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이야이! Ai yai yai! / 하정아 > 글동네

사이트 내 전체검색

글동네

아이야이야이! Ai yai yai! / 하정아

페이지 정보

글씨크기

본문

물기 많은 공기를 헤치고 담담낭랑하게 울리는 음성. 느리고 넉넉한 어조, 아이야이야이!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 호텔 워터쇼에 갔다. 물에서 이루어지는 온갖 인간사를 2 시간 내내 대사 한 마디 없이 음악과 율동으로 풀어낸 잔치 마당. 물과 조화를 이룬 인체가 유연하고 매끄럽다. 인간은 물속에서 태어나고 물과 함께 놀다가 수장(水葬)된다는 것을 새삼 알겠다. 쇼의 주제가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막간 팬터마임중 하나가 매우 인상적이다.


물 위에 둥둥 뜬 무대 위에 광대 한 명이 앉아 졸고 있다. 바닥에 누워 한숨 자고 싶은가. 그는 베개를 찾는다. 누울 때 그의 허리는 굽혀지지 않는다. 나무토막 넘어지듯 뒤로 꼿꼿이 떨어지는데 뒤통수가 바닥을 치며 뻥! 소리가 난다. 여러 차례 시도해도 그의 머리는 번번이 베개에 닿지 않고 빗나간다.


그때마다 아이야이야이!” 젖은 음성이 배경처럼 울려나온다. 낭패를 당해 터지는 탄식인데 불만이나 원망의 감정이 조금도 묻어있지 않다. ! 푸식! 물이 터지고 물건이 떨어져 구르는 음향 속에 유일하게 섞여있는 인간의 목소리가 애잔하다. 투명한 어감이 내 마음속에 맑은 바람을 일으킨다. 그는 결국 베개에 머리를 뉘는 데 성공한다.


딸아이가 프리웨이에서 앞차와 부딪쳤다. 고운 석양을 사진기에 담다가 브레이크 잡는 시간을 놓쳤단다. 상대방 운전자는 다치지 않았지만 함께 있던 일곱 살 난 딸아이의 정서불안을 핑계 삼아 소송을 걸었다. 아끼던 자동차를 폐차장으로 보내는 딸을 바라보자니 마음이 착잡했다. 아이야이야이!


선셋비치로 바다서핑을 나간 딸아이가 가오리 침에 찔려 기절했다. 동네주민의 도움을 받아 독을 빼고 왔다며 한밤중에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저녁, 이층계단을 무릎으로 기어 올라가는 딸아이를 보았다. 왼쪽 발목이 거무죽죽하고 종아리까지 퉁퉁 부어있었다. 갖가지 부정적인 예감에 시달리며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아이는 며칠 간 항생제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아이야이야이!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하자마자 손가방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디에 두었는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자이언 국립공원 셔틀버스를 타고 2시간동안 오르내렸는데.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먹었는데. 식당에 전화하니 가방이 있었다. 유타 주에서 애리조나 주까지 3시간 동안 달려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갔다. 아이디, 카메라, 크레딧 카드는 있는데 돈은 일 센트도 남아있지 않았다. 여행에 수월할까 싶어 평소에는 지니지 않았던 묵직한 현금인데. 주인에게 머리 숙여 인사했다. 남겨진 것들이 훨씬 낫다, 위로하며. 아이야이야이!


이렇게 사는 거지. 이렇게 넘어가는 거지. 이렇게 잊는 거지. 조금 손해보고 잠깐 억울하면 그만이다.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 오관이 살아있어 탄식할 수 있음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피곤한 머리 하나 베개에 내려놓는 일도 저리 힘들고 우여곡절이 많을진대, 사는 일은 말해 무얼 할꼬. 중요한 것은 저 광대처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뜻한 바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 아니할지라도 그냥 주문 외듯 투명한 어조로 아이야이야이!, 툭툭 털어내는 것이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112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KASDA Korean American Seventh-day Adventists All Right Reserved admin@kasd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