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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n Essay 신인상 당선작} 김치 담그기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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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치 담그기와 인생 /   이경아

                                                                                                         (가든수필문학회 회원)

 

                                       

    봄이 오려면 아직도 한참을 기다려야하는 1월 중순인데 봄 동 배추가 나왔다고 한다.

 

   먼 길이지만 봄 동 배추를 사러 나섰다. 남편은 익은 김치보다 생김치를 좋아한다. 아마도 시골출신이라 산나물을 좋아하듯 김치도 금방 한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사실 우리 냉장고 속엔 여러 종류의 김치가 있다. 한약재로도 쓴다는 부추김치, 남편이 좋아하는 파김치, 배추김치, 간에 좋다는 미나리김치, 동치미가 있다. 가끔은 풋 배추, 열무, , 쪽파, 미나리, 부추에 붉은 고추와 양파를 갈아서 버무린 김치를 담그기도 한다. 나는 푹 익은 김치를 좋아 한다. 나의 입맛을 닮은 아들과 딸도 신 김치를 좋아하며 김치전, 김치찌개를 제일 잘 먹는다.

 

    사실 맛있는 김치를 만들려면 배추가 좋아야한다. 통배추나 풋 배추를 살 때 내가 찾는 것은 푸른색이 짙고 배추 잎이 적당하게 두툼한 배추다. 두껍거나 얇아도 맛이 없다. 통배추를 사서 조각을 낼 때 칼을 윗부분에 넣어 손으로 쭉 갈라주면 속이 꽉 찬 노란 색이어야 한다. 겉의 녹색이 차츰 옅어지다가 속이 노란 색으로 바뀌어가는 배추를 본다. 그럴 때면 나도 이렇게 빛깔 고운 배추 속같이 꽉 차서 어디서든 제 몫을 하는 풍성한 사람이라면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제 인생의 늦가을에 서서도 아직 혈기가 남아 여름인양 사는 내가 부끄럽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냥 웃어주고,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상대편이 좋아할 소리하면서 대충 살아야하는데, 그래야 편하게 사는데 나는, 그것이 힘들다

 

    배추를 들여다본다. 작은 씨앗 한 톨이 더위도 견디고 해충과 바람에도 꿋꿋이 살아남아 튼실한 배추로 자란 것은 감동이다. 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사랑 받으면서 불평하고, 더워도 추워도 투덜대며 작은 일도 힘들다고 포기하곤 하는데 말이다. 이러지 말아야지 혼자 다짐하고 돌아서서 반복하는 나를 보면 한심하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면서도 자신의 이익에만 충실한 사람들을 보고 찡그리고 비난하기 전에 한심한 나부터 고처야 하는데---

 

    김치를 담그기 위해서는 먼저 소금물에 절여야 한다. 배추가 알맞게 절여져야 김치가 맛있다. 배추에 소금을 칠 때면 나를 절여주는 남편을 생각한다. 결혼하기 전 나는, 뻣뻣한 생 배추였다. 잘 나지도 않았는데 혼자 잘난 척하여 남자들을 우습게 보는 속된 말로 콧대 센 여자였다. 결혼을 하고 시집살이를 미국에서 하면서 나를 소금물에 담그고 가끔은 자신에게도 소금을 뿌려서 함께 절여지기도 한 남편. 그러면서 나는 남편에게도 시집식구들에게도 절여지지 않았을까. 아직도 가끔 덜 절여진 곳에서 풋내를 풀풀 내며 나를 나타내고자 한다. 그러다가 남편에게 핀잔 듣고 찔끔할 때도 있다.

 

    맛있는 배추가 알맞게 절여졌다고 하면 양념이 필요하다. 젓갈, 고춧가루, 마늘, , 생강 외에도 지방마다 김치에 넣는 양념이 다르고 맛도 다르다. 김치를 담글 때면 세상살이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배추만 가지고 김치를 만들 수 없듯이, 나 혼자 살수 없는 것이 세상이다. 다양한 관계 속에서 밀고 당기며 볼 것, 못 볼 것 모두 삭이며 살아야 한다. 냄새 고약한 잘못 삭힌 젓갈 같은 사람이 있고, 눈물이 찔끔 나도록 독하고 매운 사람도 있다. 그럴듯해 보여도 뒷맛이 별루인 사람, 맛이 있는 것 같아도 조미료로 맛을 속인 사람. 생긴 모습이 다르듯 성품도, 살아가는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우리 주변에는 몸에 좋은 마늘이나 생강, , 고소한 통깨 같은 사람이 더 많긴 하다. 양념이 잘 배합되어 배추에 어우러지지 않으면 김치 맛이 없듯이 살아감도 마찬가지다

 

    나는 담백한 새우젓갈보다 곰삭은 멸치젓갈로 김치를 담근다. 푹 삭은 멸치젓은 경상도 김치에 꼭 필요하다. 비린내 안 나게 잘 삭은 멸치젓갈 같은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내가 한국마켓을 하던 33년 전에 손님으로 알게 되었다. 유난히도 피부가 하얀 그녀와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같고 취미도 비슷해 말이 잘 통하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김치를 담글 때 필요한 갖가지 양념 같은 친구들이 주변에 있다. 세상사는 일이 어찌 기쁘고 행복하기만 하랴. 슬프고 고통스러울 때 언제나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음은 삶에 큰 힘이다. 인생에 중요한 것이 재물이라지만 그 우위에 친구를 놓고 싶다.

 

    친구들 한 사람씩을 떠올려 본다. 내 인생의 김치를 담근다면 나 자신이 별로 좋은 배추가 아닐지라도 양념들만은 최상품인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어떤가. 과연 친구들 인생에 좋은 양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내게 꼭 필요한 친구를 따지기 전에 친구들에게 나는, 꼭 필요한 존재인가를 먼저 생각해보아야겠다.

 

    알맞게 절여진 배추에 갖가지의 양념이 들었다고 해도 사랑과 정성으로 버무리지 않으면 그 김치는 잘 만든 김치가 아니다. 어떤 음식이든 만든 사람의 사랑이 듬뿍 들어가야 한다. 추운 바람과 짧은 일조량을 꿋꿋이 버티고 봄도 되기 전에 자신을 드러낸 봄 봉 배추로 겉절이를 만들어 오늘 저녁 밥상을 차려야지.

 

    남편의 좋아하는 모습이 떠올라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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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숙님의 댓글

no_profile 윤은숙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름다운 작품에 박수를 보내면서,
김치를 맛나게 잘 담그지 못하는
제 인생의 '손맛'을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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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진님의 댓글

no_profile 박봉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윤은숙 교우님 안녕하세요.
정제된 문학수필작품을 공감하심은 작가, 독자가 혼연일체기로 반갑습니다. 
작품 소재의 의미화 추출이나 문장의 형상화표현은 그만큼 내공결실이겠지요.
작품을 즐감해주신 것만으로도 ‘가든수필문학회’ 회원들은 고마워하실 것입니다.
일상이 늘 즐거우시고 건강 건필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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