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이 빛도 없이" 9. 시련과 하나님의 치유 - 유영길 목사 > 글동네

사이트 내 전체검색

글동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9. 시련과 하나님의 치유 - 유영길 목사

페이지 정보

글씨크기

본문

시련과 하나님의 치유 - 유영길 목사


이민 생활에서 건강은 제일 중요한 재산이다. 어떤 현인은 "재산을 잃는 것은 인생의 많은 것을 잃는 것이다. 그러나 건강을 잃어버리면 인생의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라고 했다.


젊음과 건강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재산이다. 실직한 후, 내가 건강을 잃고 병실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 날이 10일이 지나고 있었다. 이민 오기 전에는 병원 근처에도 가 보지 않았는데, 이렇게 병원 신세를 지게 되는 일은 직장을 잃은 뒤부터 시작되었다. 병명은 십이지장궤양이었다. 많은 출혈로 인하여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의 피를 입원할 때마다 수혈하게 되었다. 이번 입원이 벌써 8번째가 되다보니 몸은 쇠약할대로 쇠약해지고, 몸무게는 줄어들어 겨우 105파운드(47kg) 밖에 안 되었다. 온몸은 보기 흉할 정도로 수척하였다. 나는 의사에게 여러 번 정확한 상태를 물었으나 대답을 기피하는 것이었다. 나의 건강에 대한 각종 조직 검사가 끝나는 날, 주치의 로버슨이 내 병실에 들어왔다. 내일 퇴원하라는 것이다.


"4주 후에 수술을 할테니 준비하고 집에서 기다리기 바랍니다."

나는 그때 너무 놀랐다. 다시 병의 상태와 수술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정중히 물었다.

"너무 많이 퍼져서 수술하지 아니하면..."

간호사를 시켜서 X레이 사진을 가지고 와 그림까지 그려 주면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여 주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마쳐진다 하더라도 생명을 보장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캐나다의 의료보험 제도는 국가에서 직접 관장한다. 일반 서민들은 의사 면담 및 치료, 입원등의 의료 서비스를 거의 무료로 받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수술도 차례를 기다려 4주 후로 미뤄진 것이다.


나는 청천벽력의 사형 선고를 받은 기분이었다. 병원을 나와 집에 돌아와서도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어떤 때는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무작정 달리기도 하고 야외에 나가 깊은 수심에 잠겨 식사시간도 잊을 때가 있었다. 내 나이 36세, 한창 일할 때이다. 마흔도 못 되어 위 수술을 받고 무덤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인생의 허무함이 뼈에 사무쳤다. 솔직히 기도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성경도 보기 싫고, 심지어는 교회 가는 일조차도 죽어가는 나에게는 무의미한 것같이 느껴졌다. 이런 마음의 갈등과 방황 속에서 일주일이 지났다.


그러나 나는 현실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이제 현실을 받아들이자. 죽게 되면 죽으리라. 모든 것을 포기하자.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 생명까지도 포기하자. 만약에 그렇다면 그 다음에는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그것은 죽음일 것이다. 암으로 인한 죽음이 이 세상에서 나뿐이랴. 수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왔다가 나같이 떠나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전도자는 인생이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고백하지 않았는가? 나는 정말 외로운 사람이다. 나의 속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나 가족이 누가 있단 말인가? 나는 헛살았구나! 정말 나는 불쌍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가 11월 말이었는데 눈이 많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무심코 차를 몰고 밖으로 나갔다. 도심을 벗어나 조용한 언덕길을 올라가다가 언덕 옆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숲길을 걸었다. 그때 내 마음이 갑자기 뜨거워지며 가슴이 답답해졌다. 또 가느다란 음성이 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네가 왜 친구가 없느냐? 너의 생명이요, 너를 구원할 친구가 있지 않느냐?"


나는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도 모르게 그냥 눈 위에 무릎을 꿇었다. '오, 주님! 나는 방황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동안 주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주님! 제가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주님께 바칠 것이라고는 병든 이몸, 수술을 받고 죽어야할 이 몸 밖에는 아무것도 주님께 드릴 것이 없으니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어디든지 가겠습니다. 북을 이 몸이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거의 한 시간 기도하는 동안 내내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나는 정말 죄인입니다."

나의 깊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참회요, 신앙 간증이었다. 나는 잃었던 친구를 찾은 것이요, 잊었던 구세주를 만난 것이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나는 같은 장소에 가서 무릎을 꿇었다. 시간이 오래 경과되다 보니 다리가 저려서 일어설 때 눈 위에 쓰러져 눈으로 범벅이 되고 말았다.


암환자들의 소원은 통증 없이  잠을 싫컷 자는 것이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모르핀 주사 또는 안정제를 환자에게 투여하기도 한다. 나도 심한 통증으로 하루 평균 1-2 시간 자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에게 그런 약물이 투여된 적은 없었지만 결국 현대 과학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병이 바로 암이란 무서운 병이다.


나의 몸, 욕망, 세상적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께 완전히 의뢰하는 상태가 되다보니 마음의 안정과 기쁨을 되찾게 되었다. 집에서는 찬미도 부르고, 성경도 열심히 읽었다. 그때 나는 성경 말씀이 송이꿀보다 더 단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아침과 저녁에는 채소즙과 현미와 순 야채로 식사를 하였고 가벼운 운동도 거르지 않았다. 개인기도 시간은 점점 길어졌고, 기도 내용도 그 전과는 전혀 달랐다. 이기적이고 가시적인 바리새인의 기도가 아니라, 내 존재가 아주 없어진 기도였다. '나'라는 존재는 십자가 밑에서 완전히 녹아버린 상태였다. 하나밖에 없는 생명의 촛불이 꺼져가는 마당에 내가 무엇을 바라겠는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서 죽어갔던 한 강도는 예수님이 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라는 것을 알았다. 십자가 상에서 금방 내려가실 수 있는 '능력의 창조주'임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자기 죄를 사해 달라는 부탁이나 자기를 구원해 달라는 부탁을 감히 아뢰지 못하였다. 죽어가는 마당에 구하지 못할 것이 무엇인가? 그러나 '그저 불쌍히 여기시어, 이 꺼져 가는 인생을 기억해 주십시오!' 라는 한마디 밖에 없었다. 그 강도는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서 자신이 녹아 없어지는 체험을 한 것이다. 나느 그의 기도의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수술할 날을 3일 앞둔 날이었다. 우연히 화장실에서 몸무게를 달아보았더니 118파운드가 되었다. 나는 깜짝 놀라 몇 번이나 달아보아도 같은 무게가 나왔다. 병원에서 퇴원할 때는 105파운드(47kg)였는데 13파운드나 늘어난 것이다. 가만히 생각하니 그 즈음엔 잠도 3-4시간을 편안히 잘 수 있었다. 또한 식욕도 약간 좋아진 것 같고, 위의 통증도 그 전처럼 심하지 않았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도 잊고 그저 놀라기만 했다. 조용히 기도하는 가운데 '내가 의사의 계획에 따라 꼭 수술을 받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곧장 담당 의사를 만나 몸 상태를 설명하였다. 의사는 나의 몸무게를 달아보더니, 전에 기록한 서류를 살폈다. 의사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간호사에게 무엇인가 지시하였다. 얼마 후 몇몇 의사들이 몰려와 등에다 마취제 주사를 놓고, 내시경으로 위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얼마가 지난 후, 마취에서 깨어난 나에게 주치의사가 다가오더니 빙그레 웃었다.

"현재로는 수술할 필요가 없습니다. 4주 후에 다시 조사할 테니 그 때 오십시오!"

그전 같으면 깊은 우려와 함께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을 의사가 이제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여 내 손을 꼭 잡았다. 나는 그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라고 외쳤다.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어 치료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 후 26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수술하지 않고 무사히 지내고 있다. 사단은 참 안식일을 발견하고 진리대로 살려는 나에게 직장을 잃게 하고, 생명까지 빼앗으려고 계획하였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내 영혼을 새롭게 탈바꿈하시고자 나에게 시련을 허락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 (욥 5:18)


캐나다나 미국의 도로를 달리다 보면 자주 공동묘지를 지나게 된다. 나는 가끔 차를 몰고 묘지 안으로 들어가서 누구의 묘지인지 모르는 무덤에서 조용히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주님! 이 사람이 이 무덤에 있어야 할 사람인데 주님의 자비로 이렇게 살아서 주의 말씀을 증거하는 자그마한 종이 되었습니다. 살아 있을 때까지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주의 말씀이라면, 언제든지 어느 곳이든지 이 몸 가오리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KASDA Korean American Seventh-day Adventists All Right Reserved admin@kasd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