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4일(안) -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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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 23:37)
예루살렘은 고대로부터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의 대상이었습니다. 시편은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로다”(시 137:5)라고 기록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바벨론의 상대적 개념으로 하나님께서 성도들과 함께 거하실 장소로 등장합니다. 이 예루살렘 이름의 의미 자체가 하나님 나라의 주요한 특징을 보여 줍니다. 바로 ‘평화’입니다. 하늘은 평화로운 곳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죄로 깨어진 평화가 회복되는 곳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평화를 그리워하며 살아갑니다. 죄라는 것 자체가 바로 평화의 반대인 ‘소외’이기 때문입니다. 죄는 곧바로 하나님을 인간 삶에서 소외시켜 버렸습니다. 성경은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사 59:2)라고 진단합니다. 하나님과의 소외는 곧바로 부부간의 소외로 발전되었고 아담은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2)라고 말하며 하와를 소외시킵니다. 형 가인은 동생을 소외시키며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창 4:9)라고 소리칩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소외시키며 지구는 소외의 전시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디를 가나 소외된 이웃들이 있고, 소외된 계층들이 있습니다. 평화는 이 땅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등장은 이 땅에 예루살렘의 평화를 회복하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천사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며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소외의 장벽은 허물어졌습니다. 이방인도 여자도 어린아이도 종들도 죄인들도 예수님에게 구원의 샘물을 받아 마실 수 있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으로 더불어…화목된 자로서”(롬 5:10) “화목하게 하는 직책”(고후 5:18)을 수행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평화의 도성 예루살렘이 되도록 부르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세 번이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셨습니다(요 20:19, 21, 26).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는 이 땅에서 평화의 나라를 반사하는 예루살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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