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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타롯지 같은 교사가 되고 싶었다 - 박옥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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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교사로 부임 - 박옥종

  (그영광의 빛 속으로 제 3부 "6.25 동란, 고난의 세월, 가난 속에 핀 꽃" 중에서)


도시에서의 생활이 갑자기 시골 생활로 바뀌었다. 남천 초등학교는 경산에서 약 15 리쯤의 거리이다. 나는 그 초등학교의 3 학년 1 반 교사로 부임했다.


        학교 근처에 있는 노인 부부와 아직도 총각인 아들과 세 식구가 사는 조촐한 집의 아래채에 방 한 칸을 얻어 세 들어 자취를 시작하게 되었다. 전임 처녀 여선생이 자취하던 방이라 했다. 집 주인인 노부부와 아들은 다 마음이 후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학교도 가까웠으므로 참 편리했다.


        나는 심혈을 기울여서 가르쳤다. 페스타로치처럼 좋은 교사가 되리라고 결심하였다. 어린이들에게 일기를 쓰도록 지도하였다. 그 일기들을 검사하여 잘못 된 데는 고쳐 주면서 문장력을 계발하고자 하였다. 글을 잘 읽지 못하는 어린이들과 산수를 잘 풀지 못하는 어린이들은 특별지도를 하였다. 그리고 어린이들의 읽기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국어 시간에는 따라 읽기를 여러 번 하였다. 그래서 글자를  모르는 어린이들이 글자를 눈에 익게 하고 책을 읽는 것이 어린이들의 기쁨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공부 시간마다 문제를 일으키는 어린이가 있었다.


선생님, 상태가 나를 찼어요.”

선생님, 태 보세요. 내 머리를 쳤어요.”   

선생님, 상태가 내 공책을---“

내 지우개를---

내 연필을---등등

상태에 대한 원성(怨聲)은 그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공부 시간에 또

선생님, 상태가---”하는 말이 들려왔다.

하루 이틀이 아닌 여러 날의 잇달아 일어나는 호소를 이제는 묵살()할 수가 없게 되었다. 상태는 공부 시간만 되면 주위의 아이들을 못 살게 굴었다. 이미 전의 담임선생님들이 다 두 손 든 아이였다.

         어린이들의 구원을 요청하는 여러 날의 부르짖음을 무시할 수 없어 나는 오늘은 무슨 조처(措處)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까지는 말로만

상태야, 공부 시간엔 조용히 해야 해.” 라든가상태야, 선생님을 쳐다봐요.‘ 정도로 그쳤지만---나는

상태야 , 앞으로 나오너라.“ 고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 수업 시간이 끝날 때까지 앞에 세워 두었다. 공부시간이 끝나는 종소리가 땡땡땡 울리자 나는 수업을 끝냈다. 어린이들은 일제히 다 운동장으로 뛰어나갔다. 교실 안에는 상태와 나만 남아 있었다. 나는 상태 앞으로 다가갔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내 마음속에는 그에 대한 연민(憐愍)의 정이 가득하였다. 내 마음은 눈물로 가득하였다. 아무에게도 사랑을 못 받는 듯한 이 어린이가 측은하여 어떻게 도와 줄 수 있을지 나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한참 그러고 있으니까 상태는 잡힌 손을 뽑아내려고 몸부림을 쳤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면서 몸부림쳤다. 그러나 나는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조용히 부드럽게 내 마음에 눈물겹도록 가득한 사랑을 그 마디 말에 담으면서

상태야, 선생님은 너를 사랑한다.” 고 말하였다. 그리고 조용히 기다렸다.

어느 듯 상태의 몸부림이 그쳤다. 붉어졌던 얼굴도 차차 본 얼굴색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서생님은 상태가 노력만 하면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오늘 읽기 숙제를 집에 가서 해 오너라. 스무 번 읽어오라고 했는데 스무 번 읽어오너라.” 고 말하였다.

태는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서 있었다. 나는 그가 잘 들었다고 믿었다.


        이튿날 국어 시간이었다.

어제 국어 숙제, 읽기를 잘 해온 사람들 가운데 읽고 싶은 사람 손 들어보세요.” 했을 때 태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나는 얼마나 기쁜지

장 상태 읽어 보세요.”

손을 번쩍 번쩍 들고선생님, 나요! 나요! ” 하는 모든 어린이를 제쳐놓고 나는 상태를 지적하였다. 상태는 기쁜 얼굴로 일어서서 읽기 시작하였다. 좀 더듬거리기는 했지만 이제까지 한 번도 숙제를 해온 적이 없는 그가, 도대체 공부에 취미가 전혀 없어 공부시간엔 장난만 일삼던 그가 한 번도 발표해 보려고 조차 않았던 그가, 손을 들고 읽었다는 것은 대() 성공이었다. 나는 어린이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 상태가 참 잘 읽었지요? 우리 다 같이 박수칩시다.”

하였더니 어린이들도 다 기뻐하며 상태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날 후로선생님, 상태 보세요!” 하는 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않았다.


내가 담임한 3 학년 1 반 똑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여자 어린이가 있었다. 이 두 어린이는 같은 마을에 사는 친척이었다. 그러나 이 두  어린이는 도무지 맞지 않았다. 생김새부터가 완전히 달랐다. 하나는 키도 크고 등치도 컸다. 또 하나는 키가 작고 몸피도 가냘픈 편이었다. 그래서 두 어린이는큰 진숙이작은 진숙이로 불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두 어린이는 성격적으로 도무지 맞지 않았다. 공부시간에도 툭하면 싸우는 것이었다. 언제나 작은 진숙이가 큰 진숙이를 일러바쳤다.

선생님, 큰 진숙이가 끔 씹고 있어요.”

선생님, 큰 진숙이가 공치기 하고 있어요.” 등등

그러면 큰 진숙이가 골이 잔뜩 나서 그 힘센(?) 주먹으로 작은 진숙이 머리에다 꿀밤을 한 대 주어버린다. 그러면 작은 진숙이가 또

선생님, 큰 진숙이가 내 머리에다 꿀밤을 줬어요.”하는 것이다. 공부를 하다가 어린이들의 주의가 온통 그리로 돌아가곤 해서 어린이들의 주의력이 산만하게 될 때가 여간 많지 않았다. 그래서 어는 날 결단(決斷)을 내려 두 어린이를 변소 청소를 시켰다. 그랬더니 두 어린이가 다 울상이 되어서

변소 청소 못 하겠어요. 어떻게 해요?”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그럴 만  것이 2 학년 때까지 이 어린이들은 교실 청소도 한 적이 없었다 한다. 6 학년 언니들이 해 주었고 청소는 이제 3 학년에 올라와서 배우는 터에 변소는 더더군다나 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나는 시범으로 내가 도와주기로 작정하고 앞치마를 입고 마스크를 하고 수건을 쓰고 변소로 가보았다. 과연 어린이들이 울상이 될 만도 하였다. 요새처럼 수세식 변소가 아니니 냄새가 코를 찌르는데다가 뒤편에는 커다란 똥 무더기까지 쌓여 있고 벽에는 거미줄이 얼기설기 먼지와 합창(合瘡)이 되어 붙어 있었다. 도 도망치고 싶은 상황(狀況)이었다. 나는 벽의 거미줄과 먼지를 쓸어내리고 바닥을 물로 깨끗이 씻었다. 두 진숙이에게 물을 길어오라고 하니 두 어린이는 선생님이 자기들을 도우는 것이 너무 기뻐서 어느 듯 아까의 울상은 다 가시고 기쁨에 넘치는 얼굴로 물통에 물을 기쁘게 둘이서 같이 길어 날랐다. 두 어린이는 도르래로 길어 올리는 두레박물을 같이 길어 올리고, 같이 물통을 들고 왔다 갔다 하면서 둘이 협력하여 일하는 재미를 익히고 어느 듯 다정한 친구가 되어버렸다.


        청소가 다 끝나고 종례(終禮) 시간에 내가 모든 어린이들에게

우리 교실과 복도와 변소를 다 아름답게 꾸미고 싶지 않아요? 오늘 이렇게 교실도 복도(複道)도 변소도 깨끗하게 청소했는데 여기다 꽃을 꽂아놓으면 더 좋겠지요? 누구든지 집에 꽃병 만들 수 있는 큰 대나무가 있는 사람 있으면---” 하자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러 어린이가 손을 들고선생님!” “선생님!” 하였다. 그 중에서도 큰 진숙이가 가장 열심히 자기가 해오겠다고 하였다

        이튿날 진숙이가 굵은 대나무를 꽃병으로 쓰기 좋게 잘라서 한 일 여덟 개 가지고 왔다. 할아버지가 만들어주셨다고 했다. 작은 진숙이랑 다른 아이들은 들꽃을 꺾어 왔다. 나는 교실에 두 개 복도에 두 개 변소에 한 개 아름다운 들꽃이 꽃인 꽃병을 걸어두었다. 아이들은 기뻐서 참으로 좋아하였다. 전교생의 조회(朝會) 시간에 교감선생님이, “3학년 1학급의 교실과 변소는 학교 전체에서 제일 깨끗하고 아름답다.”는 말씀으로 칭찬을 하셨을 때 어린이들의 기쁨은 컸다.

        언제나 숙제를 못해오는 한 어린이가 있었다. 참 착한 아이인데도……. 내가 불러서 물어보니 공책과 연필을 살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어린이에게 공책과 연필을 사주고 매일 두어 시간씩 남아 있게 하여 밀린 공부를 하도록 하였다.


       5월의 어느 날, 보슬보슬 가랑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그 날은 대청소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청소가 다 끝나고 어린이들이 다 돌아간 교실에 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종례시간에 내가 한 말을 되새겼다. “사람은 잘못을 저지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잘못을 회개하면 바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라고 얘기하였다.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들은 프랑스의 어떤 소년의 얘기를 하였다.

        그 소년은 부모 없이 할머니 손에 자라났다. 도벽이 있었으나 그 도벽을 고치지 못하였다. 어떤 날 그 소년이 다시 잘못을 저질렀을 때 할머니는 난로 불에 화저(火箸)를 벌겋게 달구었다.

        “남의 것을 훔치는 손은 화저(火箸)로 지져야 한다.”고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어린 소년은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었다. 마침내 할머니가 그 벌겋게 달구어진 화저를 꺼내셨다. 할머니는 그 화저(火箸)를 자기의 손바닥에 놓았다.

        “이 할미가 너를 잘못 길러서…….”

살 익는 냄새와 함께 소년은 할머니를 붙들고 울음을 터뜨렸다.

        “할머니, 할머니, 다시는 안 그렇게 하겠어요.”

그리고 그 이후 소년의 도벽은 영영 없어졌다. 할머니의 사랑은 마침내 승리한 것이다.


        또 한 얘기를 해주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에 대한 얘기였다. 아버지가 애지중지 하시던 관상(觀賞)용 나무를 잘랐던 얘기……. 아버지가 노발다발하시며 범인을 찾았을 때 워싱턴은 정직하게 자기가 그랬다고 대답했다. 아버지는 그의 정직함을 기뻐하셔서 용서하셨다는 그 유명한 얘기를 하면서,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때가 있지만 뉘우치고 정직하게 고백하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워싱턴 대통령도 정직하였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고 이야기하였다.


        오늘 아침 아이들은 300원씩 학비를 내야 하였다. 아이들이 가져온 돈을 한 사람씩 받고 돈을 헤어보고 기록을 하고 틀림없이 했는데 총계를 맞춰보니 300원이 모자랐던 것이다. 그래서얘들아 지금 너희들이 낸 돈에서 300원이 모자라니 어디 발견하면 선생님에게 갖다 다오.” 하였다. 그런데 청소하는 중에 한 어린이가 돈 300원을 내게 가져왔다. 청소하다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비는 보슬보슬 이슬비로 내리는데 창밖을 내다보고 혼자 앉아 있으니 문을 살며시 여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돈을 주웠다고 갖다 주던 순남이였다. 나는 의외의 어린이인지라 내심(內心) 놀랐다. 왜냐하면 순남이는 모범생이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 잘못했어요.” 하면서 순남이가 울먹이면서 하던 얘기가 이러하였다.

        아빠, 엄마한테 내일 아침에 학교에 300원을 가져가야 한다고 말씀드렸더니 돈이 없다고 하셨다. 그런데 아침에 엄마가 부엌에서, “여보, 오늘 씨앗을 사야 되는데하니까 아빠가, 그래?” 하더니 조끼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서 어머니한테 주시더란다. 그래서 아빠가 세수하러 나가신 사이에 아까 아빠가 돈을 꺼내시던 조끼 주머니를 살펴보니까 돈이 들어 있기에 그중에서 백 원짜리 3장을 꺼냈다. 그리고 학교에 와서 선생님한테 바쳤다. 그러나 바치고 나자아빠가 300원 없어진 것을 아시면…”하고 번개같이 그 생각이 떠오르자 자기도 모르게 선생님이 자기 이름을 적고 있는 사이에 도로 300원을 집어서 제 자리로 돌아갔는데 선생님이 총계를 세어보시고 300원이 모자란다고 하시며 발견한 사람은 갖다 달라 하시니 더 견딜 수가 없어서 가져왔다는 것이다.


        나는 순남이를 데리고 나의 자취하는 방으로 가서 점심식사를 같이 하고 지우산을 같이 받고 순남이네 집으로 걸어갔다. 좀 떨어져 있는 거리였으나 이야기하면서 걸어갔다. 아직 어린 순남이가 어제 저녁부터 혼자서 고민해온 일을 생각하니 애처로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순남이 집은 언덕진 곳에 있었다. 조그만 초가집이었다. 순남이 어머니는 아주 젊었다. 순남이는 맏딸이었고 아래로 남동생이 둘 있었다. 그 어머니와 앉아서 얘기를 해보니 참 딱한 사정이었다. 일본에서 살다가 해방이 되어 나왔는데 별 신통한 직업도 구할 수 없어 남편의 날품팔이로 살아가는데 그래서 아이에게 제 때에 학비도 잘 못 준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를 위로하고 이렇게 말했다.

        “이제 앞으로 형편이 어려우실 때는 미리 제게 연락을 해주십시오. 그러면 길이 열릴 것입니다. 순남이는 좋은 아이입니다.”

        그 후로 순남이는 참으로 충성된 생활을 했다. 충심으로 모든 일에 자원하여 공부에나 학급 일에나 최선을 다하였다. 나는 좋은 제자를 얻었던 것이다.


        순기는 반에서 키도 크고 덩치도 믿음직하고 숙성한 신체와 정비례해서 생각도 깊었다. 공부도 잘하였고 통솔력도 있었다. 그래서 급장이 되었다. 좋은 학급을 만들어 보고자 모든 일에 열심이었다. 순기의 부모님은 다 대구에서 공장에 다니고 있고 순기는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집에 가서 나무도 해 와야 하고 집안 도 보살펴야 하였다. 그러나 그는 결코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고 1학기 말 성적을 내어보니 단연 첫째였다. 그러나 작년에 이 아이들이 2학년 때 담임이셨던 3학년 2반 선생님은 내게 충고를 해주었다.

        “호준이나 명수나 찬우, 이 셋 중에 한 아이에게 1등을 주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성적대로 하겠습니다.”

        나는 정직하게 하기를 원했다. 호준이의 아버지는 사친회 이사장이었고 큰 과수원을 가지고 있었다. 교육도 많이 받은 분이었다. 명수의 아버지는 부면장이었다. 찬우의 아버지도 잘 사는 분이었다. 아이들도 다 좋은 아이들이었고 공부도 잘했다. 그러나 그 세 어린이보다 옛날에는 어떠했는지 몰라도 지금 현재는 순기가 더 잘하고 있으니 나는 정직하게 그대로 기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의 양심의 소리를 따랐다.


        어느 날의 체육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다 체육 시간이라고 기뻐서 운동장에 나왔을 때 호준이 어머니가 찾아왔다. 그녀는 명문 여고를 나온 분이었고 교양이 있는 분이었다. 그러나 늦게 얻은 아들 호준이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다. 그리고 호준이도 누가 보든지 귀여움을 받을 만큼 잘 생긴데다가 성품도 온후했다. 모든 행동을 자기 집에서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귀엽고 자연스러웠지만 아이들은 공부시간에도 선생님한테 말하기 위해 맨 앞줄까지 나오는 그의 행동이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생각하게도 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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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정무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 영광의 빛 속으로!!!-6.25로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불치병과 가난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구세주를 만난 여인의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박옥종 Lilian Chung)***


18그 영광의 빛속으로 제 5부 감사의 노래 - 박옥종정무흠2013.10.113317그 영광의 빛속으로 제 4부 침례! 새출발! 인생역전! - 박옥종정무흠2013.10.112616그 영광의 빛 속으로! 제 3부 한국 동란! 고난의 세월! 가난 속에 핀 꽃! 박옥종(Lilian Chung)정무흠2013.10.113215그 영광의 빛 속으로!!! 제 2부 행복한 결혼! 해방! 아들, 딸의 출생! 박옥종(Lilian Chung)정무흠2013.10.113014그 영광의 빛 속으로 제 1부 출생과 배경 - 박옥종정무흠2013.10.1129  
박진하2013.10.19 13:55
정무흠 목사님.
제가 오늘은 우리 아이들이 일찍 함께 잠을 자자고 조르는 바람에 저녁 9시 반쯤 잠자리에 들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새벽 1시쯤 잠에서 깨어
정목사님이 올려 놓으신
어머님의 자서전같은 글들을 4시간여 읽었습니다.
 
구구절절.... 진심과 정직, 하늘을 향한 끊임없는 믿음,
윗 어르신들에 대한 예의와 자녀들에 대한 지극함,
하나님과 사람 앞에 언제나 반듯하게 살아 오신
어머님의 삶이 저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최근 들어 이렇게 오랜 시간을 남의 글들을 읽은 적이 없었는데
정말 정목사님의 어머님의 글은
결코 중간에 멈출 수 없는 진지함과 더불어 흥미를 갖게하는
놀라운 힘이 있었습니다.
 
훗날,
하늘에서 정목사님의 어머님을 뵈올 것을 생각하며
이 새벽 어머님을 사랑하시고
정목사님의 가족들을 사랑하신
그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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