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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을 보내면서 하는 생각 / 하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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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 간다. 한 해가 접히고 있다. 나는 어김없이 연말 병을 앓는다. 떨침 증후군이라고 이름붙인 이 병은 면역성도 없는지 무디어지기는커녕 해가 갈수록 오히려 심해진다. 증세는 해마다 똑같다. 예민해지고 만사가 허무하다. 쫓기는 사람처럼 불안감과 초조감이 증가한다. 뭐든 정리 정돈해야 할 것 같은, 버리고 자르고 끊어야 할 것 같은 긴장감에 휩싸인다. 떠나보내고 싶은 충동,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폭발한다. 인간관계를 간소화하고 몸담았던 단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갖가지 이유를 만든다. 하루 종일 어떻게 결별을 고할까, 문장을 굴리느라 입안이 마른다.


물리적인 결단은 곰곰이 삭힌 다음에 실행하자 다짐하건만 맘속에서 태어나 뿌리를 내리고 잎을 피운 생각은 행동으로 옮겨야 직성이 풀린다. 이런 때 내 혀와 행동을 점검하여 일일이 지적해주는 인디언 멘토가 한 분 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맘속에 있는 생각을 모두 쏟아낼 필요는 없다고, 달력 속에 들어있는 시간의 노예가 되지 말라고, 준엄한 말로 꾸짖어주시면 좋을 텐데.


치렁치렁 너설너설한 꼬리를 잘라내고 떨쳐내고 싶은 것이다. 그동안 늘어난 관계의 꼬리가 시원시원 걸을 수 없게 만드는 장애물 같다. 이것만 떼어내면 나비처럼 가벼워질 것 같다. 단출해지고 안온해질 일상에 대한 꿈이 터무니없는 용기를 만든다.


쓸데없는 일인 줄 안다. 내가 굳센 의지를 발휘한다고 정리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루어야 할 일과 몫이 남아있으면, 아무리 떨치려 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때가 차고 역할이 다하면, 일은 멈추고 사람은 떠난다. 해 지고 어두워지면 그림자 사라지듯 슬그머니 물러가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5가지 인간관계의 틀 속에 묶여있다. 사랑하는 관계, 좋아하는 관계, 아무런 감정이 섞이지 않은 관계, 사이가 안 좋은 관계, 원수관계. 서로의 인지가 다르다는 것에 갈등과 아픔이 있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그대가 나를 무의미한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대와 나는 너는 내가 되어야 한다.”고 강요하거나 다그치지 않는 사이였으면 좋겠다. 우리가 서로의 생각과 행동에 원인이 되고 조건이 된다는 것을 인지하면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고 그의 처지를 돌아볼 수 있으리라. 그는 나의 또 다른 분신임을 깨닫는다면 넉넉히 받아주고 견딜 수 있으리라.


오늘, 문득 알게 되었다. 나의 조급증은 12월이라는 시간 때문이 아니라, 내 안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을. 지난 일 년 동안 이 일 저 일에 시달려 허망해지고 지친 마음이 바람소리처럼 신음하고 눈물방울처럼 흐느끼는 한탄이라는 것을.


가만히 엎드려 세월의 호흡을 듣는다. 얼마 남지 않은 12월을 낮고 낮은 마음으로 통과하고 싶다. 시간이 나를 스쳐지나가게 하고 싶다. 지난 일 년 동안 자라고 키워온 애정도 미움도 내 안에 스며서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뼈가 되었으면 한다. 오호, 떨치려하기보다는 차라리 보듬어 안아버려야겠다. 떠나려는 임을 붙잡았던 열정과 에너지로 품어버려야겠다. 맙소사, 어찌할까. 이 또한 지나가고 말리라.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51229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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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선님의 댓글

no_profile 한만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글을 읽으니 감탄을 금할 수 없네요.
한 해의 마지막을 맞는  인간적 고뇌,  울부짖음. 그렇다고 도망쳐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굴레.

하정아님의 글에서 아름다운 인간세상의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보이는데
이것들을 소재로 소설을 써 보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또 실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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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아님의 댓글의 댓글

no_profile 하정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명지원 소설을 잘 쓰시는 한만선 장로님,
소설 쓰는 법을 가르쳐 주시면 착하게 잘 배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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