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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과 청지기 정신과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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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9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33분

 

기억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연구 범위: 시 8편, 창 2:15, 계 4:11, 출 20:8~11, 고전 16:19~20.

 

도입)

1927년 벅민스터 풀러는 차가운 물속에 몸을 던져 자살할 생각으로 미시건 해변에 서 있었습니다.

첫 아이를 잃은 데다, 파산상태의 신용불량자였고 직업도 없었습니다. 아내와 새로 태어난 딸이 있었지만 살아갈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때 깨달음의 자각이 풀러의 머릿속을 스쳐갔습니다. 자신의 삶이 자기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간 풀러는 보잘것없고 돈도 없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한 개인이 인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실험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내 삶이 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이라면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봉사하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이 후 54년 동안 풀러는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아이디어를 내놓았고, 이것이 실행 가능한 실용적인 것임을 여러 차례 입증해 보였습니다. 이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풀러는 미국 특허권 25개를 따냈고, 28권의 책을 썼으며, 예술 과학 공학 인문학 분야에서 47개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아울러 미국 건축학회에서 주는 골드 메달과 영국 왕립건축학회에서 주는 골드메달을 포함하여 건축디자인 상을 수십 개나 받았습니다. 또한 전 세계 박물관에 영구소장품으로 보관되어 있는 작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파산한 신용불량자로 자살을 생각하던 풀러는 그 후 성공한 강사로 지구를 57바퀴나 돌았으며 강연 인터뷰 저서 들을 통해 수백만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는 그야말로 1분에 수많은 일을 해 낸 사람이 되었습니다. 신용불량자가 이런 수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된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는 소유를 향하여 살지 않았습니다. 그는 봉사를 향하여 살았습니다. 최고의 삶을 산 것입니다. 참 청지기의 삶을 산 것입니다. 이 세상에 담겨진 하나님의 신비를 정복하고야 만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참된 청지기의 정신으로 산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너무나 많을 것입니다.

 

결론: 피조물에 대한 아담과 하와의 통치권은 그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무제한적인 통치권이 아니었습니다. 금단의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지배권에는 제한이 있었습니다. 인류는 에덴을 남용하거나 파괴하는 대신 그것을 돌보고 보호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첫째날(일) 3월 3일

창조 세계에 부여된 지배권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 1:26).

 

도입)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하여 많은 의견이 있어왔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창 1:26)이 타락한 후에 아담의 셋을 낳았을 때 아담은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아담이 낳은 자식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 아담을 닮은 속성, 곧 썩어 없어질 죽고 없어질 형상, 죽음의 상속자가 될 자기 자신을 닮은 아들을 낳은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곧 아들의 형상(롬 8:29)인데 이는 바로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딤후 1:10)고 하신 것처럼 우리의 썩지 아니할 몸을 가르쳐 말씀하신 것이다.

 

[시8:1~9]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2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 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4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5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6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7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8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9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부가적용)

아담이 지음을 처음 받았을 때는 썩지 아니할 몸, 하나님과 같은 속성, 즉 그분의 속성을 닮은 형상이었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비범한 능력이 있었고, 하나님의 속성을 가진 자였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피조된 자였으며, 하나님의 부리심을 받는 청지기였다. 천사들조차 부리시는 영(히 1:14)이라 하셨다. 성경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청지기이며 청지기로서 살아야 정신을 가르치고 있다. 청지기 정신은 주인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청지기는 주인이 아닌 관리자이다. 그는 주인의 뜻을 따라 주인이 맡긴 것을 일시적으로 관리하는 사람에 불과하다. 우리의 주인은 물론 창조주이신 하나님이시다. 청지기는 자기 것이 없는 사람이지만 무소유의 사람이 아니라, 맡은 자로 주인의 뜻을 실현해야 할 사람이다. 청지기 정신은 맡겨진 것을 관리하여 하나의 공동체, 이것은 인간만을 위한 공동체가 아니다. 사람과 식물과 동물과 짐승들이 함께 어우러진 평화로운 에덴의 공동체의 구성원들의 행복의 비전을 따라 다스리고 발전시킬 책임을 제공한다. 선한 청지기는 끊임없이 주인의 뜻을 묻고 맡겨진 것을 주인과 주인이 기뻐하는 목적을 위해 사용해야 했다. 우리의 문제는 자신이 청지기임을 잊고 자신을 주인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의욕이 아닌 야욕을 위해 맡겨진 것을 사용하는 타락이 우리를 추하고 슬프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주인의 임재 안에서 매 순간 순간을 살아야 한다. 개혁자 칼뱅은 이런 삶을 “하나님 앞에서”(코람 데오)라고 표현하였다.

 

교훈: 하나님은 아담에게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동산과 지구 전체의 생물들에 대한 통치권을 부여하셨다.

 

둘째날(월) 3월 4일

다른 동물들을 돌봄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시 50:10).

 

도입)

종종 우리는 살면서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남의 물건을 빌려다가 오랫동안 쓰고 나면 그것이 내 물건인줄 착각하게 된다. 그래서 돌려줄 때가 되면 아쉬운 생각이 먼저 들기도 한다. 이런 착각은 귀한 것일수록 더욱 심해진다. 사실 생명도, 자녀도, 건강도, 생명도 내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 맡아서 관리하다 보니까 어느새 내 것인 줄 착각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기에 청지기의 마음을 지녀야 한다. 내게 주신 모든 소중한 것들은 일정 때가 오면 다 되돌려 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잠시 내게 맡겨졌을 뿐 내게 속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나 예외 없이 결산의 시간이 다가올 것이다. 자신이 청지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갖게 될 때, 결국 내게 남는 것은 사랑의 잔고 뿐일 것이다.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벧전 4:10)

 

<부가적용>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전 지구 공동체에 없어서는 안된 하나님의 피조물들이다. 지구상에 사는 모든 생명체들은 그 자체대로의 생명이 있고 또 그 생존영역을 배정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생존도 보존해야 하고 그들의 주거 공간도 합당하게 보장해주어야 한다. 할 수 있는 대로 자연의 생태를 파괴하지 않고 이용하며 보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다스리라는 명령을 범하는 것이므로 결국 다스리라는 책임을 진 인류가 화를 입게 될 것이다. 에덴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는 서로 서로에게 공생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될 생명체들이었다. 다스림은 파괴가 아니고 관리이고 그 보존이며 그 본성에 맞게 그것들을 활용하고 또 그렇게 대접해서 그 생존을 보존하는 것이다. 자연에 횡포를 가하면 언제든지 사람이 자기의 책임을 바로 수행하지 못하였고 또 창조주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에 그 귀결은 인간의 몫이 되게 되어있다. 이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는 특권이 사람에게 있었다. 지금 보다 동물의 능력이 더 뛰어나고 인간과 교제할 수 있었으며, 짐승들과도 정겨운 모습으로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비록 그것이 뱀이라 할지라도 두려움 없이 어거할 수 있는 능력이 사람에게 있었고 모든 짐승과 새들도 아담과 하와에게 순종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 이후에 모든 짐승들이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교훈: 인간이 다른 동물들을 돌봐야 한다는 사실은 인간이 동물보다 특별한 존재임을 의미한다.

 

셋째날(화) 3월 5일

안식일과 환경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 20:10).

 

도입)

사람의 하루가 낮과 밤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사람의 하루가 활동할 수 있는 낮과 쉴 수 있는 밤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쉼 없이 일에 매여 활동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에덴의 하루는 낮과 밤으로 이루어져 밤은 쉬도록 구성하셨다. 신33:14에 보면 “태양이 결실케 하는 보물과 태음이 자라게 하는 보물”이라는 말씀이 나온다. 하나님께서 낮과 밤을 두신 이유는 태양의 뜰 때 이 세상 만물이 결실케 하는 활동을 하고 태음, 즉 달은 자라게 하는 보물인 것이다. 잘 자고 쉬어야 사람과 식물은 자란다. 아이들이 자랄 때 잠을 안자면 잘 자라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쉬는 것도 중요한 과제임을 지정하셨는데 잘 다스리는 원칙 속에 잘 쉬는 것도 중요한 다스림의 원칙 속에 두어야 하는 것이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강제적 규정으로 쉬게 하신 날이다. 쉼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기에 하나님께서는 강제적 규정으로 두어 모든 존재가 누릴 수 있는 쉼을 주신 것이다. 쉼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일도 잘할 수 있다.

 

1. 출 20:8~11을 읽어 보라. 청지기 정신과 관련하여 우리는 이 계명에서 어떤 사실을 발견하는가?

[출20:8~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부가적용>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스리라 하셨는데 "다스린다"라는 것은 다른 말로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언제나 다스리는 자는 책임을 져야 한다. 다스리는 자는 그가 누리는 자유만큼 그가 가진 권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이 에덴을 다스리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그 또한 더 크고 높은 존재이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주셔서 자신의 일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함께 쉼을 얻을 필요가 있었다. ‘다스린다, 책임을 진다’ 라는 것은 주인 의식을 말한다. 다스린다는 것은 주인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한 것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것은 우리의 것이다. 그러므로 범사에 주인 의식을 가지고 대하는 독립적인 의식이 필요한 것이다. 어려서 시골에 가서 놀 때 눈이 많이 쌓이면 산에 사는 짐승들이 먹을 것이 없어 동네로 다 모여든다. 노루, 산토끼, 꿩 할 것 없이 야생동물들이 내려오면 사람들은 올무를 놓아 이 동물들을 잡으려고 사냥할 준비를 했었다. 눈만 오면 동물들이 배고파 동네로 들어오는 것을 기회로 보고 마구 동물들을 잡았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 가보면 눈만 쌓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동물들이 굶지 않게 눈 위에다 신문지를 깔고 먹이를 많이 놓아주며 멀리서 즐겁게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 짐승들이 굶어서 동네로 내려오면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 원칙이지, 그것을 기회로 이용해서 잡아먹겠다는 우리의 생각은 정말 고약했었다. 다스리라는 것은 굶으면 먹이라는 뜻이다. 다스리라는 것은 보호하라, 사랑하라는 뜻이다. 얼마나 귀중한 말씀인가? 다스린다는 것이 잡아먹으라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겠다.

 

교훈: 안식일 계명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리의 이웃과 동물 그리고 환경에 대하여 우리에게 어떤 책임이 있는지 가르친다.

 

넷째날(수) 3월 6일

건강을 지키는 청지기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도입)

사람은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진정 건강한 상태란 몸의 건강은 물론이고 마음의 건강까지도 포함해야만 한다. 그러나 오늘날 건강관리는 대부분 체력단련에만 치중되어 있다. 헬스, 조깅, 테니스, 골프, 수영 등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을 통한 체력단련은 취미활동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 근육을 튼튼히 하고, 적당한 몸 무게를 유지함으로써 육체적인 건강에 도움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어려운 일에 부딪혔을 때 헤쳐 나갈 수 있는 기백, 즉 패기는 육체적 건강만으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정신과 육체를 구분하는 서구의 이원론의 영향을 받아 몸의 건강에만 치중했던 건강관리(Health Care) 방식을 따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두뇌 활용도가 중시되는 정보화 사회에서는 마음의 문제가 더욱 중요해 지고 있다. 보다 전인적(全人的)인 관점에서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육체의 건강관리(HealtCare)에서 생명관리(Life Care)로 패러다임을 전환 시켜야 할 때이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부가적용>

몸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영적인 삶을 담아내는 그릇이요 용기이다. 이 몸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령이 임재하는 집이다. 집이 더럽고 집이 약해지게 되면 질병이 생기고 되고 결국 무너지게 된다. 몸과 마음은 밀접한 영향을 서로 주고받는다. 마음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몸에 전달되고, 마음의 염려와 근심이 몸에 나쁜 영향을 주어 우리의 몸에 부담을 주게 되고 그 몸은 이로 인해 힘들어지게 된다. 몸과 마음의 관리를 잘하는 것은 성전의 관리만큼 중요하다.

 

교훈: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창조물일 뿐 아니라, 구속의 값으로 산 성령의 전이기 때문에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우리의 건강을 관리해야 한다.

 

다섯째날(목) 3월 7일

청지기 직분의 원칙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7).

 

도입)

가게를 운영하는 한 집사님이 이런 고백을 했답니다. “저는 아침에 가게 문을 열 때마다 이렇게 기도하며 문을 엽니다. ‘하나님, 이것은 하나님의 가게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종업원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운영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이 가게를 돌봐주시옵소서.’” 늘 이런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 뜻대로 사랑과 성실로 운영하여 좋은 열매를 맺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모든 좋은 은사와 선물이 다 위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을 관리하는 자세로 산다면 우리에게 더 많은 축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부가적용)

한 살 차이로 세 자녀를 둔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 부인은 그 자녀들을 키울 때 하루 종일 바빴다고 합니다. 고만고만한 아이들 셋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음악을 듣게 하며 노래를 불러 주고 목욕을 시키고 밥을 먹이며 재우기까지 세 아이를 정신없이 키웠는데 어른이 다 된 그 아이들은 어린 시절을 간혹 기억해 낸답니다. 한 아이는 어렸을 때 들은 동화를 기억하고 있었고, 둘째 아이는 음악을, 셋째 아이는 그림 그린 기억을 갖고 있답니다. 그러나 놀라운 세 아이 모두 여름날 개울에서 가재 잡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이 부인은 그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는데도 말입니다. 우리는 자녀를 맡은 청지기들입니다. 자식을 키우면서 부족한 것, 하고 싶지 않은 일, 무가치해 보이는 일은 없습니까? 하지만 어떻게 압니까, 우리가 지금 하는 어떤 일이 우리의 생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어느 씨가 싹 틀는지는 나중에야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기쁘고 성실히 하나님의 신실한 청지기로서 자녀들에게 좋은 씨를 뿌려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씨나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위해 씨를 뿌리라는 것입니다. 사랑과 희생과 봉사의 씨를… 그리고 돈과 환경, 건강 우리의 재능 모두가 하나님의 것임을 알고 이를 주님을 위해 쓰겠다고 생각하면 우리에게 이것이 큰 축복이 될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훈: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책임은 돈이나 환경 그리고 건강 뿐 아니라 우리의 재능을 활용하는 문제까지 포함된다.

 

여섯째날(금) 3월 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봉사를 위하여 구속함을 받았다. 우리 주께서는 인생의 참된 목적은 봉사에 있음을 가르쳐 주셨다. 그리스도 자신이 일꾼이셨으며 그분을 따른 모든 사람에게 봉사의 법칙, 곧 하나님과 저들의 동포에게 대한 봉사의 법칙을 주셨다. 이 점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는 저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고상한 생애의 개념을 세상에 보여 주셨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생애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결된다. 봉사의 법칙은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고리가 되는 동시에 우리 동포들과 연결시키는 고리가 된다”(실물교훈,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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