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5일(일) - 은혜의 계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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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시 103:8~9)
포도원의 품꾼을 쓰는 한 농부의 이야기(마 20:1~16)는 하나님의 은혜와 더불어
생각나는 비유입니다. 품꾼 중에는 해 뜰 무렵에 온 사람도 있고,
오전 휴식 시간에 온 사람도 있고, 점심 나절에 온 사람도 있고, 오후 쉬는 시간에 온
사람도 있고, 끝나기 한 시간 전에 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일당을
지급할 때까지는 다들 괜찮은 듯했습니다. 그러나 뙤약볕 아래 열두시간 꼬박 일한
충성파는 온 지 한 시간도 채 안된 사람들의 일당이 자기들과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주인은 모두에게 같은 임금을 지급한 것입니다.
이러한 주인의 처사는 노동자 동기 부여나 공정 보수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비유는 경제적으로 보면 전혀 말이 안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분의 취지였습니다.
주님이 이 비유로 우리에게 가르치시고자 한 것은 바로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은혜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은혜란 하루 품삯처럼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일등이냐 꼴찌냐를 따지지 않습니다. 은혜는 산수가 아닙니다.
은혜란 하나님의 선물로 받는 것이지 노력의 대가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한 가지 의미심장한 것은 이 비유를 읽는 많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을 해질 무렵
끼어든 품꾼이 아니라 온 종일 고생한 자들과 동일시 한다는 점입니다.
어디까지나 자신을 책임감 있는 일꾼으로 여기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니 우리도 주인의 엉뚱한 처사에 당황한 당시의 일꾼들과 똑같이
불평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공로를 자랑하는 일은 합당하지 않다.
...상급은 우리의 행위로 인하여 받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분의 은혜로
말미암아 받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실물교훈, 400).
하나님은 품삯이 아니라 선물을 주신다는 것이 비유의 핵심입니다.
우리 중 자기 공로대로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완전한 삶 근처에 약간이라도 미치는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공평한 기준대로 받기로 한다면 우리는 다 가망이 없습니다.
다시 한번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합니다. “우리 죄를, 지은 그대로 갚지 않으시고,
우리 잘못을, 저지른 그대로 갚지 않으시는 하나님”(시 103:10)을 생각합니다.
이 비 은혜의 세상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경이롭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시편 기자의 말처럼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사랑이 그지없으신” 분임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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