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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서의 '작은 뿔'이라는 안티어커스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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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다니엘서 7장의 '작은 뿔'이란 법왕권이지 헬라의 안티어커스가 아니라고 말

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안티어커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관계가 있는 사람인지 아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입니다. 그 사람의 근거도 모르고 그가 '작은 뿔'이 아니다 라고 하면 실상 이

해가 잘 되는 일이 아닙니다.

안티어커스를 '작은 뿔'이라고 보는 데는 한 가지는 맞습니다. 이는 헬라의 왕으로 유대를

헬라화 융화정책을 쓰다보니 유대에게는 못마땅한 사람이 되었다는 관계는 있는 점이지요.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서기전 323년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이 죽자 4사람의 신하는 전국을 4사람의 통치구역으로

나누어 통치했지만 결국 톨레미(Ptolemy)와 셀류커스(Seleucus)가 결국 전국을 양분하여 다

스리게 되었는데 톨레미는 애급을, 셀류커스는 시리아의 근동 서부 일대를 장악하게 되었

습니다. 따라서 당시의 국제정세는 발레스틴이 이 두 정국의 틈바구니 소용돌이에서 난처

하게 되어졌습니다.

기원전 3세기에는 애급이, 3세기 말에는 셀류커스 왕조가 유대지역을 다스리게 되엇습니

다.셀류커스 왕조의 셀류커스 3세가 암살 당하자 안티어커스 3세 에피파네스(Antiochus

the Great 3세, Epiphanes 175-163)가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에피파네스 칭호를 덧붙

인 것은 제우스 신의 현현으로 자처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안티어커스는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피정복 국가들을 깊이 관여할 마음이 없었으나

다만 희랍화 문화정책을 시도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유대 국가가 반 헬라주의와

희랍화의 물결이 일면서 희랍의 간섭을 불러들이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정점의 이야

기는 유다의 제사장들의 부패와 대제사장직의 자리 다툼이 안티어커스를 예루살렘으로 불

러들이게 되는 경우가 되어졌습니다. 결국 이들의 자리 다툼으로 헬라에 대한 반감과 융화

정책이 노골화되자 167년 안티어커스는 하는 수 없이 예루살렘으로 군대를 파견하게 되엇

습니다.

이때 많은 유다 사람들이 비참하게 살륙 당했으며 예루살렘 성읍은 약탈 당하고 성벽 요새

지는 무너지고 대신 시리아의 요새가 예루살렘에 건축되기도 했습니다. 다음으로 안티어

커스는 종교적인 제도에 각종 절기 및 유다 사람들의 희생 제사를 모두 금했습니다. 율법

사본을 모두 회수하여 없애버리고 율법서를 간직한 자는 극형으로 다스렸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에 이교도의 제단을 설치하고 성전 안에 제우스의 제단을 쌓고 제우스의 신

상을 세워놓고 그에게 제사를 드리는 일까지 일어났습니다. 안티어커스 종교탄압이 매우

혹독한 것이었지만 유대 사람들의 반발 역시 대단히 강했습니다.

 

 

 

소위 안티어커스의 유대와의 관계는 유대의 희랍화 정책이었습니다. 이것이 안티어커스

의 유다와의 관계입니다. 이것은 다니엘 7장의 '작은 뿔'을 설명하기 위하여는 대단히 맞지

않는 이야기이며 말세에까지 관계도 되지 않는 이야기인데 로마 카토릭교가 안티어커스

를 내세우는 정도에 그치는 이론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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