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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 번 넘어지고 일어나기 / 하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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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는 발을 떼고 제대로 걸을 때까지 약 3천 번 넘어진다.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수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넘어지는데 하루 평균 20번이다.


아기는 머리가 몸통에 비하여 크고 무거운 가분수여서 신체의 균형을 잡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넘어질 때는 그야말로 온몸으로 넘어진다. 머리, 어깨, 무릎 등이 수없이 다치고 깨진다.


아기는 겁이 없다. 아프다고, 피가 난다고, 직립하고자 하는 의지를 버리지 않는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걸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아기는 넘어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손을 알고 넘어진 자신을 일으켜주는 손을 믿는다. 아기는 그렇게 걸음마를 배워 어른이 된다.


중국 대나무 모소(Moso)는 싹을 틔운 후 4년 동안 3센티미터 이상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땅 속에 수백 미터 깊이로 뿌리를 내리고 확장시키는 일에만 주력한단다. 5년 후부터는 하루에 수십 센티미터씩 쑥쑥 커서 몇 주 만에 30미터까지 자란다고 한다.


간밤에 기온이 뚝 떨어졌다. 출근길에 잔디밭을 가로질러 건물로 들어가는데 발밑에서 서걱서걱 소리가 났다. 서리 맞은 잔디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뼛속까지 얼었구나, 내 등골도 함께 시렸다. 낮에 해바라기를 하려고 밖에 나왔더니 잔디가 싱그러웠다. 그 푸른 잎이 투명한 오렌지 빛 햇살을 업고 있었다. 언제 얼었더냐, 언제 허리가 꺾였더냐, 하는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잔디도 이렇게 뼛속까지 얼고 부러져도 다시 일어서는데. 모죽도 시원하게 자라는데. 아기도 따박따박 걷기 시작하는데. 모두가 저토록 의연한데. 성급한 판단 때문에 큰일을 망쳤다고, 좋았던 인간관계가 깨졌다고, 무인도에 선 것 같은 감정 속에 넘어지고 빠질 일이 아니다. 사람관계도 잔디처럼 다시 살아나고 회복되기 마련이다.


한 어른이 전화를 주셨다. “우리 자주 만나자. 내가 너를 이제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겠니? 살아있을 때, 만날만 할 때, 열심히 보자. 사랑한다.” 빈 전화기를 들고 한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 세상 이렇게 둥글둥글 덮어주고 다독여주면서 지내면 되는 것을.


우리는 한때 3천 번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난 존재들이다. 머리가 깨지고 몸이 상해도 일어설 의지를 잃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걷고 뛸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다. 넘어지지 않는 인생이 어디 있는가. 넘어지는 일에 지치지 않아야 한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선한 목표를 버려서는 안 된다. 죽은 것 같지만 살아있다. 성장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힘을 축적하면 어느 날 우뚝 설 수 있다. 조금만 참으면 된다.


그대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몇 번이나 넘어졌는가. 아직 3천 번이 안 되었다면, 아니 그 십분의 일, 아니 백분의 일이 안 되었다면 눈물을 닦고 일어서야 한다. 넘어진 자의 아픔을 아는 손으로 그대 앞에 넘어진 사람을 붙잡아 일으켜 세워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 참, 그대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몇 번이나 삶의 고비에서 넘어진 사람들을 손잡아 일으켜 세워주었는가. 안간힘을 다해 일어서려는 그들을 혹 찍어 눌러 주저앉게 하지는 않았는가.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5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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