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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의 좋은 신앙 찾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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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영근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10.01.02 23:02 조회수 4,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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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에 의하면 신앙이 좋은 신앙이 있고 나쁜 신앙이 따로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좋은 신앙 중에서도 그러하다. 오늘의 이야기는 엄밀한 의미에서 그러하다는 내용이다.

 

말하자면 더 좋은 신앙이라고 해야 올바르다. 상대적으로 말하면 그렇지 아니한 것은 나쁜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좋은 신앙이란  심층으로 들어가 열열하고도 깊이 탐구하는 정신에서 비롯하여 얻어지는 것이

 

다. 성경이 갖는 보화,  말씀이 주는 참 진수의 신앙이란 이런 정신 없이는 켤코 얻어질 수 없다.

 

"표면을 슬쩍 핥는 것은 별로 소용이 없다. 그 것을 깨닫기 위하여 사려깊은 조사와 열열하고 끈기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FE 390)

 

우리나라 석탄광산에 가서 1,200 미터 지하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데 요사이는 바로 그곳에서 1700 미터 보

 

다 훨씬 지하로 더 깊이 들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지하의 심층으로 들어가고 들어갈수록 석탄광이

 

더 풍성한 맥을 이루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어 채취의 욕망을 불태우게 되면 크나큰 100 미터 암반에라도 

 

다시 다이나마이트를 폭파하면서까지 보다 깊은 심층으로 주저함이 없이 파고 들어가는 것이라는 말이다.

 

흔히 공부하는 클라스 안에서 몇 명의 공부 벌래 학도가 공부에만 심취하는 모습을 발견하였을 것이다. 여

 

기에서 말하는 일반의 성경학도란 이런 지구력이 있는 신앙 성경학도가 되는 것을 말한다.

 

"지하에 묻힌 광맥의 발견 여부는 그것을 찾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의 여부에 달려있다. 금광이 찾고자 하는

 

열망이 없다면 그것은 결코 발견될 수 없다. 성경 속에 담겨있는 보화를 찾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연구해

 

야만 한다."

 

 

 

 

 어떤 이들은 신학대학이나 대학원에 가야만 좋은 신앙(학)을 터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말은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것 만으로는 역부족하다. 그런 공부가 지속적으로 심취하는 탐구에 열을 올릴

 

수 없다면 그리고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기를 등한하게 한다면 그것은 그것이 자기를 변화시키고 승화시키

 

는 일에도 역부족하게 만든다.

 

아무리 그러한 공부를 이론적으로 많이 공부했을지라도 그런 연구를 중단하거나 더 이상 심취하지 않으면

 

얼마 가지 않아서 영적인 진액은 소진되어 자신감을 잃거나 보통 사람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수준으로 전

 

락하고 만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말씀과 진리의 영은  탐구하는 마음 그릇에만 오래 담겨진다.

 

이것이 왜 그러느냐 하면 이것은 내면의 깊은데 있는 신앙학이기는 하나 이것이 성령으로 말미암는 영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마치 꼭 사용하지 아니하면 휘발되고 마는 성질의 것이다.

 

비록 신학교에서 탐구는 하지 아니하였다고 할지라도 그 보다 훨씬 능가하는 신앙을 할 수 있는 것이 사실

 

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좋은 신앙(학)이란 바로 그런 것을 망라하고 있는 말이다. 성경이 말하는 성경의 더

 

좋은 보화 찾기에는 반드시 열열하게 노력하는 탐구의 정신에서만 비롯하며 또한 이것이 전적으로 우리

 

에게 필요하다.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와 선천적 및 후천적으로 받은 최고의 지적,  도덕적 능력을

 

발휘할 준비를 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의 성공은 신천적 혹은 후천적인 수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데 바친 헌신과 희생의 양에 비례한다."(복음 사역자 79)

 

 

 

 

 우리는 활력의 요소를 많이 제공받을수록 신령해진다. 왜냐하면 그것이 영이요 성령의 지시하는 바가 되

 

기 때문에 그러하다. 사람들은 때때로 토의장에 나가 변론하면 많은 것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

 

나 그것은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추구하는냐에 많이 달려있다.

 

반대로 자신을 앞세우고 인위적인 일에 심취한다면 아무런 성장이 없고 유익도 없다. 오히려 해악이 된다.

 

말씀의 연구는 항상 원론적인 것이 되게 해야 한다. 28교리를 탐독하는 일에도, 설교를 듣는 일에도, 기도

 

력이나 매주 과정책을 공부하는 일에도, 기도하는 일에도, 그리고 훌륭한 신학 서적을 가지고 많이 연구

 

하는 일에도, 항상 원론적인 탐구의 사고방식으로 깊이 심취해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이것으로 행동화할

 

간절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탐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필요하다. 누구가  하라고 해서가 아니라 너무나 자연

 

스럽게 말씀에 불붙여진 심령의 불심지 때문이어야 한다.

 

이런 사람은 우선 좋은 신앙의 사람이 된다. 이렇게 행할 때 깊이 있는 그 신앙은 그 사람을 새로 만들어주

 

며 복음의 세련케 하는 능력이 풍겨나게 된다. 이러한 탐구의 정신을 가지게 되면 나이가 들고 힘이 쇠약

 

해질지라도 말씀의 심취의 정신에서 은혜로 만족해하거나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소망하는 바 생각하는 이

 

상의 일을 해낼 수 있게 된다.

 

요사이 집사에 관하여 글을 쓰고 있다. 이론 이외에 영적인 말씀으로 외투를 입지 않으면 어떻게 차겹고

 

발이 시린 영혼을 훈훈하게 해줄  수 있을 것인가 싶어지는 것이다. 우리네 과오와 실수는 확실히 영감의

 

말씀을 가지기는 하였으나 거죽만 핥거나 그냥 버려두는데 있다. 연구하는 척 하면서 가만이 놔두는데 있

 

다. 복음의 선포란 깊이 탐구해 들어가면서 만지고 보고 듣는 바를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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