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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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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과 그리스도의 죽음과 율법




기억절: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롬7:4)




첫째 날(일) 율법에 대해 죽음(롬7:1-6)



*도입질문: 율법이 죽는 것일까요? 율법에 대하여 사람이 죽는 것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율법은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이며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역할을 하므로 결코 죽을 수(폐할 수)가 없습니다.

율법은 “거룩하며 의롭고 선하지”(롬7:12)만 하나님과의 분리를 선택함으로 사단에게 지배당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함으로 인해 율법의 선한 뜻을 보는 것이 아니라 뜻 없는 글자만 보게 됨으로 사랑 대신 스스로가 정죄에 빠지게 됩니다.


율법의 정죄로부터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품성을 가장 잘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동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감으로 죄의 본성으로부터 죽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되고 생명으로 부활하였다고 설명합니다.(롬6:3-5)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동하여 사단이 주는 전파에서 벗어날 때 이제는 더 이상 율법을 글자로서 받아들이지 않고,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품성으로 이해함으로 정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율법의 글자로부터 벗어나야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품성을 보게 됩니다.





둘째 날(월) 죄와 사망의 법(롬8:1-8)



*도입질문: 육신의 생각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육신이란 죄된 인격을 가리킵니다.

사단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사단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과 반대이기 때문입니다.


사단의 생각에 지배당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인 율법은 죄와 사망에 이르게 하는 법으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율법 속에 담긴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보는 대신 글자만 보게 하여 정죄에 이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고후3:6, 요3:18)

율법은 하나님의 품성을 보게 하는 생명을 위한 법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하고 글자만 보게 되면 죄와 사망의 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글자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까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의 길입니다.(요6:63)






셋째 날(화) 율법의 권능



*도입질문: 율법은 정죄를 위해 있는 것인가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율법은 정죄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생명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율법이 생명을 가르쳐 줌으로 자연스럽게 사망이 무엇일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정죄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품성답고, 선택의 자유를 주시는 하나님의 품성답습니다.


율법은 지속적으로 하나님께로 향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율법을 통해 보게 될 때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하고 있었던 자신이 사망 속에 있었음을 깨닫고, 생명으로 힘차게 나아가게 합니다.






넷째 날(수) 연약한 율법



*도입질문: 율법을 행위로서 지켜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율법을 글자대로 지킨다고 하더라도 구원과는 별개입니다.

율법 그 자체에는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품성을 보게 될 때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동이 하나님을 개인의 창조주와 구원자로 선택하게 이끕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생명의 연결입니다.

율법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의 행위로서나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의 조건적 행위로서의 기준이 된다면 그것은 구원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눅2:29)


아담이 하나님과의 분리를 선택했을 때 아담 뿐만 아니라 아담 안에서 태어날 모든 인류가 그 때 함께 죽었습니다.(고전15:22)

죽은 사람은 어떤 일도 행위도 할 수가 없습니다.(롬14:23)

죽은 자는 그냥 죽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산 자이신 예수님(요14:16)께서 죽은 자를 대신하여 이 땅에 두 번째 아담으로 오셔서 첫 번째 아담의 선택의 결과인 영원한 죽음을 통해 해결하셔야만 합니다.






다섯째 날(목) 율법의 저주 (갈3:10-14)



*도입질문: 율법의 저주란 표현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율법은 저주할 수 있는 인격체가 아닙니다.

사람이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품성을 보지 못한 채, 율법의 글자로 인해 스스로 정죄에 빠지게 되는 것을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는 표현법으로 율법이 저주하는 것처럼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하여 스스로 죄책감 속에 있는 우리들을 위해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십자가에서 보여주셨습니다.

사람들의 행위와 상관없이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의 모습이 십자가에 담겨 있고(롬5:8), 그 십자가에 보여 진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될 때 사람들은 감동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게 됩니다.


율법이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으심으로 율법을 오해함으로 스스로 정죄 속에 빠져 있는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하여 하나님께 나아가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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