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 신앙의 성격과 우리의 자세 > 신학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신학

오류 신앙의 성격과 우리의 자세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영근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9.03.19 13:38 조회수 4,663
글씨크기

본문

오류는 진리인가? 라는 질문도 있을 수 있는가? 말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물론 아니다. 오류는 거짓이다.
그러나 정작 오류를 가진 자들은 자신들이 알든지 모르든지 간에 이것은 진리이다 라고 항변하려고 한다.
1)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는"(요일 2:21)다.
2) 오류의 길에서는 돌이키는 일이 어렵거나 불가능하다.(렘 8:5-6)

그러면 오류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오류에게 진리를 들어내는 것이다. 재림교회가 "성경대로"라 함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성경 대로라 함은  우리가 악(오류)에 빠지지 안을뿐 아니라 오류한 것에 진리를 드러내려 함의 이중 목적이 있다.
2) 진리는 오류를, 오류의 집단 자체를 상처내거나 공격하려는 방편이라고 생각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인 생활이나 전도상의 그러한 방평이 되는 것은 유익하지 못하며 그들에게도 불쾌감을 준다.
그것이 무슨 이득이 있으며 유익이 되는 것인가! 자비의 마음을 갖고 시간이 더딜지라도 옳은 것을 나타내 보여주는 것이다.
3) 진리를 소유한 자들은 오류를 버리거나 굳어진 아성을 파괴하거나 떠나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꾸준한 마음으로 증거해야 한다.

하이웨이를 달리다가 조금 지나쳐서 갈 길로 가지 못한 경우가 있는가?
잘못(오류)이라고 지적하지 아니해도 대개는 아차 잘못 왔구나 하고 순간 그것을 깨닫는다. 빗나간 오류의 사람들을 곤란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정작 요구되는 것은 그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진리의 길을 비춰주어야 한다.
다시 말하거니와 오류의 길을 통채 핀잔 섞인 주의를 주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렇게 하려고 하면 할수록 진리의 길에 들어서기는 커녕 도리어 진리의 제시하는 길을 공격하려고 한다. 인간의 성격은 그러한 것이며 마귀의 쓰는 수단은 대개 근접해  있다.

한 역사를 참고해 보자! 중세 교회사의 발전은 무너진 진리를 보수하고 성경적 진리를 찾아내려는 노력을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것에 성공하지 못하여 빛을 찾지 못했거나 오류를 소유했거나 오류로 남았다. 이것은 아쉬운 역사적인 사실이다.
따라서 그 성을 파괴하거나 공격하려 하지 말고 성에 속한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하면 성 자체도 소유할 수 있을 것이다.

오류한 자는 자신들이 오류라고 해서 오류의 그릇을 깰 수는 없는 노릇일 것이다.
그래서 부득불 무류설은 무류설로 존재하게 되고 일요일 신성설은 일요일 신성설로, 마리아 중보설은 또 중보설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마귀는 한 단체를 갖기 마련이다. 어쩌면 그것은 그들이 잘 아는 주장이며 고집이며 방어이다.
성경을 주장하는 자들은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나타내 보여야 한다. 다음은 오류를 고치기가 얼마나 힘드는가에 대한 한 실예가 된다.

한 실례를 참고해 보자! 하바드대학 개교의 진실은 1636년이다. 그러나 행사 때 마다 필요하면 2년이 늦은 1638년을 고정으로 사용한다. 숨겨진 오류이다. 유명하지 않았았을 때 잘못 사용한 것을 유명대학이 되어서 고치기는 미쳐 허용되지 않는 오류일 것이다.
하바드대학의 실상의 설립자는 매사추세츠 베이 콜로니(Massachusetts Bay Colony)이다.  하바드(john Harvard) 목사가 아니다.  하바드 목사는 가장 처음으로 기부금을 많이 냈던 인기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학교가 유명해진 다음 그 사실을 수정하기는 힘든 오류일 것이다.

이때로부터 250년 쯤 지나서 하바드의 조각상을 교정에 세울 때 조각가 다니엘 프랜치(Daniel French)는 17세기 영국의 목사였던 하바드의 모습과 몸매를 알 수 없어 궁여지책으로 재학생 몸집 좋고 키가 큼직한 학생 하나를 골라 그의 상으로 모델한 것이다.  한 학생 상이 하바드 상이 된 것이며 콜로니는 감추어졌다. 더군다나 하바드 상(학생 상) 앞에 "하바드대학의 설립자" 라는  문구까지 붙였다.
이것은 대충일지는 몰라도, 눈감는 일일지는 몰라도 진실 아닌 오류일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버젓한 오류인 것을 잘 알지만 수백년이 지나 학교가 유명해진 지금 그 오류를 폭로하며 그 상을 파괴할 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일련의 일들은 학교의 수치가 되고 그 일을 단행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지상 모든 오류의 장본 루스벨은 1,000년기에도 돌이켜 볼까 하는 생각을 갖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 이미 늦인 경우이다. 하나님과 그 진리에서 빗나간 오류를 돌이키기가 이만만큼 어렵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오류가 있다. 비진리가 있다. 오류의 세계이다.
회개에 대한 복음진리는 공격용이 아니고 옳은 진리를 나타내 보이는 것이며 증거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그 안에 있는 당신의 백성을 하나님은 추수하신다. 성령께서 일하시며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이다. 우리는 지금 주님의 즐겨 쓰시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KASDA Korean American Seventh-day Adventists All Right Reserved admin@kasd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