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낳은 사랑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하늘아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어머님의 사랑은 가이 없어라"

본능적이고 동물적 사랑이라고 해도 좋은 낳은 사랑이란  "생육하고 번성하라" 고 하신

당신의 명령속에 포함된 모든 어미된 것의 사랑이다. 생명을 낳는 과정에서 끓어 오르게 하는

사랑의 원천은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다. 그호르몬이 많이 분비가 되면 아기가 나오는

좁은 통로가 잘 열리고 젖줄이 원할하여 질 뿐 아니라 자신의 몸에서 태어난 자식에 대한 애착이

상상을 초월하리만치 강하여 지고 심지어는 그렇게 아팠던 산통도 쉽게 잊어 버린다고 한다.

내 아내는 첫아들을 낳아 놓고 병동에 누워 이런말을 했다.

"우린 다시 아기를 갖지 말자" 하는.

자신이 낳은 첫아이  말고 다시 다른 아기를 낳아 그에게도 사랑을 나누어 준다는 것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이었다. 아마도 그 옥시토신이 무지하게 흘러 나오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성경에는 "다시는 아기를 갖지 말자" 고 하는 내 아내의 심정보다 더 애틋한 사랑의 표현이 있다.

창세기가 말하는 사람의 기원에는 남자의 기원과 여자의 기원이 다르다.

남자는 손으로 빚어 만들었다고 하는 히브리어 "아싸"라는 말의 표현과 같이  흙에서

나온 존재다. 그러나 여자는 그 남자의 갈빗대에서 남자의 뼈와 살이 빠져 나오는 출산의 형태로

나오게 된 존재이다. 갈빗대라고 표현된 히브리어의 어근이 "제라" 인데 나중에 야곱의 환도뼈에도

사용이 되고 전체적으로는 "씨"라는 개념으로 발전이 되었다. 그것을 다시 풀이해 본다면 남자의

씨에서 출산한 자식이라는 의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출산이 된 여자 앞에서 여자를 낳은 남자가 선언하는 말을 잘 되씹어 보면

그 말의 의미가 성경의 전체를 덮어 버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시작이 되는 의미심장한 말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는 내 뼈중의 뼈요 내 살중의 살" 이라는 선언이다.

최초의 부부가 범죄를 한 후에 하나님의 선언이 남자와 여자에게 각각 다른 심판을

선언하는 것도 이런 구도에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흙에서 나온 남자에게는 단순하게 다시 흙으로 돌아가라고 선언 하신다.

그러나 여자에게는 고통중에라도 출산의 과정을 거치며 남자를 바라고 의지하라는

복음적 선언을 하셨다.

신구약 전체의 구도는 남자의 몸에서 나온 이 뼈와 살을 찾아 오는 한 남자 (?)의 울부짖음이다.

잃어버린 자 즉 뼈와 살을 찾아 나서는 그 남자의 죽음의 대 서사시라는 말이다.

아흔 아홉을 두고서라도 찾아 오시는 이유이다.


기르는 사랑

낳은 자가 낳은 것을 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동물과 사람의 차이는

동물은 새끼가 자라는 시기가 아주 짧고 기르는 방식도 매우 단순하다.

그러나 사람이 자라는 시간은 의외로 길고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가장 긴 시간의 성장기를 계획하셔서 기르는 사랑이

낳은 사랑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시편 106편에는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던 광야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 는 기르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역할을 소개한다.

섬기려 오신 하나님의 아들은 "뼈와 살" 을 찾으려고 오신 분이시며 동시에

돌보시기 위해 오신 분이시다.


맺어진 사랑

맺어진 사랑은 짐승에게는 없는 사랑이고 이 사랑이야 말로

사람과 짐승을 구분하는 분깃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짐승은

암수간에 오직 생산을 위한 관계를 맺지만 사람은 둘사이에

전혀 다른 존재들이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후에 만나서

하나가 되고 하나의 방향으로 함께 가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이다.

낳은 사랑과 기르는 사랑이 일방적이라고 한다면 맺어진

사랑의 연결은 상호 협력적이지 못하면 지탱하기가 어려워 진다.

죽음 이외에는 나눌 수 없는 사랑으로 성숙하려고 한다면 

낳은 사랑이나 길러주는 사랑 못지않게 어렵고 힘든 과정이 될 수가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소설속의 인물이지만 맺어질 수 없는

현실 앞에서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남녀간의 가장 뜨거운

관계이기도 하다.


맺어지는 사랑 또한 성경에 없을 수가 없다.

아가서는 온통 이 맺어짐의 사랑 노래라 할 것이다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으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다오"

"예루살렘 딸들아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로다"


영원히 맺어지는 사랑의 완성을 위하여 신랑이 오실 것이다.

다섯이라는 슬기로운 예루살렘의 딸들을 맞이 하기 위하여.


완전한 사랑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시더니 백년가약이 아니라

영원가약으로 맺어 주시려고

그 분이 오실 것이다. 적어도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일에

실패하지 않으신 그 분이 다시 신랑과 신부의 관계를

맺기 위하여 오실 것이다.

아가페는 낳으시고 기르시며 맺어 주시는 완전한 사랑이다.

이 사랑앞에서 우린 무슨 의심들이 그리 많을 수 있겠는가.


카스다 가족들의 가정에 이 놀라운 사랑의 기별이 그 분이 오실 때 까지

항상 함께 하기를 빈다.


당신은 그분의 살과 뼈임을 믿으시는가?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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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환님의 댓글

no_profile 박정환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맺어진 사랑을 온전히 구현하기가 갈수록 더 어려워진 세태인 듯 합니다.
하지만 사랑의 성령의 능력으로는 가능하겠지요.
올 한해 보다 더 그런 사랑을 체험하도록 성령께서 도우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장도경 장로님, 반갑습니다.
뵌지 오래지만 이렇게 온라인으로라도 뵈니 반갑습니다.
글로라도 만나다 보면 실제 호탕한 웃음과 모습의 장로님을 뵐 날도 오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새해에 장로님 가족에게 하늘의 기쁨과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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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경님의 댓글의 댓글

no_profile 장도경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명지원 박선생님
박사님이라고 불러야 할지 아니면 장노님이라고 불러야 할지
십년이 훨씬 넘는 세월이 흘러서 그간의 변화를 잘 알 수 없지만
아직도
길쭉했던 키와 사모님의 후덕해 보이는 얼굴 기억합니다.
맺어지는 사랑의 엔진은 말씀한대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건강이 많이 좋아졌단 소식을 듣긴 했읍니다.
아직도 둘째 (치과의사) 가 로마린다 근처에서 월급쟁이로
일하고 있읍니다.
한번 그쪽으로 가게 되면 만나서 옛날 이야기 한번
할 수 있겠지요?
 다시한번 반가움을 전합니다.
사모님께도 안부를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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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환님의 댓글의 댓글

no_profile 박정환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명지원 대개 외부인들은 박사로, 알고 지내는 이들은 장로로 부르지만 뭐라 부르셔도 좋습니다.
아내도 사람좋고 멋진 분 장로님으로 기억하네요. 저는 이든밸리에서 만났던 멋지셨던 부친 장장로님도 그립네요..
로마린다 쪽으로 오시면 연락주시고 오랜 만의 만남 가지게 되면 반갑겠습니다. 저희는 데저트 핫 스프링스에 살고 있습니다. 
760) 88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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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경님의 댓글의 댓글

no_profile 장도경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명지원 아 그렇군요
아마도 봄쯤에 한번 가게 되겠네요.
기억속의 얼굴은 언제나 설레이는 대상이 아닙니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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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환님의 댓글의 댓글

no_profile 박정환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명지원 오시면 연락주세요.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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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경님의 댓글의 댓글

no_profile 장도경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명지원 그럴게요
감사
사모님께 안부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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