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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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부석
1.
망망한 운해 저편 님께서 가신 자취
응답 없는 세월 앞에 푸른 머리 희어지고
돌아올 길 없는 기약 멀고 먼 듯 산하여
2.
가고파 애타도야 갈 길 없는 돌일래라
물줄긴 구비구비 흘러오고 또 오건만
물보다 진한 핏줄긴 엉겨 붙은 채로인가
3.
하마하마 돌아오리 상기도 살았는가
산도 강도 내 벗인 양 못박힌 이 한 자리
표표히 떠가는 구름 돌아오라 님이여
박 옥종 집사님의 시집 "영원을 걸으며" "제 6부 녹의"에 실린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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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시카고 기사! "끝없는 감사와 찬양의 삶" "시선 [영원을 걸으며] 펴낸 박옥종 여사]" "[청상의 망부석] 40년의 한과 고통 2백편의 신앙시로 승화시킨 역작"
25살의 아름다운 나이에 6.25 사변으로 남편이 행방불명, 40년간 [청상의 망부석]이 된 박옥종 여사(69세)가 최근 [영원을 걸으며]란 시선을 펴내고 기뻐하고 있다.
[시조사]에서 발간된 동 시선에는 [엔학고래], [소망의 별], [나의 기도]등 험한 인생의 여정 속에서도 구원의 밧줄을 놓지 않고 기쁨과 탄원, 슬픔과 고통을 줄줄이 꿰어 하나님께 바친 2백편의 주옥같은 글들이 3백여 페이지에 가득 차 있다.
시카고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 담임 정무흠 목사의 어머니인 박옥종 여사는 경남여고 출신으로 대구 청구대 국문과에서 수학했으며 1991년 레익 미쉬간칼리지에서도, 삼육대 신학과에서도 공부의 끈을 놓지 않고 배움의 집념을 불태우며 수많은 시들을 써왔다가 이번에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경북고교 출신의 남편을 맞아 모든이의 선망의 대상이 된 행복한 결혼생활이 전쟁으로 7년만에 끝이 나고 온실속의 꽃이 냉혹한 바깥 땅에 내동댕이 쳐진듯 밤마다 단말마의 고통에 시달리다가 [복잡다기 요급심장치료]라는 진단을 받게된 어느날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이 가슴을 비수로라도 열어봤으면"하고 몸부림쳤다는 박옥종 여사.
그러나 부처도, 육신의 부모도 살려줄 수 없었던 생명의 외경 앞에서 빈사의 상태에서 드린 기도와 탄원이 하나님께 상달되어 오늘의 행복한 삶을 얻게 되었다는 것.
"가랑잎 굴러가는 소리에도 사랑하는 남편의 발자국 소리인가 방문을 여시고 한밤중에라도 아버지가 오시면 즉시 문을 여러드려야 된다시며 옷입은채로 주무시던 어머니, 아침 식사 때면 제일 먼저 밥그릇 떠서 아랫목에 묻어두시던 어머님이, 요즘은 자식들과 손자, 손녀, 외손자들까지 다 믿음안에서 공부 잘하고 건강해서 무척이나 행복하시다"고 정무흠 목사는 말한다.
"이제는 남편 잃고 잠안오는 밤의 말할 수 없는 번뇌를 쏟아놓는 글을 쓰지 않고 나의 생명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께 끝없는 감사의 찬양의 글을 바치며 이 넘치는 은혜를 이웃에게 나누고자 살아가고 있다"고 박여사는 최근의 심경을 고백하고 있다.
"안된다. 죽어서는 안된다. 너는 두 어린 생명의 어머니가 아닌가. 네가 죽으면 두 아이는 고아가 될 것이다..."
그 고통스런 죽음의 순간에 어른거렸던 한살짜리와 세살짜리 아이들이 커서 어엿한 정신과 의사 출신의 목사가 되었고, 한국의 미 공군 병원 부원장 김영섭 장로의 부인도 되었다.
시집 출판 못지 않은 인생의 또다른 역작이 된 것이다.
또한 손자, 외손자까지도 로마린다 의대에 진학, 학교 부근에서 그 핏줄들을 돌보며 남북통일의 소원을 품고 [도르가]와 같이 어려운 이들을 구제하며 성경대로 실천하려 애쓰는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다.
"나 낙심되어 주저앉았을 때
내 귀에 안위의 말씀을 주셨으며
슬픔에 싸인 내게
주의 사랑으로 가득 채우셨기에
아아 주님,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내 곁을 떠나가도
주는 영영 나와 함께 하시리니...."
시집의 제목처럼 [영원을 걸으며] 함께 동행하실 이가 있는 행복한 그 길을 박옥종 여사는 이제, 기쁨에 겨워 편편의 자작시로 남기면서 살아가고 있다.
배미순 기자 (한국 일보 시카고 1993.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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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LA 기사 - "시집 [영원을 걸으며] 발간한 69세 박옥종 여사" "청소년 위한 작품 쓰고 싶어" "인생의 희비, 신앙심 섬세히 그린 30여년 틈틈이 쓴 2백여편 수록"
"꿈인양 녹의 떨쳐
소리 없는 환호 속에
태양은 부신 깃발
태고와 의연하다
무수한 깃발 너와 나
바람으로 얻어진 날
한풍 매선 채찍
남은 날 헤어가며
언젠가 꿈은 진정 이루리 믿던 마음
오늘사 성의 떨치고 햇님 맞아 웃으리
갈라디아서 5장 5절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이 글은 칠순을 바라보며 그동안 겪어온 인생의 희비와 깊은 신앙심을 결집시켜 책으로 펴낸 박옥종 여사의 시집 [영원을 걸으며]에 수록된 [녹의]라는 시조다.
1959년부터 1991년까지 틈틈이 눈앞에 떠오르는 시상을 노트에 적어놓았던 글중 2백여편을 골라 시집을 발간한 박여사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의 건강과 여유, 그리고 섬세한 표현력을 보여주고 있다.
1924년 경북 영천 태생인 박여사는 20세 되던 해에 결혼하고 남매를 얻었으나 6.25때 석탄공사에 근무하던 남편을 잃는 슬픔을 맛보아야 했다.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은 박여사의 글중에도 자주 나타나고 있으며, 때문에 [통일]을 염원하는 한국현대사의 비극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후 자녀들을 고아로 만들 수 없다는 일념으로 일제때 획득했던 교사자격증을 이용, 남천국민학교 등에서 잠시 교단에 서기도 했던 박여사는 [만성신장염]으로 인해 더욱 어렵고 힘든 생활을 살아야만 했다.
그러나 험한 인생의 격동 속에서도 남다른 향학열을 불태우기도 했던 박여사는 37세 때 대구 청구대학 국문과에서 공부하기도 했으며, 1979년 도미이후 1991년에는 레이크 미쉬간 칼리지에서 수학할 정도였다.
신문 및 잡지등에 자신의 작품을 싣기도 했는데 서두에 쓰여진 시조 [녹의]는 가람 이병기 선생의 추천으로 [여원]지에 실렸던 작품이다.
박옥종 여사가 쓴 글은 6.25의 생생한 기록이 담긴 2천5백매에 달하는 장편소설을 비롯해 큰 상자에 넘칠만큼 많은 양이 있었으나 미국으로 이주하는 준비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태워버렸다고 하면서 "나의 글이 불속에서 사라질 때마다 아깝고 안타까와 쳐다볼 수가 없었지요"라고 회고했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하고픈 일이 많다는 박여사는 새벽 4시에 일어나 기도와 함께 산책을 즐기고 대부분의 시간을 독서에 할애하고 있다.
김소월, 이광수의 작품을 좋아하고 도산 안창호선생을 가장 존경한다는 박여사는 "요즘은 내가 영어를 잘 했으면 참 좋을 텐데"라는 아쉬움과 함께 한인 청소년들을 위한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시집을 발간한 후 변화에 대해 박여사는 독자들에게서 호평의 전화가 걸려오고 때로는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며 독자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황성락 기자 - 한국 일보 LA 1993.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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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옥종 여사의 시집 출간을 기리며 - 신계훈 목사 (삼육대학교 교수, 총장, 한국 연합회장)
그 숱한 민족의 비극이 시작되던 그 해 6월 25일, 그 길고 지루했던 여름, 가녀린 망부석 하나가 외로운 모습을 다듬고 있었다. 속히 다녀 오리라던 출장길을 따라 흔연히 상경한 부군은 전쟁 길에 막혀 끝내 돌아오지 않았으며, 애달프게 기다리던 이십대 후반의 아직도 젊은 여인은 그대로 청상의 망부석이 되어 고달픈 삶의 뒤안길에서 외로운 풍화를 시작했다. 박옥종 여사이시다.
겨우 세 살과 한 돐을 맞는 아들 딸 아기 둘을 둘러업고 품에 안으며, 손목을 이끌고 면면이 이어온 고달픈 생존의 날들은 참으로 더디 흘렀다. 언제나 초롱초롱한 두 어린 자식의 눈망울을 바라보며 살아야 할 까닭을 찾은 여사는 생존을 위해 떳떳한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어설픈 기름 장사, 힘 겨운 보따리 장사, 명문의 고등교육을 받은 덕분에 그래도 가능했던 가정교사, 국민학교와 중학교 교사 등 열 서너가지도 더 되는 일감을 찾아 몸부림치듯 살아온 십 수년이 더디기는 했지만 천천히 흘러갔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고달픈 삶의 여로를 외롭고 힘겹게 달리던 여사는 마침내 기진하여 쓰러졌으며, 이내 짙은 흑암이 시야를 가려버렸다. 바로 그 때 비쳐 온 한 줄기 빛, 그리고 잇달아 내려 온 한 가닥의 밧줄, 여사는 혼신의 힘을 다 해 그것을 붙잡았다. 끝내 돌아오지 않는 부군을 기다리다 두 자식과 함께 인생의 여로에 지쳐 쓰러진 가련한 여인에게 뻗쳐 온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었다. 행여 놓칠새라 그 손길을 붙잡은 여사는 더 이상 풍화로 낡아져가는 한낱 외로운 망부석이 아니었다. 이제 여사는 마침내 돌아오실 몸과 맘의 영원한 하늘의 님 예수 그리스도를 간절히 기다리는 만년 소녀가 되신 채 어느덧 고희를 눈 앞에 두고 계시다.
지나간 40여년 홀로 걸으신 여사의 인생 여로가 이제 익을대로 익은 포도송이처럼 맺혀 알알이 그 모습을 들어내기에 이르렀다. 그것이 이번에 출간된 여사의 시집, "영원을 걸으며"의 전모이다. 아무도 함께 하는 이 없이 홀로 애쓰며 맺히신 고독한 열매를 모두가 함께 맛보게 되었으니 참으로 감격스럽다. 여사의 시 망부석과 사군가에 수놓인 망부의 애상, 유한과 고신적적에 스며진 청상의 고독, 애모곡에 넘치는 절절한 모정, 사자모에 드러난 애틋한 효심....
서정이 넘치고 잔 정이 많으신 여사는 천생의 가냘픈 시인이시다. 무엇보다도 삶의 온갖 탄원을 기도로 배태하여 시의 옷을 입혀 출산시킨 진솔한 기도의 시집을 가지게 되어 참으로 대행스럽다.
그러나 이번 시집이 여사의 모든 작품이 아니다. 또 다른 두 작품이 벌써 세상에 빛을 보였다. 여사의 인생 역작인 아들과 따님이다. 서울 가신 아빠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철부지 세살짜리 아들 무흠은 그후 의대를 나와 어엿한 의사가 되어 국내외에서 자선을 계속하다가, 어머니의 바램을 자신의 소원과 아울러 마침내 목양자의 길에 들어서 지금은 미국에서 안수받은 중견 목사로 애오라지 목자의 길을 걷고 있다. 참으로 갸륵한 일이요 장한 아들이다. 그리고 그 때 한 돐이었던 포대기 속의 딸 귀주는 대학을 나온 후 선교와 봉사로 이름난 의사의 아내로 미국에 살고 있다. 언제나 어머니의 마음을 뿌듯하게 하는 그 어머니의 그 따님처럼 살고 있다. 슬하에 두신 될성부른 손자 다섯과 손녀 하나는 여사가 신명을 다 해 쓰신 인생 시집을 영원히 빛내주는 편편의 자작시들인 것이다.
1979년 도미하신 이래 자녀들과 함께 사시며 기도를 호흡으로, 말씀을 음식으로 삼고 사시는 여사는, 이제 잠시 후 그 모습을 드러내실 영원한 하늘의 님을 오늘도 애타게 기다리시는 불퇴전의 영원한 망부석으로 우뚝 서 계시다.
오상고절 박옥종 집사님의 여생에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가득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리고 싶어져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뫃는다. 나의 어머님을 위해서처럼...
1992년 12월 12일
서울의 교외 청학리 산 기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