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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꾸는 사랑

심우창

 

결혼 75주년을 맞이하신 장로님 내외분의 금강혼식에 참석하였다. 올해 94, 93세이신 장로님 내외분은 18세를 전후해서 결혼하여 75년이란 장구한 세월을 함께 살아오셨다.

영국에서는 결혼 5년째를 나무[], 15년째를 동(), 25년째를 은(), 50년째를 금(), 60년째를 다이아몬드로 총 5번의 기념일을 축하한다고 한다. 이에 반해 미국에서는 75년째를 다이아몬드 결혼기념일이라고 부른다. 아마 장수하게 되면서 전에는 60주년을 맞이하기도 어려웠지만 요즘은 간혹 75주년을 맞이하는 분들이 생겨서 그렇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결혼 10주년은 석혼식(錫婚式), 15주년은 동혼식(銅婚式), 20주년은 도혼식(陶婚式), 25주년은 은혼식(銀婚式), 30주년은 진주혼식(眞珠婚式), 35주년은 산호혼식(珊瑚婚式), 45주년은 홍옥혼식(紅玉婚式), 50주년은 금혼식(金婚式)이라 한다. 스물여덟 살에 결혼하여 이제 진주혼식을 지낸 필자의 입장에서 75주년 금강혼은 아득하고 불가능하게만 보이며, 따라서 그날의 장로님 내외분은 경이로운 존재로만 느껴졌다. 그분들처럼 18살에 결혼했으면 75금강혼은 아니더라도 60금강혼은 가능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들었다.

 

불 같은 연애

불 같은 연애만이 인생의 꽃인 줄 알았던 때가 있었다. 너덜너덜해진 <젊은 베르떼르의 슬픔>을 품에 안고 전장에서 죽어간 수많은 독일 병정들이 멋져 보이던 때였다. 어른들의 약조에 의해 결혼하여 초야를 치루고, 새벽녘에야 처음으로 배우자의 얼굴을 보았다는, 저 미개한 조선의 옛이야기는 가슴 속에 분노를 들끓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사랑만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던 때에 입에 달고 살던 시 중에 하나가 생각난다.

 

내 매양 그대 생각하면

그대는 내 마음의 바람 속에

자라고 있는 나무와 같다

이처럼 그대가 그대의 아들에게 하듯이

내 머리 쓰다듬고 잠재우는 그늘 주며

어쩔 바 모르는 젊은 날의 산책길에

나무, 또는 나의 동반자인 그대

괴로움의 뒤엉키고 매듭 진 뿌리이며

내 마음속 정겨운 징표로 옹이 지고

평온한 날 물 위 바람으로

깜빡, 오랜 날을 보내온 양 무늬결 지니는

그대, 이 모든 자연스러운 것들의 심성으로

잠들며, 또한 새벽 속에 이슬 뿌리고 기지개 켜는

그대, 품 안에 새 기르고

그 새의 노래에 정신 팔려 귀 기울이고

때로 장난처럼 그 새 날려 보내기조차 하는

나무, 또는 나의 동반자이며

그대 속의 나인 그대

(나무, 또는 나의 동반자인/박경원)

 

그런데 언젠가 존경하던 문학가가 아내에 관해 수필을 쓴 것을 읽었다. 그분은 어른들의 뜻에 의해 얼굴도 못보고 결혼했는데 새벽에 보니 아내가 예쁘지를 않아 너무 실망했다 한다. 관습이 그러니 할 수 없이 아내와 함께 살면서 아이들도 낳았다. 어느 날 그분이 시장 길을 따라 퇴근하고 있는데 어디선가여보!” 하는 낯익은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저녁 장보러 나온 수많은 여인네들 중에, 저 멀리서 아내가 자신을 발견하고 한껏 기뻐서 자기를 부른 것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자신을 알아본 아내도 신기하고, 그 시끄러운 시장 터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자기 귀에 꽂힌 것도 너무 신기했지만, 무엇보다 자기를 보고 웃으며 조심스럽게 손짓하는 아내의 얼굴이 천사라는 느낌에 목이 메였다 한다. 오랜 세월 마주보며 살다 보니 어느덧 그 얼굴에 익숙해지고, 그 착한 마음에 자신의 사랑이 무럭무럭 자라났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그분은 아내가 자기에게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생전 처음 아내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다.

서로에게 반해 불 같은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도 불과 몇 개월에서 이삼 년이면 그 애정이 식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에게 거는 기대치가 너무 크고, 결혼을 한 후 자기주장을 앞세우고, 몰랐던 많은 문제들을 대화로 해결할 능력이 없으면, 사랑은 마치 끼얹은 물에 금방 잦아드는 숯 불 같은 것에 불과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업을 할 때에는 심사 숙고하게 된다. 그리고 누구나 실패를 두려워하여 주저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랑에 빠져 결혼할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랑이 실패할 것이라는 가능성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한다. 즉 사랑에 빠지면 정말 물불을 안 가리고, 앞날에 대한 두려움 없이 돌진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준비되지 않은 자신들의 모습으로 인해 결혼 후 허둥지둥 대는 것이다.

 

가꾸는 사랑

사랑이 없이 결혼해도 살면서 서로에게 마음을 주고 사랑을 가꾸면, 둘 사이에는 마침내 화사한 장미꽃이 피어나는 것이다. 사랑에 빠져 결혼하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사랑을 가꾸지 않으면 어느 날 자신들의 화단이 황폐화될 것을 알아야 한다. 첫 눈에 반한 사랑, 국경을 초월한 사랑, 신분을 초월하고 만 가지 난국을 극복하고 이룬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꾸는 사랑인 것 같다.

금강 혼 축하연에서 사회자가두 분은 연애결혼이십니까, 중매결혼이십니까?”라고 질문하니 장로님이중매입니다.”고 답변하셨다. “지금도 두분은 서로 사랑하십니까?” 하니 사모님은 고개를 돌리고 계시고 장로님 대답을 안하시더니, 다시 다그치자 거짓말을 못하시니 엉뚱한 대답으로 화살을 피해가셨다. 아마 잔치 때문에 아침에 싸우실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사하면 싸우고, 잔치하면 싸우는 게 인간사이다. 오죽하면 호사다마라고 할까? 죽을 때까지 의견이 서로 안 맞으니 그게 문제다. 평소 금술이 좋으신 두 분의 그런 모습을 보니 신혼 집 부부싸움을 엿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흔이 넘으신 장로님 내외분이 왜 그렇게 사랑스러워 보이는지.

조변석개하는 인간사에서 눈을 돌려 한결같으신 예수님, 불 같은 사랑보다 불변하는 사랑으로 우리를 대하시는 그분의 사랑을 따르면, 언젠가 우리도 영생혼식(永生婚式)을 치 룰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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