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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 계실 때의 예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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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영근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10.01.06 05:35 조회수 5,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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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요한복음 14장 1-3절을 읽고 주님의 재림의 허락이라고 생각하거나 말하고 만다.

 

대단히 옳은 전체의 대의요 포착이지만 그렇게만 생각하고 말하면 아쉽게도 미쳐 다 묘사하

 

지 못한 비어있는 공간이 너무나 크다.

 

예수님의 이 말씀 속에는 재림과 함께 분명히 2대 축을 이루는 민생고의 해결을 생각하셨었다.

 

다시 말하면 하나는 당신 나라의 도래이고 재회의 약속이며,

 

또 하나는 유목민으로 구차하고 진절머리 나게 옮겨다니며 사는 민생문제의 해결에 대한 소망

 

을 가슴깊이 심어주는 내용 말씀이었다.

 

예수님은 서민으로 살면서 서민 속에 계셨으며 서민의 정신 신앙 운동가였다.

 

그렇다고하여 로마에서 벗어날 궁리를 하면서 혁명적인 사상을 심거나 일깨우지는 않았다.

 

예수님은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 영원한 복지국가를 염두에 두고서 제자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과 큰 소망을 심어줌으로 삶의 새 차원의 바퀴를 돌리려 했다.

 

이것은 당시의 백성들에게 적잖케 참으로 큰 힘이 되어주는 것이었다.

 

집도 절도 없는 그이가 겟세마네에서나 밤을 지세우면서 지내시는 그 품을 가진 이 이기에 하

 

늘에서 오신 그의 호소력은 활력을 불러이르킬 수 있었다.

 

어쩌면 도마가 말하기를 그런데 주여,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라고 묻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어떤 의구심 보다는 먼저 가슴 설랜 호기심과 절실함이 앞선 성급한 표현이었다.

 

 

 

당시의 고관들의 의식주 말고는 유대인 생활상은 대개가 비참하였다.

 

관하에 들어앉은 자들 외에는 대개가 서민인 떠돌이 유목빈들이었다.

 

그런대도 이런 서민들의 대개가  예수님과 교분을 가지고 있었으며 예수님을 좋아했다.

 

당시의 이 유목민들은 어렵게 살면서 이곳 저곳으로 떠돌아다니면서 정처없는 유목민 생활

 

을 감내해야 했다.

 

양들도 귀가 큰 양들이 있었는데 이 양들은 물의 갈증을 잘 참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이런 양들을 키우는 목자들은 이 양들을 이곳 저곳으로 몰고 다니지 못하고 비교적 한

 

곳에 정착하여 길렀는데 목자들은 이런 목자가 되는 것을 부러워 했다.

 

이들 목자들은 생활이 핍절하고 곤곤하여 영양분을 잘 섭취하지 못하였다.

 

바로 이때 자비로우신 예수님은 당신의 날의 희망찬 도래와 함께 그들의 가난과 설음을 함께

 

생각하시면서 마치 해결사의 일을 하신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오실 때 이 불쌍한 백성들을 대려다가 하늘"집"(헬라어는 house가 아닌 home인

 

 "오이키아")으로 인도할 터인데 이"거할 곳"("모나이" 혹은 "모네")은 이곳 저곳으로 옮겨다

 

니지 않는 영구히 "머물러있는 장소", "거처"를 마련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아, 이 얼마나 복된 허락의 말씀이 되었겠는가!

 

아, 오늘날 이 얼마나  복된 허락의 말씀이 되는 것일까!

 

 

 

영어성경에는" 맨션"(mansion)으로 번역된 말은 영구히 머물러 사는 의미의 헬라어 "모네"와

 

같은 뜻을 나타내는 라틴어 "만시오"(mansio)에서 왔는데 이 원뜻에는 집이 크거나 치부한 뜻

 

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 주님이 지적한 중요한 사상은 주님은 진절머리 나는 너희의 옮겨 사는 생활고를

 

끝내주고 장차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한 곳에 영구히 머물러 유여하고 평화스럽게 살게 해주겠

 

다는 단순하고도 소박한 약속이었다.

 

이것은 치부하는 말과 같은 "맨션"의 이야기는 당시에 사양하신 셈이다.

 

이런 선언은 당시 그들에게 얼마나 큰 희망을 불러 이르켜주는 약속이었겠는가! 싶다.

 

사실 알고보면 "거할 곳" "모네"는 알고보면 너무나 호화찬한한 곳일 것이 분명하다.

 

오직 해서 베드로는 당시의 상황을 다 잊고  "이곳에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했겠는가 싶다.

 

주님이 계신 곳은 찬란한 곳이다! 우리가 "거할 곳"은 찬란한 곳이다!

 

주님의 다함이 없는 은혜로 죽음도, 슬픔의 눈물도, 모진 세파와 고난도, 삶에 대한 걱정거리도

 

이미 다 사리진 곳일 것이다. 번져났던 죄악이라는 것도 다 뽑혀버린 곳일 것이다.

 

우린 정말 사랑하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면 이 세상의 어떤 것들 때문에 불행해 해야

 

할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

 

우린 하늘에 주님과 함께 영원히 머물러 살 수 있는 영화로운 맨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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