치며 "그 부정타는 소리 두 번 다시 하지 말라"고 하셨단다.


그러나 늘 왜 느닷없이 그런 결심을 했는지 의문이 풀리지 않았는데 그 의문을 30년이 지난 어느 날 주님께서 밝혀주셨다. 오빠와 한 반이었던 박원배 의사가 Battle Creek에서 개종하여 선교 경험담을 하던 중 중학교 때 우리 반에 오수원이란 학생이 자기가 식기도 하면 뒤에서 쿡쿡 찌르며 "뭐가 보인다고 기도하냐"고 놀렸는데 하루는 심각한 얼굴로 나의 기독교에 대해 알고 싶으니 얘기 좀 해달라고 해서 하교길이면 장장 몇 시간씩 며칠을 성경 얘기를 했는데 그 복음을 받아들인 후 죽음의 비보를 접했다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는 말씀을 전해야 한다는 간증을 했다고 한다. 그 간증을 들은 교인 중 한 분이 전화를 걸어 아무래도 오빠가 아닌지 모르겠다고 해 곧 연락을 하니 그 사람이 바로 우리 오빠였다. 참으로 우리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을 어찌 아니 느낄 수가 있을 까!


멀리 멀리 주님을 피해 세상에서 자고하며 방황하던 잃은 양과 같은 우리 가정을 인도해주신 우리의 목자 예수님!


오늘도 그 은혜가 차고 넘쳐 온 몸과 맘을 다 해 외쳐본다.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그의 은혜 어찌 큰지 말로 할 수 없도다...  영영토록 찬송 제목 예수 인도하셨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고난과 시련의 때에나 결코 홀로 두지 아니하시고 같이 동고동락해주시며 싸매주시는 우리의 목자 예수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오영희(김중만 장로 사모님)

"숨겨진 여인들의 삶의 모습 - 앤드류스 한인교회 여성 선교회 편"에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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