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과 그리스도의 죽음과 율법(교사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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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과 그리스도의 죽음과 율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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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0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30분
기억절 :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롬 7:4).
도입)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모든 인간이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인생의 한 번 죽는 죽음은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그 후에는 심판이 있겠다고 하였는데 이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아야 할 근거와 심판의 잣대는 무엇인가? 이 심판의 근거와 잣대는 하나님의 율법이다. 롬 2:11-14절의 말씀을 보면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롬2:11-14] 율법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생이 심판을 받으리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율법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심판의 근거요 잣대가 된다. 이것은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연구 범위 : 롬 7:1~6, 롬 8:5~8, 롬 7:7~13, 롬 4:15, 행 13:38~39, 갈 3:10.
어떤 여인이 과속 운전 중이었다. 그런데 백미러에 경찰차 불빛이 보이고 익숙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지갑을 열어 운전면허증을 꺼냈다. 경찰이 와서 면허증을 가지고 경찰차로 돌아갔다.
그녀는 범칙금이 얼마나 많이 나올지 또 그것을 어떻게 지불할지 걱정했다. 몇 분 후에 경찰이 다시 와서 말했다. “아가씨, 걱정 마십시오. 아가씨가 다시 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우리가 법을 없애겠습니다. 그러면 더 이상 과속에 대해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으신 뒤에 율법과 십계명이 폐지되었다고 가르치는 신학도 마찬가지다.
이번 주에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과 율법과의 관계를 살펴보려고 한다.
*교과 토의 시간은 믿음과 생각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안교 활동반과 교과 토의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예수님의 죽음이 율법을 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➋ 느끼기 : 하나님 그리고 그분의 율법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할 필요성을 인식한다.
➌ 행하기 : 예수님의 용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완전하게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Part 1. 인사 안교 반장 또는 소그룹 리더
서로 인사를 나누고 손님을 환영해 줍니다.
출석과 공부를 확인하고 안교헌금을 걷습니다.
결석자와 구도자에 대한 보고를 듣고 방문 계획을 세웁니다.
Part 2. 나눔 안교 교사 또는 소그룹 리더(A나 B 중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A. ❶ 죽을 뻔 했던 일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경험이 있습니까?
❷ 배우자가 사망하여 재혼하는 경우와 달리 예수님과 결혼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입니까?
❸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율법과 맺는 관계는 영접하기 전과 어떻게 다릅니까?
❹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과 연합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까?
B. ❶ 단속이나 까다로운 법 적용 때문에 어려움을 당한 적이 있습니까?
❷ 우리를 위한 율법의 기능과 한계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❸ 우리와 율법 사이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예수님의 죽음이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❹ 어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백 퍼센트 확신할 수 있을지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결론 : 예수님의 죽음은 율법을 폐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모든 신자는 율법을 범하므로 맞이해야 할 죽음을 이길 수 있습니다.
Part 3. 실천 안교 반장 또는 소그룹(예비) 리더
❶ 5월 17일이나 18일에 구도자들을 위한 친교 모임을 갖도록 계획합니다.
❷ 각자의 구도자들을 어떻게 친교 모임에 초청할지 이야기합니다.
❸ 기도 제목을 가지고 함께 기도합니다.
첫째날(일) 율법에 대해 죽음(롬 7:1~6)
5월 4일
“형제들아…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롬 7:1).
교사강해 1)
우리가 이 사실을 인정하든 인정을 하지 않든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이다. 위의 도입에서 언급하였듯이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며 심판의 근거는 하나님의 나라의 법인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서 이다. 인간이 이 사실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그것은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며 그분의 의지와 뜻에 따라 심판을 받을 뿐이다. 그런데 인간이 이 하나님의 율법을 통해 받게 될 심판의 결과는 둘째 죽음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인간이 받아야 할 심판의 결과는 둘째 사망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이 땅에 하나님이 계신지 안계신지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무조건적인 심판은 하나님을 의롭지 못한 폭군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정체를 세상에 알리고 나타내실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세상에 보여 나타내시고 인간이 그들의 운명을 선택할 기회를 가지게 할 필요가 있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품성을 나타내시고 당신과 하나이신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딤후1:10)고 하셨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둘째 사망 곧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고 구원 받을 수 있는 생명과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형상의 모습을 드러내셨다. 그리고 인간이 받아야 할 죄의 형벌을 당신의 아들에게 돌리시고 이 아들이 이 세상의 죄를 담당케 하시려고 보내셨다. 우리가 히 9:28절을 읽어보자.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9:28) 고 하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다고 하셨다. 인간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에 인간은 더 이상 죄에 대하여 매이지 않도록 하시는 구속의 경륜을 경영하셨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롬 7:4). 인간은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 받아야 할 둘째사망의 심판이 선고되어질 운명의 예정된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둘째 사망을 선고하게 될 율법의 저주를 우리를 위해 예수께서 그 운명의 결과를 그 자신이 십자가에 지셨다. 십자가는 인간이 받아야 할 심판의 둘째사망을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죽음은 우리 인생들이 죽어야 할 둘 째 사망의 죽음을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십자가에 함께 죽으신 것이다.
롬 7:1~6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바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요약해 보라. 율법에 대한 다른 성경절들도 염두에 두고 자세히 읽어 보라.
어떤 성경은 롬 7:1을 율법이 죽음 이후에는 구속력이 없는 것처럼 잘못 번역하였다. 그러나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이렇다. “모든 살아있는 사람은 율법의 지배 아래에 있다.” 강조점은 죽은 자들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들에 있다.
결혼을 예로 들자면 기혼자가 배우자 이외의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은 율법에 어긋나며 간음죄가 된다. 한쪽 배우자가 죽어야 다른 쪽 배우자가 율법을 범하지 않고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로마서 7장이 율법의 죽음을 말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리스도의 육체를 통하여 사람이 율법에 대해 죽는다는 사실을 보여 줄 뿐이다(롬 7:4). 롬 6:6에 따르면 죽는 것은 “옛 사람”이다. 옛 사람과 연합한 자는 율법의 정죄를 받고 불행한 관계에 사로잡힌다(롬 7:9~11, 24). 그러나 옛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은 자유롭게 새 사람 곧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들어간다(롬 7:4).
바울은 율법이 모든 살아있는 사람을 구속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이 새로운 연합을 지배한다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신자가 그리스도와 결혼했다는 사실은 율법이 더 이상 정죄의 수단이 아님을 뜻한다. 예수님 안에 있는 신자는 율법의 정죄에서 자유롭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의를 입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죄를 정의하는 십계명이 폐지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는 성경의 가르침과 너무나 어긋난다. 대신 그는 신자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 가져야 할 새로운 관계에 대해 말한다. 율법은 여전히 구속력이 있다. 그것은 단지 예수를 믿고 죄와 자아에 대해 죽은 자들을 더 이상 정죄 아래 붙잡아 두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새로운 분, 곧 예수님께 속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교훈 : 율법은 죽지 않는다. 단지 옛 사람이 죽으면 우리는 예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율법의 정죄로부터 자유롭게 될 뿐이다.
부가적용)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그분과 함께 침례를 받을 때, 우리는 그분과 함께 죽어 우리가 받아야 할 둘째 사망과 하나님의 율법에 의한 심판은 넘어간 곧 유월(愉越) 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롬3:25-26)고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삼으시어 인간의 죄를 간과하여 넘어가는 유월절 어린양이 되게 하신 것이다. 인간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이미 죽은 자로 선언된 옛사람에 의해 이 그리스도와 함께 침례와 함께 장사지낼 때, 하나님의 율법의 정죄에서 자유롭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옛사람은 죽고 새생명 그리스도 안에서 죽지 아니하고 썩지 아니할 새생명이 된 것이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의 삶에는 그리스도와 결혼한 어떤 증거가 있습니까?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이상 우리는 율법의 정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알고 우리는 우리의 옛 자아를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와 정죄하는 율법 사이의 옛 인연은 끝났습니다. 대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삶을 얻고 이제 의와 생명의 법 아래 있습니다. 옛 자아가 죽음으로 율법과 우리의 관계는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 적용 |
그대의 경험에 비춰본다면 정죄의 율법 아래 있는 삶과 생명의 법 아래에 있는 삶은 어떻게 다릅니까?
영감의 교훈
참으로 큰 모순 - “국가로서도 그 법률을 없애 버리고 국민을 제각기 원하는 대로 행동하도록 용납할 수 없는데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율법을 폐지하시고 죄인을 정죄하고 순종하는 자를 의롭다고 인정하는 표준을 없애버린다는 것은 참으로 큰 모순이 아닐 수 없다”(각 시대의 대쟁투, 584).
기 도
예수님, 아무 소망 없이 죽음의 저주 아래 있던 저를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전에는 불가능한 구원을 얻기 위해 노력하든지 아니면 포기하거나 해야 했지만 이제 믿음으로 얻은 구원과 생명을 누리며 은혜 안에서 주의 법을 따르기 원합니다.
둘째날(월) 죄와 사망의 법(롬 8:1~8)
5월 5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 8:7~8).
교사강해 2)
파스칼은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다. 생각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이다. 생각이 없는 사람도 문제이지만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도 문제다. 영의 생각은 모두 옳은 생각이다. 그러나 옳은 생각이 반드시 영의 생각은 아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된 생각이라면 영의 생각이지만 내가 중심이 된 생각은 육의 생각이 되기 때문이다. 옳다는 것은 교만을 경계해야 한다. 교만은 화평을 이루지 못한다. 화평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인 옳은 생각은 육의 생각이고 영의 생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영의 생각은 나를 부인함으로 시작된다. 갈리디아서 2장 20절을 보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고백한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어야 한다. 우리의 마음에 가지고 있는 고집, 교만, 불순종, 불화, 욕심등 모든 죄악을 십자가에 매달고 자신을 죽여야 한다. 그 다음에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 때 영의 생각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이렇게 확신시킨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이 말씀을 문맥과 상관없이 읽으면, 바울이 ‘생명의 법’과 ‘죄와 사망의 법’을 두 개의 다른 법으로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법이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의 전과 후가 다를 뿐이다.
롬 7:7~13에서 바울은 율법의 역할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설명하는가?
율법의 기능은 그것과 관계하는 사람에 따라 좌우된다. 예를 들면 똑같은 칼이라도 외과의사가 들면 치료의 수단이 되고 살인자가 들면 죽이는 수단이 된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지갑을 훔쳐서 법을 어긴 강도는 법을 보호의 의미로 여기는 자(지갑 주인과 같은)와는 다른 법적 관계에 서게 될 것이다. 성경은 율법이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롬 7:12)다고 설명하기도 하고 때로 “죄와 사망의 법”(롬 8:2)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하나님이 응보(應報)의 심판을 하신다고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처럼 율법이 죄를 드러내고 사망을 요구하는 기능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죄로 여길 수는 없다.
롬 8:5~8에 따르면 율법은 “육신의 일을…생각하는 자들”에게 “죄와 사망”의 도구가 된다. 이 말씀은 과거의 관계를 끊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할 뚜렷한 욕구가 없이 여전히 “옛 사람”과 결혼 관계에 머문 사람을 묘사한다. 이런 죄악된 연합의 결과, 그는 자신과 반대편에 계신 하나님과 그분의 율법에 대하여 원수가 된다(롬 8:7).
교훈 : 같은 율법이라도 사람이 그리스도와 맺는 관계에 따라 ‘생명의 법’이 되기도 하고 ‘죄와 사망의 법’이 되기도 한다.
부가적용)
사도 바울은 기록한다.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롬 7:7). 순종하는 자들에게 생명을 약속하는 율법은 범하는 자들에게 사망을 선언했다. 바울의 말이다.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 바울의 이 말씀과 오늘날 강단에서 수많은 사람이 말하는 말들과 얼마나 방대한 대조를 이루는가.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이 구원에 불필요하고, 그저 오직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되고 그래서 안전하다고 가르침을 받는다. 그러나 율법 없이는 인간이 죄를 자각하지 못하며, 회개할 필요도 못 느낀다. 하나님의 율법은 모든 진정한 회심에서 하나의 동인(動因)이다. 죄에 대한 자각 없이는 참된 회개란 있을 수 없다. 성경은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그리고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라고 선언한다. 죄인들이 자기의 죄를 알기 위해서는 의에 대한 하나님의 위대한 표준으로 성품을 시험해 봐야 한다. 결함을 발견하려면 하나님의 법이라는 거울에 비춰 봐야 한다. 그런데 율법이 그들의 죄를 드러내지만 그 죄의 처방은 내놓지 못한다. 오로지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용서를 제공한다. 용서받은 자로 서기 위해서, 죄인들은 율법을 범한 자들이므로 반드시 하나님께 회개하고, 구속 제물이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참된 회개 없이는 진정한 회심이 있을 수 없다. 많은 사람이 여기에서 기만당하고 있으며, 너무 자주 그들의 모든 경험 자체가 일종의 기만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이것이 그토록 교회에 연합한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와는 전혀 연합되지 않은 이유이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 8:7). 새로운 출생으로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새로워지고, 하나님의 율법에 굴복하여 하나님과 조화를 이룬다. 이렇게 위대한 변화가 일어났을 때 죄인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죄에서 성결로, 범죄와 반역에서 순종과 충성으로 옮겨진다.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진 옛 생애가 끝이 나고, 화목과 믿음과 사랑의 새 생애가 시작된다. 그리고는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질 것이다. - 영적 선물 제4권, 297, 298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는 지금 율법과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바울은 육신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율법에 굴복할 수도, 그분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다고 강조한다(롬 8:7~8). 이것은 롬 7:13~15에서 번민하는 자에 대한 언급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긴다고 했기 때문이다(롬 7:25). 아마도 바울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롬 1:18)들에 대해 언급하는 것 같다. 이렇게 하나님의 권위를 거스르는 자들에게 율법은 죄와 사망의 도구가 된다(롬 2:12).
| 적용 |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요?
영감의 교훈
순종은 속박이 아님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율법의 속박 하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그 율법을 순종하는 사람에게 생명의 법이지 사망의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율법의 영적 성질을 깨달은 사람들과, 율법이 죄를 탐지해 내는 능력을 실제로 느끼는 사람들은 모두 다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그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마련된 속죄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마치 사탄이 처한 형편에 있는 것처럼 가망이 없다”(화잇주석, 롬 8:15~21).
기 도
아버지, 제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제게 하나님의 영을, 그리스도의 영을 부어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여는 살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녀가 되기 원합니다.
셋째날(화) 율법의 권능
5월 6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 15:55~56).
교사강해 3)
율법이 세상에 들어옴으로 해서 아담의 죄는 그 계시된 계명에 환히 드러난 것이다. 계명이 주어지므로 우리의 죄가 분명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율법은 우리의 의무와 책임의 규범에 대한 지식을 더해 주며 그 결과 우리의 부족과 미달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율법의 역할은 확대경과도 같다. 확대경은 우리의 옷에 붙어 있는 더러운 먼지의 수를 더 잘 보이게 한다. 먼지는 그대로 있지만 더 자세히 봄으로 더 많아졌다고 느끼는 것이다. 안보이던 것들까지 보게 하므로 결국은 더해 준 격이 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율법은 보이지 않는 죄를 보이는 범죄로 변하게 한다고 할 수 있다. 율법은 죄를 볼 수 있게 함으로 격렬한 감각을 더해 주거나 또는 범죄의 차원을 삽입시킴으로서 더 악화시킨다. 모세의 율법은 하나님의 인류를 취급하는 경로에서 괄호 적인 경륜임을 암시한다. 그러면 이런 맥락에서 죄를 더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를 절망시키고 낙심시키려는 것인가? 그것은 로마서 5장 20절의 하반 절이 대답이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한다. 죄와 은혜가 다 같은 정도의 능력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은혜가 죄를 능가한다는 말이다. 죄를 짓지만 자신이 무슨 죄를 짓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그들의 죄가 더욱 커지기까지, 아니면 큰 죄를 짓더라도 양심의 화인 맞음으로 인해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은혜는 반드시 자신이 죄를 지었음을,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경우에만 성립된다. 죄인으로 인정치 않는 자에게는 은혜는 한낱 피상적인 단어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죄를 깨닫게 하심으로, 죄를 더 많이 깨닫게 하심으로-이것은 하나님의 방법이요, 지혜다- 구원을 갈망하게 된다.
롬 4:15, 5:13, 7:7에 따르면 율법의 기능은 무엇인가? 롬 7:8~11은 율법을 어긴 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모든 도구는 목적이 있다. 열쇠는 자물쇠를 열고 칼은 물건을 자르는 데 사용되는 것처럼 율법은 죄를 정의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하나님의 율법이 없었다면, 어떤 행동이 그분께 용납될지 또는 용납되지 않을지 알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물론 율법 없이는 죄도 존재하지 않겠지만, 바울은 율법이 죄와 단짝이 아님을 명확히 한다.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롬 7:13).
위의 말씀은 어떻게 고전 15:54~58의 말씀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하는가?
따로 읽는다면 고전 15:54~58은 하나님의 법에 대하여 부정적인 견해를 권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울의 요점은 율법이 죄를 정의하기 때문에 죄를 더욱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물론 “죄의 삯은 사망”이다(롬 6:23). 율법이 없다면 죄를 정의할 수 없기 때문에 죽음도 없었을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의 목적은 율법을 악마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모든 신자가 어떻게 율법을 어김으로 이르러온 죽음을 이길 수 있는지 증명하는 것이다.
교훈 : 율법은 죄를 정의하는 것이기 때문에 율법의 존재는 죄를 더욱 부각시킨다. 하지만 율법의 이러한 목적은 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의를 위한 것이다.
부가적용)
죄의 크기가 크다고 느낄수록, 자신이 자신을 구원하지 못한다고 더욱 깊이 느낄수록 구원의 길은 더 가깝게 되는 것이다. 율법을 통해서 내가 죄인이요 죽어 마땅한 운명임을 자각하게 될 때에 용서와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초대에 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의 관점에서 나의죄 많음과 연약성을 깨닫게 되고 감사하게 된다 그러므로 율법은 죄를 더하는 것이고,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하는 것이다.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에 관해서 한 가지 생각할 것이 있다. 율법 말고 우리의 죄악을 완전히 깨닫게 하는 도구가 없을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해보면 그렇지만 않다는 것을 우리는 곧 알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서 우리가 죄인임을 분명하게 깨닫는다. 아무런 잘못도 흠도 없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은 율법의 기능에서만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피흘리심을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가 말할 수 없는 죄인임을 알게 된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우리에게 율법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세상은 절대적인 선과 도덕적 기준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흐름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수치스럽게 여겼던 죄를 대범하게 저지르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해하는 범죄도 심심치 않게 발생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그런 죄악 때문에 이르러 오는 고통과 상처와 피해를 경험합니다. 그래서 범죄로부터 사회를 지키기 위해 더 강력한 법적 장치를 요구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절대적인 도덕적 기준인 하나님의 법이 폐지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 적용 |
율법이 정하는 죄와 죽음을 극복하려면 우리에게 어떤 믿음이 있어야 할까요?
영감의 교훈
율법의 목적 - “시내산에서 율법이 반포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품성의 거룩하심을 사람들에게 알게 하신 이유는 그들이 대조하여 봄으로 자신들의 품성의 죄악성을 보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들로 죄를 깨닫게 해 주고 구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하여 율법이 주어졌다. 율법의 원칙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부어질 때 율법은 이런 일을 행할 것이었다. 율법은 지금도 이 일을 행할 수 있다”(시대의 소망, 308).
기 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고전 15:57)합니다. 거룩한 율법이 지적하는 죄를 깨닫고 죽어야 할 우리의 운명을 예수께 맡길 수 있도록 믿음과 소망을 주신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넷째날(수) 연약한 율법
5월 7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롬 8:3).
교사강해 4)
바울은 말하기를 만일 죄가 없었다면 사망이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사망은 죄로 말미암아 세상에 들어왔다" "죄는 사망 위에서 왕노릇했다" 인간이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게 될 수 있다." 즉 "죄의 대가는 사망이다"고 한다.(죄의 대가는 사망 롬5:12-20, 6:16-23.)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죄짓고 불순종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 된다. 인간이 하나님의 법을 떠나, 죄의 권세아래 속하여 타락하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데 바울은 이러한 죄와 타락의 근원을 아담으로 기인하였음을 강조하였다.(죄는 아담으로 왔음 롬5:12-14, 1:21- 25,32.) 즉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누구든지 하나님의 법아래 있지 않는 자들은 (불순종하는 자들) 죄에 매인 종들이며 억제할 수 없는 정욕의 희생물이 되여 죄와 악으로 타락하여 사망을 면치 못하게 되며, 불완전한 인간 자신의 힘으로는 구원 받을 길이 없게 된다. 여기에는 반드시 죄에서 인간을 구속할 절대적 능력을 가진 능력자, 즉 구세주를 필요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어떤 면에서 율법은 죄를 ‘강화’시키지만, 실제로는 끔찍할 정도로 연약하다. 어떻게 같은 주체가 동시에 강력하면서도 연약할 수 있는가?
그러나 차이점은 율법에 있다기보다는 사람에게 있다. 율법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사람에게 그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있으며 죽음에 이르는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도록 강요한다. 자신의 죄악을 발견함에 따라 그 죄인은 율법을 철저하게 따르기로 결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이미 죄를 지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는 죽음을 면치 못한다.
행 13:38~39, 롬 8:3, 갈 3:21을 읽어 보라. 이 말씀들은 율법과 구원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가?
어떤 사람은 율법을 엄격히 고수하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율법은 죄를 정의할 뿐 그것을 용서하지는 않는다(롬 7:7, 갈 2:21). 그런데 바울은 죄를 강화시키는 동일한 법이 또한 연약하다고 말한다(롬 8:3). 율법은 죄인의 죄를 깨닫게 하지만 그를 의롭게 하지는 못한다. 거울이 우리의 잘못을 보여주지만, 그것을 교정해 주지는 못하는 것과 같다. 엘렌 G. 화잇도 이렇게 말했다. “율법은 그것의 정죄를 받은 사람을 구원하지 못한다. 율법은 멸망하는 자들을 건져낼 수 없다”(영문 시조, 1890년 11월 10일).
우리가 율법의 목적을 온전하게 이해한다면 예수님이 왜 인류를 위한 속죄 제물이 되셨는지 이해하기 쉽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죄 많은 인류는 하나님과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한(롬 7:12) 법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되었다.
교훈 :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지만 우리를 구원할 능력은 없다. 예수님의 죽음은 율법에 대한 순종으로 우리가 구원 얻을 수 없음을 보여 준다.
부가적용)
율법은 모든 인생이 죄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만든다. 이 율법을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이 율법의 요구를 이루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실 뿐이시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율법이 정죄하는 이 정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을 수 있을까?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9:28) 인간이 죄값을 담당하려면 죽어야 한다. 죄와 상관없는 사람이 되려면 율법이 명시한대로 인간의 육신이 죽어야 한다. 일사부재리의 원칙이 있는 것처럼 율법의 형벌이 요구하는 죽음을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십자가의 형벌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옮겨야 한다. 이것이 죄의 유월이다. 내가 죽어야 할 형벌을 담당하신 그리스도의 대속이다. 우리는 이제 죄와 상관이 없어졌다. 그리스도께서 죄의 책임을 지고 죽으심으로 우리는 죄와 상관없이 그리스도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죄의 영향아래 살기 때문에 우리가 죄인의 습관 죄인의 그 영향권 아래 살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아래의 소지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자.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우리는 어떤 생각과 믿음으로 율법에 순종해야 합니까?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동시에 그분의 죽음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노력이 허사임을 보여 주였다. 만약 율법을 지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죽으셨다는 사실은 율법에 대한 순종으로 우리가 구원받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극단적인 조치가 필요했다.
| 적용 |
그대가 구원의 조건으로 여기기 쉬운 율법의 행위가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영감의 교훈
유일한 소망 - “그리스도의 의밖에는 아무것도 우리에게 은혜로운 언약의 축복 중 단 한 가지도 받을 권리를 주지 못한다. 이 축복을 얻으려고 오랫동안 갈망하고 노력한 자들이 많으나 받지 못함은 그들이 스스로 이 축복을 받기에 합당한 무슨 일을 해보려는 생각을 품은 까닭이었다. 그들은 시선을 자신에게서 돌리고 예수를 모든 것을 충족시키시는 구주로 믿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공로가 우리를 구원하리라고 생각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의 소망이시다”(부조와 선지자, 431).
기 도
저의 시선이 죄를 지적하는 율법에만 머물지 않고, 또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주목합니다. 그리고 율법이 연약해서 할 수 없는 일을 이루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찬양합니다.
다섯째날(목) 율법의 저주(갈 3:10~14)
5월 8일
교사강해 5)
일반적으로 율법 폐기론자들 처럼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다 이루어져 폐기된 것으로 아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서 3:21∼31에서 하나님의 의의 실현 방법에 대해 언급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가 얻어지게 됨을 말해 주고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31)"고 말하고 있다. 즉 율법이 독자적으로 설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믿음에 의하여 더욱 굳게 세워진다는 뜻인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로마서 3:19∼30 사이에 나타나고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율법은 행위로는 의를 얻지 못하게 하고 믿음으로만 하나님의 의를 얻게 하는데 기여하기 때문에 믿음으로 율법이 폐해지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굳게 세워진다는 의미이다. 그 이유는 율법이 굳게 세워져야 만이 자기 행위의 공로를 포기하고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율법을 굳게 세운다는 말이 율법대로 행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어 져서는 안되고 도리어 율법에 의한 자기 행위의 공로를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 들여져야 한다. 이러한 의미의 차이는 정반대의 해석의 차이를 나타내어 주므로 율법주의 적인 신앙의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아래의 성경절들은 인간의 본성에 어떤 사실들을 말하는가? 우리는 이러한 실상을 매일 어떻게 확인하는가? 시 51:5, 사 64:6, 롬 3:23.
예수님을 제외한다면 모든 인류는 아담의 죄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자신이 완전히 의롭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물론 엘리야나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특별하게 가까웠던 인물도 있었다. 그러나 흠 없이 완전하게 산 사람은 없었다.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바울은 이렇게 단언하였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0). 율법은 총체적이고 전적인 순종을 요구한다. 하지만 예수님 외에 과연 누가 항상 순종할 수 있겠는가?
롬 6:23는 “율법의 저주”의 의미를 어떻게 정의하는가?(창 2:17과 겔 18:4 참고)
모든 사람은 선천적으로 율법의 저주 아래에 있다. 율법은 과오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과거의 죄를 돌이키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야고보는 율법의 하나를 어기는 것도 모든 율법을 어기는 것처럼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킴으로써 상황을 더 절망적으로 묘사한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죽음에는 경중이 따로 없다.
저주 아래 있는 절망적인 상황을 인식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규모를 쉽게 인정하게 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자신의 죽음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갈 3:13)다.
교훈 : 죽음은 아담 이후의 죄 지은 모든 인류가 피할 수 없는 율법의 저주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대신 이 저주를 받으시고 우리를 속량해 주셨다.
부가적용)
바울은 로마서 7: 1∼11에서 율법이 우리로 하여금 죄를 알게 하고 죄인인 우리 자신을 죽게 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의의 열매를 맺게 하려 하기 때문에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율법이 죄로 죄되게 하여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한다고 해서 악한 것인 줄로 알아서는 안된다. 로마서 7:13 하반 절에서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 함이니라"는 말은 죄가 아닌 것을 죄로 만든다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되며 어디까지나 죄는 죄인데 그 죄를 율법이 구체적으로 죄로 구성시켜 우리로 하여금 죄인임을 알게 한다는 의미로 받아 들여져야 하는 것이다. 율법은 그 자체가 선하고 의로우며 거룩하여도 인간의 타락의 심각성 때문에 전적 타락으로도 인간은 연약하여 율법을 지켜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 곧 사람이 전혀 없다는 것이 바울의 가르침이고 웅변이다. 우리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을 때에만이 자신의 의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의만을 의지하게 되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심히 죄되게 하는 율법이야말로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한 것이 되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 7:14 에서 덧붙여 율법은 신령한 줄 안다고 하면서 7:16에서는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즉 율법은, 죄인 된 인간을 죽게 하고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한 하나님의 의를 힘입은 그리스도의 의의 사람으로 거듭나서 성령의 선한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한 것이라는 결론이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는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크게 느끼고 있습니까?
많은 그리스도인이 해결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죄의 습성 때문에 좌절합니다. 그들은 심지어 자신이 구원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집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고민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더욱 감사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방탕한 자녀를 아무 조건 없이 영접하는 아버지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예수님이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위해 오셨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이상 우리는 그분의 은혜에 붙들려 있는 것입니다.
| 적용 |
그대가 자신의 상황과 관계없이 구원을 확신할 수 있는 이유를 적어 보십시오.
영감의 교훈
율법의 저주를 속량할 유일한 분 - “깨어진 하나님의 율법은 죄인의 생명을 요구하였다. 온 우주에서 사람을 위하여 이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이는 한 분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 자신처럼 거룩하므로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만이 범법을 속죄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밖에는 아무도 타락한 사람을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여 하늘과 조화시킬 수 없었다”(부조와 선지자, 63).
기 도
아버지, 세상에 버려진 고아와 같은 저를 받아주시고, 아무 가망성 없는 저를 그리스도의 의의 옷으로 입혀주셔서 감사합니다. 은혜가 아니면 설 수 없는 구원의 길을 따라 믿음으로 천국 문을 향해 걷습니다. 연약한 제 손을 붙잡아 주시옵소서.
여섯째날(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5월 9일
<시대의 소망>, 758~764, “다 이루었다”를 읽어 보라.
“율법은 의, 즉 의로운 생애, 완전한 품성을 요구하지만 인류는 그 요구에 미칠 수 없다. 인류는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으로서 지상에 오셔서 거룩한 생애를 사시고 완전한 품성을 계발시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받고자 하는 모든 자에게 값없이 선물로 주신다. 그분의 생명은 사람들의 생명을 대신하신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관용하심을 통하여 과거의 죄를 용서받는다.… 그리하여 바로 이 율법의 의가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서 성취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롬 3:26)실 수 있으시다”(시대의 소망, 762).
요약하면,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의 법의 항구성을 효과적으로 증명했다. 인류의 첫 조상이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은 율법을 폐지하거나 처벌을 거두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면 지구의 거주자들은 법 없는 세상에서 사는 불행한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대신 하나님은 우리의 대속자로서 아들을 보내셨고, 그분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율법이 요구하는 죄의 형벌을 받으셨다.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온 인류는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누구든지 죄를 용서 받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완전하게 설 수 있음을 뜻한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많은 종교가 사람이 죽으면 신이 그 사람의 선행과 악행을 비교해서 내세에 어떤 상을 베풀지 결정한다고 가르칩니다. 이런 종류의 생각에는 얼마나 끔찍한 오류가 있습니까?
➋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율법에 대한 순종이 우리를 구원하는 데에 어느 정도 보탬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그리스도의 희생의 효능을 어떻게 본다는 말일까요?
➌ 율법이 폐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정말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들이 폐지되었다고 생각하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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