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6일(금) - ‘믿음 안에서의 교제’로서의 교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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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6일(금) - ‘믿음 안에서의 교제’로서의 교회-2
“각각 자기 일을 돌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빌 2:4)
믿음의 교제의 두 번째 요소는 돌봄(caring)입니다. 사도 바울은 돌봄에 대하여 이렇게 권고합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빌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히 10:24). 돌봄은 동료 인간을 향해 눈을 돌리는 것입니다. 돌봄과 반대되는 개념은 무관심과 냉담입니다. 영어의 돌봄이라는 말은 원래 고트어인 ‘카라’에서 온 것으로 ‘애도하다’, ‘슬픔을 표현하다’, ‘함께 울부짖다’라는 의미의 비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돌보는 것을 약자를 향한 강자의 태도로, 힘없는 사람을 향한 힘 있는 자의 배려로, 가지지 못한 사람에 대한 가진 사람의 동정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함께 우는 것에서 이런 교만한 모습은 발견할 수 없습니다. 긍휼로 표현되는 비탄은 상대의 자리, 그 아픔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돌봄의 모범입니다. 그분은 아들을 잃은 나인 성 과부의 슬픔을 함께하셨기에 그의 아들을 살려 주셨고, 마르다와 마리아의 슬픔과 함께하셨기에 나사로를 무덤에서 일으키셨습니다. 돌봄은 이처럼 이웃의 고통과 슬픔에 함께하는 것이며, 상대의 처절한 필요에 함께 공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돌봄은 큰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작은 일을 통해 돌봄을 생활화하는 것이 더 실제적입니다. 돌봄을 통해 우리는 삶의 가치와 의미를 깨닫고 앞으로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의식하게 됩니다.
하버드와 예일대 교수를 지냈던 <실천하는 영성>의 저자인 헨리 나우웬은 어느 날 그의 모든 교수직을 그만두고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에 들어가 장애인들을 위한 봉사를 시작합니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생의 마지막 10년 동안 ‘아담’이라는 한 명의 지체장애자를 돌봅니다. 사실 그의 봉사의 위대함은 단 한 사람 ‘아담’을 위한 헌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후 아담의 삶을 통해 예수님을 만났음을 고백합니다. 진정 도움을 받은 사람은 그 자신이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이러한 돌봄을 통한 믿음의 교제가 함축하는 것은 개인주의적 신앙의 배격입니다. 이웃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책임에 대한 강조입니다. 교회는 진정한 믿음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 2:19)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권속,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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