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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금) - 평화주의자가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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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금) - 평화주의자가 되는 것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리니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사 32:16~17)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말년에 그리스도인을 도덕적 부패에서 건져 낼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을 발견했다고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 진실을 묻어 둘 수 없다고 판단하고 <사랑의 법칙과 폭력의 법칙>을 저술했습니다. 그의 눈에 비친 19세기 말의 유럽은 만인이 만인에 대해 투쟁하던 시기였습니다. 톨스토이는 “혁명 세력이 정부에 대항하고, 정부가 혁명 분자들을 대적하고, 피압박자들이 압박자들에게 저항하고, 나라와 나라가 대립하고, 서양과 동양이 대립하고 있으며, 그 대립이 날이 갈수록 가혹해지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대립과 투쟁의 주요 원인이 그리스도인에게 있다고 톨스토이는 지적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삶의 고상한 개념”이 없고, “그 삶에 일치하는 행동의 규칙이 없고”,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공유할 규칙이” 없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톨스토이는 그 해결책도 기독교 신앙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진정한 기독교 교리는 사랑을 오직 이 생명의 최고 법으로 인정하는 데에만 존재하며, 그 결과로서 어떤 예외를 인정하는 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법을 강화시키기 위하여 폭력을 사용할 가능성 등의 예외를 인정하는 기독교 교리는 차가운 불이나 따뜻한 얼음같이 너무나 명백한 모순이라는 뜻이다”(<사랑의 법칙과 폭력의 법칙> 중에서).

이 세상에 난무하는 대립과 투쟁을 해결할 수 있는 방책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독교 교리”, 즉 사랑의 법칙이라는 것이 톨스토이의 가르침입니다. <전쟁과 평화>라는 소설을 썼을 때만 해도 그는 평화주의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러나 나이 50에 접어들면서 영적 혼란을 경험한 뒤로 비폭력 평화주의의 사도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가 평화주의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기독교의 의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리니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사 32:16~17). 그리스도의 의로 거듭난 사람의 결실은 평화가 될 것입니다. 그 예언처럼 톨스토이는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서 평화주의자가 되었습니다. 만인 대 만인이 투쟁하는 시대에 그리스도인은 진정한 의의 결실을 맺어 평화주의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영감의 선지자도 “그리스도의 종교는…사랑과 기쁨과 평화의 열매를 맺을 것”라고 말했습니다(2설교, 96).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곧 평화주의자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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