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안창호 선생의 비밀 - 민병효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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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도산은 감리 교인이지만 신앙심과 생활은 안식일 교회와 인연이 더 깊다.
그는 본 교단 발상지인 강서 출신이며 임기반 선생과 이웃 동네에서 살았다.
또한 1904년 창설 제 1호가 선돌 교회고, 제 2호로 남삼리 교회 창설자인 이석관씨의 맏사위(딸 이혜련)가 되었고, 동서가 김창세 의학박사(김선억 목사의 처삼촌)시며, 상해, 서울위생병원 사역과 시조사 2대 출판부장을 하였고, 영어에 능통하셔서 당시 영향력이 있는 안도산의 동서가 된 것이다.
그의 독립사상과 독립운동을 하게 만든 배경의 사상이 어쩌면 E G White의 저서 교육철학과 꼭 같은지, 우리 교회보다 먼저 삼육이란 호칭을 사용하여 덕, 지, 체 삼육정신을 이념으로 흥사단을 창립하였고, 또한 실업교육으로 국가부강과 근면정신을 교육하였다.
또한 독립운동의 자금과 활동비의 출처가 선돌 교회의 창설자인 최대응(최순신 사모님의 조부) 선생님이 중심이 된 이석관, 임기반, 이근억 등으로 안식일 교회 지도자들의 도움으로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나중에는 해외 동포와 고국에서도 자금 뒷받침이 많았었다.
안도산 선생이 상해 임시정부 이승만 대통령 국무총리 대리로 독립운동 할 때(1919년) 미국에서, 두 번째는 상해에서 3년간 국무총리 대리로 계실 때 상해 위생병원 간호학과에 한국 학생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 비밀히 찾아왔을 때 박근실(장근청 의사 모친) 간호학생이 여러 차례 모임에서 "장차 한국이 독립되면 여러분들이 나라를 맡아서 일하도록 열심히 배우고 준비해서 애국애족할 것을 간절한 마음으로 당부했다" 하였다.
물론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하여 활동할 때라 어떤 경우에는 학교에서 개별적으로 만나 조국의 앞날을 부탁하기도 하셨고, 병원에 입원하셔서 박간호사와 인연이 되었다.
윤봉길 의거 사건으로 1932년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심한 병이 악화되어 귀한 길에 순안 위생병원에 입원하였을 때 박 간호사는 1933년에 졸업하여 서울위생병원에서 근무 중 순안 위생병원 안 도산 선생의 단독 간호사로 파견되어(이때 순안에는 정식 간호사가 없었음) 간호하셨고, 주치의사와 단독 간호사만이 경찰 입회하에 출입이 허락되었고, 이때 박 간호사는 환자 관리와 약 취급, 배식을 책임졌는데 "상해에서도 위가 몹시 상하여 입원했는데 항간에 의문이 많았다, 혹시나 일본 경찰이 단독 간호사에게 지령이라도 있었는가? 하는 의심과 감시 속에 간호를 맡았으며 특히 음식이 까다로워 순안 식품과 포도즙을 찾았으며 미국 식품 부드러운 음식을 원하셨다.(박근실 어머님 말씀)
퇴원하여 종로 감옥에서 옥고하시다가 더욱 악화되어 서울 위생병원에 입원하였을 때(1937년)에도 단독 박간호사가 수고하셨는데 24시간 매일 수명의 경찰들이 감시하였고, 결국 호전이 없어 경성 제국 대학 부속병원으로 옮겼는데, 이 병원에서도 위생병원 출신인 김순희 간호사가(지금까지 임종 간호사 이름을 알지 못했는데 이영린 목사님의 수고로 밝혀짐) 임종까지 수고하셨는데 순안 포도즙을 원하셔 잡수시고 운명하셨다고 전한다.
안 도산 선생의 일대기는 서거로 마감하지 아니하고, 1954년 홍명기 유학생이(당시 19세) LA에 도착하여 Philip Ahn(안 도산 선생의 맏 아들) 이 출석하는 나성 감리교회에서 성가대원으로 활동하면서 당시 담임 최목사님의 안내로 흥사단원이 되었고, 이혜련(안 도산 선생의 사모) 사모님과 자녀들이 한 가족과 같이 생활하시면서 정착이 되었고 화학전공으로 특수 화학회사에 취직하여 Riverside 지역에서 45년 간이나 인연을 맺고 살 때에 하나님의 섭리가 어디에 내재하시는지 이해는 못 하나 홍명기 선생을 택하여 서거로 마감된 안 도산 선생의 정신문화사업을 역사에 길이 빛나게 하려고 SDA(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로 개종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후세에까지 안식일 교회와 혈맥이 통하도록 홍명기 장로께 안 도산 선생의 정신문화사업회장의 책임을 부여하여 도산기념동상 건립, 도산 헤리티지 인터체인지 건립, 대한인 도산국민회관 복원 및 기념회관 개관, 도산 안창호 우체국 명명 사업 건립등의 엄청난 사업을 이루게 하셨다.
만약에 나성 감리 교회 홍명기 장로 이름으로 안 도산 정신문화사업으로 결산 마감되었다면 혈맥이 끊어진 상태의 안 도산 선생이 될 뻔 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재림 교인들은 역사의 주인공들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업의 역사 속에 불결한 오점이나, 티가 되지 않도록 각자의 삶을 돌아봅시다.
미주 재림 문학 2011년 제 4집 232 - 23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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