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르 > 글동네

사이트 내 전체검색

글동네

아파르

페이지 정보

글씨크기

본문

아파르

아파르는 히브리 용어인데 그 뜻은 티끌이다.

티끌이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다.

그들이 첨단 기술을 자랑해도 그들의 지식은 모르는 것들의 전부임에도

그들은 지식에 너무 천착(穿鑿)한다.

네온사인이 많은 동내는

구석구석 가림의 미학을 터득한 듯

눈 가리고 아옹해도

어둠 속엔 모르는 것들로 꽉차 있다.

하나님은 아담을 창조하고 아담을 아담이라 불렀다.

본래는 아담인데 아담이라고 불렀다.

아담의 히브리말은 아다마인데 땅을 의미한다.

최초의 사람 아담을  아담이라 불렀지만 그  아담은 고유 명사가 아니다.

사람을 뜻하는 보통명사이다.

즉 사람은 아담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창 1:27)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란

인간의 언어 능력, 인격성과 주체성, 그리고 이성적 사고 능력을 가르치지만

이것은 인간에게 영원히 주어진 불변적 실체의 형상(imago homini)으로 환치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의 자연적 본성으로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래에서부터 오시는 하나님의 영이 죄인인 인간에게 임마누엘 할 때만 가능하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형상을 원형과 모형의 유비 속에 있는 '계약관계'로 이해한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을

창조 이전의 하나님과 영원한 아들의 근원적 관계에 상응하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로,

인간의 존재와 하나님의 존재 사이에는

이런 관계 신학적 유비가 있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에 대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인간에 대한 하나님 자신으로서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의 삼위일체성 안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간주한다.

또한 바르트의 제자인 오토 베버(Otto Weber, 1902~1966) 역시

하나님의 형상은 율법의 성취이시며

하나님의 형상의 실재성 자체이심을 증언한다.

그는 하나님을 위한 인간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인간이며,

하나님 앞에 서신 인간이다.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롬 8:3) 보내셨던 그리스도의 인격 속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이로서 인간은 그분 속에서 자신의 새 신분과

실존의 종말론적인 형태를 갖는다.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1892~1971)는

인간의 영적 본성으로 인한 자기 초월성이,

곧 성경의 전통이 증언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한다.

성경에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는 것은

포로기(捕虜記) 문서(文書)에 속한다.

바벨론의 포로 상태에 있었던 당시

이스라엘인들은 마르둑 신을 숭상하는 바벨론의 웅장한 문화와

자신들의 포로 상태의 왜소함을 비교한다.

거기서 그들은 인간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신의 형상들이

도리어 인간을 지배한다는 불합리성과

종교적 숭배 뒤에 숨어 있는 무자비한 착취 구조를 역설한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은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 이끄시고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다고 말한다(창 2:15).

여기서 '경작하다'는 말은

'종', '노예'를 의미하는 '에베드(abed)'에서 나온 말로 '일한다(abad)'는 뜻의 동사형이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듯이

에덴동산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마냥 풍요와 즐거움만을 찾는 유흥장과 같은 곳이 아니라

함께 동산을 가꾸고 경작하며 노동을 하는 삶의 일터와 같은 곳이다.

따라서 노동은 타락한 인간에게 내려진 징벌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실현해 가는 인간의 본질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노동하는 인간이 다름 아닌 '하나님의 형상'이다.

반면 경륜적 삼위일체는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徑輪)을 말하는 것으로

성부의 창조, 성자의 구원, 성령의 성화를 말한다.

이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 혹은 '계시의 삼위일체'라고 한다.

여기서 경륜적 삼위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으로 삼위 하나님이 직접 천지창조와 구원의 사역, 즉 노동을 하셨다는 말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인간 또한

노동하는 존재로 규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일반적으로 인간을 가르치는 단어 휴먼 빙(human being) 대신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인간(human doing)으로 바꾸어 써야 하지 않을까?

다시 말하면 인간은 단순히 땅의(humus) 존재(being)가 아니라

땅의(humus) 일꾼(doing)이란 말이다.

이때 인간의 본질은 일하는, 혹은 노동하는 존재가 된다.

성경은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고 했다.

비약하자면 일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스스로 파괴하는 사람이다.

노동을 기피하거나 노동의 가치를 폄훼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노동을 즐겁고 복된 마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주어진 일을 해야 한다.

비록 나의 삶의 자리에서 주어진 일이

정신노동이든, 육체노동이든, 큰일이든, 보잘것없는 일이든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다.

그런 사람이 땅(humus)과 같이 겸손하게 일하는 사람으로(doing)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는 사람은 사람의 계명을 배격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의 삶이 힘들다고 생각한다.

내게 주어진 삶에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지나친 삶의 부담을 견디지 못한다.

우리의 삶이 나에게 주어진 일이,

혹은 앞으로 주어질 모든 일은 극복하지 못할 신의 징벌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의 본질을 이루어 가는 아름다운 과정이다.

이 세상은 어제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 찰 것이다.

성경의 전통은 아예 도외시하고 사람의 계명을 전통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삶이라고 하는 믿음의 노선은

그 자체가 아름다운 인간의 근본이다.

이 땅의 모든 휴먼 두잉(human doing)은 힘 있고 가진 것 있다고 뽐내는 것이 아니라

우주 가운데 한낱 흙으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갈

먼지임을 기억하고 넙죽 엎드려 갯벌에 입 맞추는 아름다운 겸손을 가져야 할 것이다.

 

 

 

 

아파르에서 솟아오른

아파르 아파르 아파르

한조각 어둠이 희미해지고

한조각 모래가 가벼워지고

햇빛 먹고 자란 땀방울이

사람이된다

눈을 확대하여 보는 천문대

우주에 보이는 혹성들이 아파르로 보인다

아파르로 아파르가 된 인간이 신에게 물었다.

 

당신은 뉘시오니까?

나는 나다

 

 

신이 묻는다 너는 누구냐

아파르로 왔다가

아파르로 살다가

아파르로 돌아갈

아파르이니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KASDA Korean American Seventh-day Adventists All Right Reserved admin@kasd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