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4일(안) - 다 하나님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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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출 34:6)
‘하나님의 은혜’라는 찬양곡은 가사와 곡조가 너무 잘 어울리는 훌륭한 찬양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 노래를 사랑하는 까닭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라는 노랫말이 이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2세기 말 시온주의자들은 구약의 하나님은 분노에 가득 찬 존재이며, 신약의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사랑하고 포용하는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은 구름 가운데 강림하셔서 모세에게 여호와는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기독교 신앙의 독특성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은혜입니다. 은혜란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일방적 호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값없이 조건 없이 우리를 찾아온다는 개념입니다.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단어가 있겠지만 생각할수록 마음이 끌리는 이 시대 최고의 단어는 은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언제나 모든 좋은 것은 우리의 노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일깨워 줍니다.
우리 인간의 삶이란 비은혜와의 싸움입니다. 우리는 은혜 없는 현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은혜란 성취가 아닌 선물로 외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과 적자생존의 세상, 2등은 없다는 이 세상에서 은혜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언제나 현실은 냉정합니다. 세상은 은혜를 베풀 줄 모릅니다. 차별과 배척, 수치심과 죄책감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든 인간은 모두 그것이 표출이 안 될 뿐 늘 하나님의 사랑을 갈망하며 살아갑니다. 인정해 주고, 품어 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그런 하나님, 그런 사람, 그런 장소를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사회건 가정이건 비은혜로 충만한 세상입니다. 세상은 은혜에 굶주려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으로 볼 때, 교회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은혜(카리스)라는 단어의 어원에 나타나는 기쁨이나 즐거움이 아닙니다. 이러한 정서보다는 엄숙함과 조심스러움입니다. 언제나 교회는 은혜보다는 도덕이 먼저입니다. 사실 세상이 은혜를 찾을 곳이 교회 말고 또 어디 있을까요? 사람들이 교회를 찾는다면 그것은 다른 곳에서 은혜를 찾을 수 없기에 찾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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