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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새벽길 - 북아태지회장 이재룡 목사 추천사 - 박옥종 시선 "영원히 새로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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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새벽길 - 박옥종 


나는 내 마음 문을 활짝 연다

귀하신 주여 들어오시옵소서


내 마음의 보좌에 주께서 좌정하시자

내 마음엔 사랑의 밀물이 가득하고


주님의 사랑은 내 마음에 기쁨 충만케 하여

나는 가슴 터질듯한 감사로 노래부른다

나의 찬양이 새벽 공기 속에 올라갈 때

새들의 찬양과 어우러진다


주신 몸과 마음 다하여 찬양하네

사슴처럼 뛰고 싶고 나비처럼 춤추고 싶어라


새들과 함께 찬양하며 나는 걸어가네

나는 푸르른 수목 우거진

푸른 잔디 사이의 흰 길을 걸어가네


힘차게 기쁘게 사랑으로 충만하여

흰 구름 강물 처럼 양떼처럼 떠가는

하늘 바라보며 걸어가네


***박옥종 시선 "영원히 새로운 것" 중에서***


북아태지회장 이재룡 목사 추천사 - 박옥종 시선 "영원히 새로운 것"

이 시집의 시를 한 수 한 수 읽어 내려 가노라면

저자이신 박옥종 집사님께서 살아오신 한 평생의 믿음의 삶이

우리의 마음에 진한 감동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이른 아침 눈을 들어 주님을 우러르며 하루를 열면,

온통 창조주의 영광으로 마음과 세상이 황홀케 되니

감사와 찬양이 절로 나온다는 그분의 인생관과

온종일 주님과 더불어 걷는 그분의 모습 속에서

마치 하나님과 날마다 동행하던 에녹의 모습을 보는듯 합니다.


이 책에 수록된 모든 시의 구구절절은 마음에서 울어 나온 저자의 기도요,

신앙의 간증이요, 주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입니다.


그러기에 이 심오한 마음의 명상은 읽는 이들의 마음 속에

신선한 감동과 새로운 각오를 일깨울 것입니다.


오로지 한 평생 주님만 바라보며

오늘도 그분을 만날 소망 속에 예비하며 살아가는

저자의 올곧은 신앙 자세를 흠모하면서

우리 모두의 삶도 그와 같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가슴 설레임 속에서 기다려 온 우리 주님은

약속하신대로 분명 오실 것이니

찬란한 영광의 아침 그 주님을 뵈올 때까지

오늘도 진실하게 예비하며 살아가겠다는 저자의 의지와 소망이

우리 모두의 것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그분의 감동에 함께 젖어보도록

여러분 모두에게 일독을 권하는 바입니다.


북아태지회 목회부장 이재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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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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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옥종 여사의 시집 출간을 기리며 - 신계훈 목사 (삼육대학교 교수, 총장, 한국 연합회장)


그 숱한 민족의 비극이 시작되던 그 해 6월 25일, 그 길고 지루했던 여름, 가녀린 망부석 하나가 외로운 모습을 다듬고 있었다. 속히 다녀 오리라던 출장길을 따라 흔연히 상경한 부군은 전쟁 길에 막혀 끝내 돌아오지 않았으며, 애달프게 기다리던 이십대 후반의 아직도 젊은 여인은 그대로 청상의 망부석이 되어 고달픈 삶의 뒤안길에서 외로운 풍화를 시작했다. 박옥종 여사이시다.


겨우 세 살과 한 돐을 맞는 아들 딸 아기 둘을 둘러업고 품에 안으며, 손목을 이끌고 면면이 이어온 고달픈 생존의 날들은 참으로 더디 흘렀다. 언제나 초롱초롱한 두 어린 자식의 눈망울을 바라보며 살아야 할 까닭을 찾은 여사는 생존을 위해 떳떳한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어설픈 기름 장사, 힘 겨운 보따리 장사, 명문의 고등교육을 받은 덕분에 그래도 가능했던 가정교사, 국민학교와중학교 교사 등 열 서너가지도 더 되는 일감을 찾아 몸부림치듯 살아온 십 수년이 더디기는 했지만 천천히 흘러갔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고달픈 삶의 여로를 외롭고 힘겹게 달리던 여사는 마침내 기진하여 쓰러졌으며, 이내 짙은 흑암이 시야를 가려버렸다. 바로 그 때 비쳐 온 한 줄기 빛, 그리고 잇달아 내려 온 한 가닥의 밧줄, 여사는 혼신의 힘을 다 해 그것을 붙잡았다. 끝내 돌아오지 않는 부군을 기다리다 두 자식과 함께 인생의 여로에 지쳐 쓰러진 가련한 여인에게 뻗쳐 온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었다. 행여 놓칠새라 그 손길을 붙잡은 여사는 더 이상 풍화로 낡아져가는 한낱 외로운 망부석이 아니었다. 이제 여사는 마침내 돌아오실 몸과 맘의 영원한 하늘의 님 예수 그리스도를 간절히 기다리는 만년 소녀가 되신 채 어느덧 고희를 눈 앞에 두고 계시다.


지나간 40여년 홀로 걸으신 여사의 인생 여로가 이제 익을대로 익은 포도송이처럼 맺혀 알알이 그 모습을 들어내기에 이르렀다. 그것이 이번에 출간된 여사의 시집, "영원을 걸으며"의 전모이다. 아무도 함께 하는 이 없이 홀로 애쓰며 맺히신 고독한 열매를 모두가 함께 맛보게 되었으니 참으로 감격스럽다. 여사의 시 망부석과 사군가에 수놓인 망부의 애상, 유한과 고신적적에 스며진 청상의 고독, 애모곡에 넘치는 절절한 모정, 사자모에 드러난 애틋한 효심....


서정이 넘치고 잔 정이 많으신 여사는 천생의 가냘픈 시인이시다. 무엇보다도 삶의 온갖 탄원을 기도로 배태하여 시의 옷을 입혀 출산시킨 진솔한 기도의 시집을 가지게 되어 참으로 대행스럽다.


그러나 이번 시집이 여사의 모든 작품이 아니다. 또 다른 두 작품이 벌써 세상에 빛을 보였다. 여사의 인생 역작인 아들과 따님이다. 서울 가신 아빠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철부지 세살짜리 아들 무흠은 그후 의대를 나와 어엿한 의사가 되어 국내외에서 자선을 계속하다가, 어머니의 바램을 자신의 소원과 아울러 마침내 목양자의 길에 들어서 지금은 미국에서 안수받은 중견 목사로 애오라지 목자의 길을 걷고 있다. 참으로 갸륵한 일이요 장한 아들이다. 그리고 그 때 한 돐이었던 포대기 속의 딸 귀주는 대학을 나온 후 선교와 봉사로 이름난 의사의 아내로 미국에 살고 있다. 언제나 어머니의 마음을 뿌듯하게 하는 그 어머니의 그 따님처럼 살고 있다. 슬하에 두신 될성부른 손자 다섯과 손녀 하나는 여사가 신명을 다 해 쓰신 인생 시집을 영원히 빛내주는 편편의 자작시들인 것이다.


1979년 도미하신 이래 자녀들과 함께 사시며 기도를 호흡으로, 말씀을 음식으로 삼고 사시는 여사는, 이제 잠시 후 그 모습을 드러내실 영원한 하늘의 님을 오늘도 애타게 기다리시는 불퇴전의 영원한 망부석으로 우뚝 서 계시다. 


오상고절 박옥종 집사님의 여생에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가득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리고 싶어져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뫃는다. 나의 어머님을 위해서처럼...


1992년 12월 12일 


서울의 교외 청학리 산 기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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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흠님의 댓글

no_profile 정무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명지원 2015.04.20 02:35

그 삶의 무거운 짐, 불면의 날들, 그 온갖 슬픔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연약한" 딸을 부르는 "인자한 그 음성".

애끓는 그 어머니의 슬픔을 이긴 삶은 자녀의 푯대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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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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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LA 기사 - "시집 [영원을 걸으며] 발간한 69세 박옥종 여사" "청소년 위한 작품 쓰고싶어" "인생의 희비, 신앙심 섬세히 그린 30여년 틈틈이 쓴 2백여편 수록"

녹의

"꿈인양 녹의 떨쳐
소리 없는 환호 속에

태양은 부신 깃발
태고와 의연하다

무수한 깃발 너와 나
바람으로 얻어진 날

한풍 매선 채찍
남은 날 헤어가며

언젠가 꿈은 진정
이루리 믿던 마음

오늘사 성의 떨치고
햇님 맞아 웃으리

갈라디아서 5장 5절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이 글은 칠순을 바라보며 그동안 겪어온 인생의 희비와 깊은 신앙심을 결집시켜 책으로 펴낸 박옥종 여사의 시집 [영원을 걸으며]에 수록된 [녹의]라는 시조다.

1959년부터 1991년까지 틈틈이 눈앞에 떠오르는 시상을 노트에 적어놓았던 글중 2백여편을 골라 시집을 발간한 박여사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의 건강과 여유, 그리고 섬세한 표현력을 보여주고 있다.

1924년 경북 영천 태생인 박여사는 20세 되던 해에 결혼하고 남매를 얻었으나 6.25때 석탄공사에 근무하던 남편을 잃는 슬픔을 맛보아야 했다.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은 박여사의 글중에도 자주 나타나고 있으며, 때문에 [통일]을 염원하는 한국현대사의 비극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후 자녀들을 고아로 만들 수 없다는 일념으로 일제때 획득했던 교사자격증을 이용, 남천국민학교 등에서 잠시 교단에 서기도 했던 박여사는 [만성신장염]으로 인해 더욱 어렵고 힘든 생활을 살아야만 했다.

그러나 험한 인생의 격동 속에서도 남다른 향학열을 불태우기도 했던 박여사는 37세 때 대구 청구대학 국문과에서 공부하기도 했으며, 1979년 도미이후 1991년에는 레이크 미쉬간 칼리지에서 수학할 정도였다.

신문 및 잡지등에 자신의 작품을 싣기도 했는데 서두에 쓰여진 시조 [녹의]는 가람 이병기 선생의 추천으로 [여원]지에 실렸던 작품이다.
박옥종 여사가 쓴 글은 6.25의 생생한 기록이 담긴 2천5백매에 달하는 장편소설을 비롯해 큰 상자에 넘칠만큼 많은 양이 있었으나 미국으로 이주하는 준비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태워버렸다고 하면서 "나의 글이 불속에서 사라질 때마다 아깝고 안타까와 쳐다볼 수가 없었지요"라고 회고했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하고픈 일이 많다는 박여사는 새벽 4시에 일어나 기도와 함께 산책을 즐기고 대부분의 시간을 독서에 할애하고 있다.

김소월, 이광수의 작품을 좋아하고 도산 안창호선생을 가장 존경한다는 박여사는 "요즘은 내가 영어를 잘 했으면 참 좋을 텐데"라는 아쉬움과 함께 한인 청소년들을 위한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시집을 발간한 후 변화에 대해 박여사는 독자들에게서 호평의 전화가 걸려오고 때로는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며 독자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황성락 기자 - 한국 일보 LA 1993.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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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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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시카고 기사! "끝없는 감사와 찬양의 삶" "시선 [영원을 걸으며] 펴낸 박옥종 여사]" "[청상의 망부석] 40년의 한과 고통 2백편의 신앙시로 승화시킨 역작"

25살의 아름다운 나이에 6.25 사변으로 남편이 행방불명, 40년간 [청상의 망부석]이 된 박옥종 여사(69세)가 최근 [영원을 걸으며]란 시선을 펴내고 기뻐하고 있다.

[시조사]에서 발간된 동 시선에는 [엔학고래], [소망의 별], [나의 기도]등 험한 인생의 여정 속에서도 구원의 밧줄을 놓지 않고 기쁨과 탄원, 슬픔과 고통을 줄줄이 꿰어 하나님께 바친 2백편의 주옥같은 글들이 3백여 페이지에 가득 차 있다.

시카고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 담임 정무흠 목사의 어머니인 박옥종 여사는 경남여고 출신으로 대구 청구대 국문과에서 수학했으며 1991년 레익 미쉬간칼리지에서, 도 삼육대 신학과에서도 공부의 근을 놓지 않고 배움의 집념을 불태우며 수많은 시들을 써왔다가 이번에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경북고교 출신의 남편을 맞아 모든이의 선망의 대상이 된 행복한 결혼생활이 전쟁으로 7년만에 끝이 나고 온실속의 꽃이 냉혹한 바깥 땅에 내동댕이 쳐진듯 밤마다 단말마의 고통에 시달리다가 [복잡다기 요급심장치료]라는 진단을 받게된 어느날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이 가슴을 비수로라도 열어봤으면"하고 몸부림쳤다는 박옥종 여사.

그러나 부처도, 육신의 부모도 살려줄 수 없었던 생명의 외경 앞에서 빈사의 상태에서 드린 기도와 탄원이 하나님께 상달되어 오늘의 행복한 삶을 얻게 되었다는 것.

"가랑잎 굴러가는 소리에도 사랑하는 남편의 발자국 소리인가 방문을 여시고 한밤중에라도 아버지가 오시면 즉시 문을 여러드려야 된다시며 옷입은채로 주무시던 어머니, 아침 식사 때면 제일 먼저 밥그릇 떠서 아랫목에 묻어두시던 너머님이, 요즘은 자식들과 손자, 손녀, 외손자들까지 다 믿음안에서 공부 잘하고 건강해서 무척이나 행복하시다"고 정무흠 목사는 말한다.

"이제는 남편 잃고 잠안오는 밤의 말할 수 없는 번뇌를 쏟아놓는 글을 쓰지 않고 나의 생명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께 끝없는 감사의 찬양의 글을 바치며 이 넘치는 은혜를 이웃에게 나누고자 살아가고 있다"고 박여사는 최근의 심경을 고백하고 있다.

"안된다. 죽어서는 안된다. 너는 두 어린 생명의 너머니가 아닌가. 네가 죽으면 두 아이는 고아가 될 것이다..."

그 고통스런 죽음의 순간에 어른거렸던 한살짜리와 세살짜리 아이들이 커서 어엿한 정신과 의사 출신의 목사가 되었고, 한국의 미 공군 병원 부원장 김영섭 장로의 부인도 되었다.

시집출판 못지 않은 인생의 또다른 역작이 된 것이다.

또한 손자, 외손자까지도 로마린다 의대에 진학, 학교 부근에서 그 핏줄들을 돌보며 남북통일의 소원을 품고 [도르가]와 같이 어려운 이들을 구제하며 성경대로 실천하려 애쓰는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다.

"나 낙심되어 주저앉았을 때
내 귀에 안위의 말씀을 주셨으며
슬픔에 싸인 내게
주의 사랑으로 가득 채우셨기에

아아 주님,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내 곁을 떠나가도
주는 영영 나와 함께 하시리니...."

시집의 제목처럼 [영원을 걸으며] 함께 동행하실 이가 있는 행복한 그 길을 박옥종 여사는 이제, 기쁨에 겨워 편편의 자작시로 남기면서 살아가고 있다.

배미순 기자 (한국 일보 시카고 1993.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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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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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하나님은 알지 못하였지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던 분들***
박옥종(정무흠 목사의 어머니)

"일본 사람들이 진주만 공격으로 대승리를 거두었다고 성대한 축하 행진을 하고 완전히 들뜬 기분을 내고 있던 그 해에 우리 외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내 나이 만 12세(우리 나이로 14 세), 부산 여고보 1학년 때였다. 내 생애에 처음으로 가까운 분이 돌아가신 슬픔과 무상을 느낀 첫 사건이었다. 사춘기의 소녀의 가슴에 큰 충격이었다...

나의 외할아버지에 대한 가지가지 추억들이 되살아난다. 특히 오빠들과 내가 한 해 겨울 방학에 외가에 갔을 때 보았던 사건이 생각이 난다.

새벽같이 어린 소녀가 엄마 등에 업혀서 할아버지가 계시는 사랑 앞에 들이닥쳤다. 화상을 크게 입은 아이였다. 소녀의 아버지는 술버릇이 나쁜 사람이었는데 이 새벽에 술에 만취가 되어 집에 돌아오자 화로를 들어 집어 던졌는데 그 불이 잠자고 있던 딸을 덮친 것이었다.

그 엄마는 어쩔 줄을 모르며 울며 할아버지께 애소하는 것이었다.
“불쌍한 이 어린 것 살려 주이소! 살려 주이소!”

외할아버지는 그 엄마를 위로하며 안위시키며 그 딸아이의 화상 입은 얼굴과 목과 가슴과 팔에 흰 고약을 바르셨다. 매일 그 엄마는 딸을 업고 왔고 그 어린 딸의 상처는 나아갔다. 나중에 들으니 그 소녀가 상처 없이 깨끗이 나아서 예쁜 처녀가 되었고 시집을 가서 잘 살고 있다고 들었다.

외할아버지는 연구심이 많은 분이었고 다른 사람을 도우시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예비하시는 분이었다고 생각된다. 외할머니가 발찌가 났을 때 대구 동산 병원에 입원하셔서 치료를 받으셨다. 그 때 그 병원에서 두 가지 연고를 쓰는 것을 보시고 외할아버지는 그 제조법을 물어서 그 연고를 예비해 놓으셨고 그 연고를 써서 그 화상 입은 여아를 상처 없이 낫게 하셨던 것이다.

외할아버지의 별세는 온 동네의 슬픔이었다 한다.
“한 5년만 더 살아계셨어도 우리가 잘 살게 되었을 텐데…….”
하고 동네 사람들이 한탄을 하였다고 한다.

이웃을 자신의 몸같이 사랑하신 외할아버지, 그 분은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 곧 기독교의 하나님은 알지 못하셨지만 천의(天意)를 깨닫고 천의(天意)에 따라 살았던 분이라 생각된다...

외할아버지 별세 후에 외할머니께서 우리 집에 다니러 오셨다. 언제나 두 분이 같이 다니셨는데 혼자 오시기는 처음이었다. 우리는 외할머니한테 얘기해달라고 졸라댔다. 외할머니께서 그 때 들려주신 얘기가 있는데 그 얘기는 이러했다.

어떤 가세가 기울어진 양반집에 모자만이 살고 있었다. 그 많던 노비들도 다 떠나고 모자만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말씀하시기를, “아들아, 우리 집 노비들이 아무데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여기 노비문서를 가지고 찾아가서 그들을 면천(免賤)시켜 주고 그 대신 그들의 형편대로 그들의 성의를 받아오면 이 곤경을 면할 것 같구나.”

아들은 어머니의 말씀대로 종들이 한 동네를 이루고 살고 있다는 곳으로 떠났다. 옛 주인을 종들은 반가이 맞이해 주었다. 그들의 노비 문서를 다 불사른 후 사정을 이야기하자 종들은 다 감동하여 어진 주인의 가정의 형편에 마음 아파하며 자기들의 힘대로 삼천 냥을 모아 말에 실어 젊은 주인을 보냈다.

그러나 그 아들은 그 돈을 집에까지 못 가져오고 중도에서 다른 일로 없애고 만다. 강을 건너려고 할 때, 그는 한 늙은 남자와 두 여인이 울면서 깊은 강물 속으로 뛰어들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하고 그는 그들에게 물었다.

"나의 독자가 빚을 갚지 못해 감옥에 있습니다. 오늘 중으로 3000냥을 갚지 못하면 그는 처형당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외아들이 처형당하기 전에 나의 아내와 며느리와 함께 자살하려 합니다."

"제발 자살하지 마십시오. 내가 3000냥을 드리겠습니다."라고 그는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의 전 재산을 그들에게 주고 돈 한푼 없는 빈털털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고대하고 있던 어머니에게 모든 이야기를 소상히 아뢰었을 때 그 어머니는 무엇이라 말했을까?

“아들아, 인명을 구하는 것이 가장 귀한 일이니라. 네가 참으로 잘 하였도다. 한 사람의 생명 때문에 다른 세 가족의 생명도 위경에 놓여 있었다니 네가 어찌 네가 얻은 돈이라고 사지에 이른 사람들을 못 본 체하고 올 수 있었겠느냐?

바로 너를 그 시간에 당도하게 한 것은 천의(天意)였느니라. 천의가 무심치 않아 그들을 살리셨거늘 어찌 너와 나의 생명인들 굶어 죽게 하시겠느냐?”

참으로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었다.

지금 내가 하나님을 믿고 보니 하나님의 뜻은 정직하게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게 하고 계시는 것이다...

근검절약(勤儉節約)

나의 외가에서 본 추억들 중에는 마치 활동 사진의 필름이 전개되듯이 선연하게 나타나는 장면들이 여러 개 있다. 그것들은 거의 10세 미만 때의 회상이다.

내가 그 때 일을 일부러 생각해 보려고 해서 오는 현상이 아니라 문득 문득 내 생애에서 내가 외할아버지가 생활하시던 장면을 회상하며 나도 본 받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축대에 떨어져 있는 쌀을 하나하나 주우시던 외할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그 외할아버지의 모습 때문에 한 알갱이의 곡식도 한 톨의 밥풀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외할아버지는 부자였고 존경 받는 어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질하다가 그랬는지 어떻게 되어서 쌀이 떨어져 있었는지는 모르나 그것을 발견하신 외할아버지께서 아무 말씀 않으시고 그 한 알갱이 한 알갱이를 줍고 계셨던 것이다.

외할아버지는 가난한 이웃과 친척을 돕는 일과 또 모든 사람에게 손 대접하는 일이나 가족들에게나 후한 분이었다. 그러나 외할아버지 자신의 곡식 한 알갱이도 소홀히 하지 않으시는 근검절약의 정신으로 말미암아 집안사람이나 자손들이나 친척들이나 온 동네 사람들까지 그 혜택을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셔서 한 머슴에게 정해놓은 시간에 종을 치게 하시고 가난하여 학교에 못 보내는 집 아이들을 외할아버지 사랑방에 모아 공부를 가르치시고 사랑채의 한 방에 차려져 있는 한의원의 모든 재료로 동네 사람들에게 무료로 치료를 베푸시며 들레지 않고 조용히 언제나 누구에게나 선을 베푸시던 외할아버지였다.

부지런해야 된다는 것을 생활로써 모본을 보이셨다..."

**그 영광의 빛 속으로! 제 1부 출생과 배경 중에서 (박옥종)**
kasda.com 글동네에서 그 영광의 빛 속으로 1-5부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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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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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충만한 화잇 여사가 쓴 "시대의 소망"에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글이 있습니다.***


" 이방인 가운데서 하나님을 모르고 섬긴 자들 즉 인간의 도움을 통하여
한 번도 빛을 받지 못한 자들일지라도 멸망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기록된 하나님의 율법을 알지 못하였으나 자연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율법이 요구하는 일들을 행하였다.

그들의 행위는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을 감화시킨 증거이며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을 받는다."

구원의 소망 80쪽,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의 가정에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과 은혜와 영원한 생명의 축복 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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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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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하 목사***
2013.10.19 09:50

정무흠 목사님.
제가 오늘은 우리 아이들이 일찍 함께 잠을 자자고 조르는 바람에
저녁 9시 반쯤 잠자리에 들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새벽 1시쯤 잠에서 깨어
정목사님이 올려 놓으신
어머님의 자서전같은 글들을 4시간여 읽었습니다.

구구절절.... 진심과 정직, 하늘을 향한 끊임없는 믿음,
윗 어르신들에 대한 예의와 자녀들에 대한 지극함,
하나님과 사람 앞에 언제나 반듯하게 살아 오신
어머님의 삶이 저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최근 들어 이렇게 오랜 시간을 남의 글들을 읽은 적이 없었는데, 정말 정목사님의 어머님의 글은
결코 중간에 멈출 수 없는 진지함과 더불어 흥미를 갖게하는 놀라운 힘이 있었습니다.

훗날, 하늘에서 정목사님의 어머님을 뵈올 것을 생각하며
이 새벽 어머님을 사랑하시고 정목사님의 가족들을 사랑하신 그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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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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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원 교수***
2014.06.01 08:57

은혜로운 글, 마음에 오래 남는 댓글들. 어머니의 사랑과 기도, 그 힘의 위대함을 느낍니다.
박옥종 어머니의 글과 시를 꼭 읽고 싶네요. 박옥종 어머니의 자손들은 참 행복한 분들입니다.
푯대를 명확히 하신 어머니는 위대한 분입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이 모든 자손들의 발길 이르는 곳마다
늘 발자욱에 묻어나 또 다른 발자욱으로 이어질 것을 확신합니다.

박옥종 어머니의 글이 드디어 저에게까지 왔네요. 수천 수만 명 중에 하나로 포함되어 진심으로 행복합니다. 정무흠 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와 형제 자매들 속에서 막내로 자란 저로서는
박옥종 어머니의 삶이 나의 어머니의 그것처럼 가슴에 오래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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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흠님의 댓글

no_profile 정무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박진하 목사***
2014.06.07 06:07

정목사님,
좋은 글, 감동적인 간증 감사합니다.

지금 저희 명광 교회에서는
목사님의 자당 고 박옥종 집사님의
자서전 읽기 열풍이 일고 있습니다.

100만원 고료 당선작 원고 모집을 5월 말까지 했으나
워낙 책의 양이 많아 6월 15일까지 기간을 연기했습니다.

저희 교회 여집사님들은 대부분 참여하여
인터넷에서 그 많은 양의 내용을 모두 복사하여
세심히 읽고 있습니다.

담임 목사로서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제가 새벽에 일어나 5시간여 박옥종 집사님의 뜨거운
재림 신앙의 전기를 읽으며 받았던 그 감동이
우리 교회 여집사님들에게 고스란히 전달 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박옥종 집사님의 파란 만장한 삶 속에서
오직 주 여호와를 의지하며 재림 신앙을 굳건히 지키신
그 아름다운 삶은 우리 교회 여집사님들에게 큰 교훈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상금 100만원하고는 견줄 수 없는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열매로 그들의 삶에 보답 될 것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명광 교회 뿐 아니라 우리 재림교회에 수 많은 여성들이
고 박옥종 집사님의 신앙을 본 받아
이 마지막 때에 참으로 훌륭한 믿음의 여성들이 많이 나타나길 기도합니다.

그러한 여성들이 많이 나타날 때 또한 이 교회를 이끌어 갈 훌륭한
아들 딸들이 수 없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목사님의 자당 고 박옥종 집사님께서
앤드류스 교회인지 어디서인지 새벽 기도 시간에
낭랑한 목소리로 말씀을 읽으시던 그 음성이 제 귓전에 남아 있습니다.

남은 생애 더욱 건강하시고 기도하시고 계획하시는 모든 일들이
주 안에서 형통하시길 간절히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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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흠님의 댓글

no_profile 정무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불쌍한 딸아! 내가 여기 있노라!!! - 박옥종 (정무흠 목사의 어머니)
2008.03.11 23:07 
조회 수: 9790  추천:58 

나는 가장 연약한 사람이었다 
몸도 마음도 불면 날아갈 듯 
이 세상에서 살기에 지쳐 쓰러져가는 인생이었다 

가장 연약하고 가장 못난 
이 인생을 불쌍히 여기사 
주님께서 이끌어 내셨다 

천애 낭떠러지 밑에서 
구원자만 애타게 기다릴 때 
절망은 가슴을 짓눌렀었나니 

오 주여, 희미한 빛조차 없던 
그 캄캄한 밤 
신음하며 오열하던 그 슬픔의 날들 

누구에겐지도 모르게 내 팔을 뻗고 
떨리는 손끝으로 더듬었을 때 
불쌍한 딸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인자한 그 음성이 음악처럼 들렸네 
너는 이 밧줄을 꼭 잡아라. 
한줄기 생명의 빛과 함께 내려진 밧줄 

매달리며 
매달리며 
나는 흐느껴 울었노라. 

(박옥종 著, 영원을 걸으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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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흠님의 댓글

no_profile 정무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 영광의 빛 속으로 - 박옥종  5그 영광의 빛속으로 제 5부 감사의 노래 - 박옥종정무흠2013.06.197364그 영광의 빛속으로 제 4부 침례! 새출발! 인생역전! - 박옥종정무흠2013.06.197183그 영광의 빛속으로 제 3부 한국 동란! 고난의 세월! 가난 속에 핀 꽃 - 박옥종정무흠2013.06.1930652그 영광의 빛속으로 제 2부 행복한 결혼! 해방! 아들, 딸의 출생!- 박옥종정무흠2013.06.196881그 영광의 빛속으로 제 1부 출생과 배경- 박옥종정무흠2013.06.19724

박진하2013.10.19 13:55
정무흠 목사님.

제가 오늘은 우리 아이들이 일찍 함께 잠을 자자고 조르는 바람에

저녁 9시 반쯤 잠자리에 들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새벽 1시쯤 잠에서 깨어

정목사님이 올려 놓으신

어머님의 자서전같은 글들을 4시간여 읽었습니다.

 

구구절절.... 진심과 정직, 하늘을 향한 끊임없는 믿음,

윗 어르신들에 대한 예의와 자녀들에 대한 지극함,

하나님과 사람 앞에 언제나 반듯하게 살아 오신

어머님의 삶이 저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최근 들어 이렇게 오랜 시간을 남의 글들을 읽은 적이 없었는데

정말 정목사님의 어머님의 글은

결코 중간에 멈출 수 없는 진지함과 더불어 흥미를 갖게하는

놀라운 힘이 있었습니다.

 

훗날,

하늘에서 정목사님의 어머님을 뵈올 것을 생각하며

이 새벽 어머님을 사랑하시고

정목사님의 가족들을 사랑하신

그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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