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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그리스도와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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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23분

 

기억절 :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개역, 막 2:27~28).

 

도입)

본래 안식일은 단어 뜻 그대로를 살리자면 '쉬는 날'이다. 종종 목사님들이 안식일이라 부르면서도 안식일은 절대로 노는 날이나 쉬는 날이 아니라고 하는 역설을 듣기도 한다. 안식일이 적극적으로 놀이를 하는 '오락일'이 아님은 분명하지만 쉬는 날이 아니라 할 수는 없다. 히브리 동사 '샤바트'는 '쉰다'는 뜻이다. 안식일의 가장 오래된 기원은 창조에 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 2:3). '쉼' 때문에 생긴 날이 안식일임은 분명하다. 사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아담과 하와에게나 하나님께 안식이 필요하였을까? 생명과를 먹고 사는 아담과 하와에게 피곤을 느낄만한 중노동이나 쉼이 필요할 만큼 피곤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왜 굳이 안식일이 에덴에 필요하였고 아담과 하와에게 필요하였을까? 이 의미는 인간의 육신의 쉼의 의미를 넘어서는 영적인 매우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살이를 하고 있었다. 이 종살이에서 저들을 해방시키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는 죽기를 무서워하여 종노릇 하는 자들을 놓아 주려 함(히 2:15)이라고 하셨다. 죽기를 무서워하는 자들, 죽는 자들은 쉼이 없는 존재이며 종들이다. 종들은 죽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일을 하면서 먹고 살아야 한다. 이는 하늘의 존재들 곧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들이었던 아담과 하와는 종이 아닌 진정한 쉼과 자유가 있었던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의미하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축복은 완전한 쉼과 안식, 곧 영생을 가진 자들의 축복을 누리고 있었다. 이것이 저들의 진정한 복이었다. 하나님께서 이 일곱째 날을 축복하셨다. 복 있는 날이 되게 하셨다는 말이란 저들이 누리고 있는 생명의 질이 죽음과는 상관이 없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저들은 종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였기 때문이다. 또한 안식일의 또 하나의 특성은 거룩함이다. 이 '거룩하게 하다'는 말의 히브리 동사('카다쉬')는 본래 '구별하여 분리시킨다'는 뜻이다. 무엇을 구별하여 분리시키는 것일까? 아담과 하와는 본래 창조되었을 당시 하나님과 같은 생명, 곧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을 가진 구별된 존재였다. 본래 안식일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들, 썩지 아니하는 존재들, 곧 존귀하고 신령한 몸을 가진 자들이 누리는 구별된 날이었다. 그래서 일곱째 날은 썩지 아니하고 죽지 아니할 존재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특별히 구별해 놓은 날이었다.

 

연구 범위 : 창 2:1~3, 히 1:1~3, 행 13:14, 막 2:23~28, 요 5:1~9, 사 65:17.

 

대다수의 기독교 교단은 일요일을 휴식과 예배의 날로 지킨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일요일 준수자들은 일요일에 쉬지 않는다). 오늘날 일요일 준수가 지배적이다 보니 많은 사람이 일요일을 ‘기독교인의 안식일’로 믿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줄곧 그랬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신앙의 연장선에서 기독교가 유대교의 모든 신조를 버린 것은 아니며 그 가운데 안식일이 포함된다. 얼마 동안 초기 기독교가 따라야 했던 유일한 성경은 구약성경이었다. 물론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뒤 백 년 동안 예배일 변경 문제가 기독교에 발생하지 않았다. 일요일 준수는 기원후 4세기에 이르러서야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칙령으로 교회의 정책이 되었다. 안타깝게 종교개혁 이후에도 거의 모든 교회가 제칠일이 참 안식일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일요일 준수를 고수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주 교과는 그리스도와 안식일에 대하여 다룬다.

 

*안교반과 소그룹을 일원화시키면 가장 좋습니다.

 

안교 활동반과 교과 토의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안식일이 여전히 창조의 상징이며 구원의 상징이라는 사실을 인식한다.

➋ 느끼기 : 안식일을 해방과 자유의 시간으로 경험한다.

➌ 행하기 : 안식일 준수의 기쁨을 발견한다.

 

Part 1. 인사 안교 반장 또는 소그룹 리더

서로 인사를 나누고 손님을 환영해 줍니다.

출석과 공부를 확인하고 안교헌금을 걷습니다.

결석자와 구도자에 대한 보고를 듣고 방문 계획을 세웁니다.

Part 2. 나눔 안교 교사 또는 소그룹 리더(A나 B 중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A. ❶ 그대가 모든 의무에서 벗어나 완전히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보내겠습니까?

❷ 예수님은 안식일에 대하여 당시 어떤 편견과 씨름하셔야 했습니까?

❸ 하나님이 우리에게 안식일을 주신 목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❹ 진정한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안식일을 보내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B. ❶ 각자 안식일에 느끼는 기분은 다른 날과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해 봅시다.

❷ 다른 기독교인들은 안식일에 대해서 어떤 점을 오해하고 있습니까?

❸ 안식일은 인류의 과거와 우리의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합니까?

❹ 우리는 어떻게 아직 안식일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 복을 알려주어야 할까요?

 

결론 : 창조 주간에 안식일을 제정하신 예수님은 안식일 제도를 폐지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창조와 구속의 상징인 안식일을 회복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Part 3. 실천 안교 반장 또는 소그룹(예비) 리더

❶ 지난주 친교 모임에 온 손님들을 위해 어떤 후속 조치가 필요한지 이야기합니다.

❷ 지난 기부터 시작한 안식일 오후 활동을 점검하고 어떻게 발전시킬지 의논합니다.

❸ 구도자들과 안교반(소그룹) 활동을 위해 함께 기도합니다.

 

첫째날(일) 유대인들의 안식일?(출 20:8~11)

4월 27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11).

 

도입)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다 이루신 후에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시고 안식하셨”다(창2:1). 하나님께서는 이 우주의 창조와 에덴동산에 거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창 1:27) 당신의 자녀를 기쁘시게 하시기 위해 하실 수 있는 최선을 다하셨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는 과정에서 좋았더라(창 1:4, 10, 12, 18, 21, 25, 31)고 일곱 번씩이나 반복하신 것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만드셨는지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창조를 다 끝내시고 나신 후 하나님께서도 안식하셨다는 것은, 부모가 자식의 출산 준비를 마치고 순산하였을 때 부모의 안도감과 같은 행복한 안식이었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능력을 닮은 고도의 지성적 존재였다. 깊은 사고를 가진 존재들인 만큼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에덴의 생활을 기뻐하고 만족해할까? 하나님께서도 저들을 만드시고 궁금해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이내 이 첫 사람과 아담과 하와가 서로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볼 때. 하나님께서도 행복해 하셨고, 하나님께서도 비로서 평안한 안식에 들어 가셨다. 악한부모 일지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려는 부모 마음은 모두가 한결 같다. 이런 부모 마음을 사람의 마음에 넣어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부모 마음을 아는 날,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날, 이것이 안식일의 시간 속의 의미에 담겨져 있다. 오늘 여러분들 모두 자녀의 행복을 기리는 이런 부모 마음을 아는 안식일이 되시고, 하나님과 함께 있음으로 느낄 수 있는 행복한 날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많은 사람이 제칠일을 ‘유대인의 안식일’이라고 부르지만, 성경은 안식일이 유대인들보다 앞서 존재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안식일의 기원은 창조 당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창 2:1~3은 하나님이 6일간의 창조 행위를 마치고 제칠일에 안식하면서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다고 선언한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서 안식일이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낸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축복을 입고 거룩하게 되었다. 즉 하나님은 시간 안에 세운 창조 기념물에 자신의 속성을 더하셨다.

출 20:8~11과 신 5:12~15에 있는 두 안식일 계명을 비교해 보라. 이 말씀들은 안식일이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두 계명의 가장 주목할 만한 차이점은 안식일 준수의 이유이다. 출애굽기는 창 2:3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면서 하나님이 안식일에 복을 주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반면 신 5:15은 안식일 준수의 이유로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키셨다는 사실을 지목한다. 많은 이가 신명기의 말씀을 근거로 안식일이 유대인들만을 위한 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태초에 하나님이 온 인류를 위해 안식일을 제정하셨다고 가리키는 출애굽기의 말씀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게다가 이집트로부터의 구원을 언급하는 신 5:15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받는 구원을 상징한다. 따라서 안식일은 창조뿐 아니라 구원의 상징이기도 하다. 성경에서 이 두 주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히 1:1~3, 골 1:13~20, 요 1:1~14). 예수님이 우리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또한 우리의 구속주가 되시며, 제칠일 안식일은 그분의 두 업적을 상징한다.

 

교훈 : 제칠일 안식일은 유대인들만을 위한 날이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한 날이며 그날은 예수님이 우리의 창조주이며 구속주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부가적용)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는 복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거룩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셨다는 그 본질적 의미를 알아야 한다.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였더라”(창 2:25)고 하신 말씀에서 보듯 처음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 그들의 피부 겉옷(욥 7:5)은 썩지 아니할 거룩한 옷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한 후 인간은 벗었음으로 두려워하는 모습(창 3:10)을 보게 되는데, 저들은 더 이상 신령하고 거룩한 영광의 옷을 입지 아니한 모습을 보였는데, 그들의 영원하고 거룩한 본질인 신령한 생명의 옷이 벗겨진 모습을 뜻함이다.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15:53)고 하신 것에서 거룩하다는 말은 본래 썩지 아니하고 죽지 아니할 생명에만 적용되어진 말이다. 그래서 본래 안식일은 거룩한 성도, 썩지 아니함을 입은 사람들, 썩지 아니할 존재, 영원한 생명을 가진 존재들만이 누리는 특권의 날이었다. 그래서 구원 받은 사람들을 우리는 성도라 부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복주시고 거룩하게 하셨다는 말씀은 죽지 아니하고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들로 일컬었던 말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영원한 생명, 영생을 가진 자들만이 누리는 축복의 날이다. 우리의 낮은 몸(빌 3:21)이 영광의 몸(빌 3:21)을 가지게 되어 지키는 구원의 날이 안식일인 것은 우리가 다 죽기를 무서워함으로 종살이 하던 자들이다. 그러나 재림을 기다리는 재림성도들은 썩지 아니할 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영생을 가진 성도, 즉 구별된 사람들이기에 구별되고 거룩한 안식일을 지키며 기다리는 사람들인 것이다.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성도들이 지키는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이다. 여러분과 저는 거룩하게 구별된 성도들 썩지 아니할 영생을 가진 자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어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요일 5:1)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썩지 아니하고 죽지 아니할 성도들만 향유할 수 있는 복되고 거룩한 안식일을 기억하시고 이 안식을 거룩하게 지키시기를 바란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는 바른 마음과 태도로 안식일을 지키고 있습니까?

분명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의 안식일 준수는 율법주의적으로 접근하는 유대인들의 안식일 준수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안식일이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인류에게 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안식일은 창조와 구원의 기념일이며 우리는 이날을 통해 하나님과의 친밀한 언약 관계를 다시 확인합니다. 이런 의미와 목적 때문에 우리는 이날을 성별하도록 요구하는 성경의 가르침을 합당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안식일을 율법주의적으로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하여 이날을 성별하려는 노력마저 중단한다면 안식일의 의미와 목적은 희석되기 쉬울 것입니다.

 

| 적용 |

그대는 어떤 마음과 태도로 안식일을 지키기 원합니까?

 

영감의 교훈

안식일이 거룩히 구별된 이유 - “넷째 계명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창조주로서 계시되었으며 그런 까닭에 다른 거짓 신들과 구별되신다. 그리고 제칠일이 인류의 안식일로 거룩히 구별된 것은 한편으로 창조 사업을 기념하는 동시에, 또한 인류의 마음에 살아계신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며 존경과 예배의 대상이 되신다는 것을 언제나 생각나게 하기 위함이었다”(각 시대의 대쟁투, 53).

 

기 도

창조 때부터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안식일을 제정하신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 소중한 날의 가치와 의미를 잊지 않고 성별하여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구원과 거룩함의 복을 온전하게 누릴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둘째날(월) 휴식과 예배의 날(눅 4:16)

4월 28일

 

“예수께서…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눅 4:16).

 

도입)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어 누리게 하신 구원 받은 자들이 향유하는 날이다. 이것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눅 4:16절 이후에 말씀하신 다음의 말씀을 보면 분명하다. 안식일은 종살이 하는 자들, 포로된 자들을 해방시켜 주신 날이다. “눅4: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눅4: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눅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눅4: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우리는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다고 말씀하시고 가난한 자, 곧 우리들을 의미한다. 우리는 실상 낮은 몸(빌 3:21)을 가진 썩어질 몸을 가진 탕자의 비유에 나타나는 거지와 같은 존재들이다. 그런 우리들에게 예수께서 복음을 전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눌린 자, 눈먼 자, 포로된 자에게 자유케 하시려고 오셨다고 하셨다. “고전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고전15: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고전15: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고 하셨는데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께서 살려주시는 영이 되신다. 우리는 다 육있는 자요 신령한 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신령한 자로 생명 있는 자로 영광의 몸을 주시기 위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골 1:16과 히 1:2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는 창조의 과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셨다. 이 말씀들은 만물이 그분을 통해 존재하게 되었다고 선언한다. 심지어 바울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창조하는 사역에도 관여하셨다고 설명하는데(골 1:16~17) 그 가운데는 당연히 안식일이 포함된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창조 과정의 중심에 계셨을지라도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신 뒤에는 아버지의 계명에 순종하셨다(요 15:10). 앞선 과에서 보았듯이 예수님은 어떤 전통들에 대해서는 반대하셨고 기회가 닿는 대로 하나님의 뜻에서 비롯되지 않은 종교 행위들을 교정하시고자 했다.

만약 그분에게 안식일 계명을 폐할 의도가 있었다면 그렇게 하실 기회는 많았다. 구약의 안식일 성경절 대부분은 안식일을 휴식의 날로 언급한다. ‘휴식’을 오늘날의 언어로 이해하여 어떤 이들은 안식일을 잠을 자거나 한가하게 보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우리는 안식일에 잠도 자고 휴식도 취한다. 그러나 휴식의 진정한 의미는 ‘중단’, ‘그침’, ‘정지’이다. 안식일은 6일간의 일상적인 노동을 중단하고 창조주와 특별한 시간을 보내는 날이다.

예수님 시대에 유대인들은 안식일마다 하나님께 대예배를 드렸다(눅 4:16 참고).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은 주중의 예배 순서와 다른 특별한 성전 예배에 참석하였다.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은 친교와 예배를 위한 공간으로 회당을 지었다. 안식일에 적어도 남자 열 명이 참석하는 곳이라면 대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아래의 성경절들은 초기 그리스도인의 안식일 준수에 대해 우리에게 어떤 정보를 제공하는가? 이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안식일이 일요일로 변경되었다고 주장하는 자들에 대하여 우리에게 어떤 사실을 말해 주는가? 행 13:14, 42, 44, 16:13, 17:2, 18:4, 히 4:9.

 

교훈 : 예수님은 사람으로 오셔서 안식일을 지키셨고,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뿐 아니라 초기 그리스도인들도 안식일을 휴식과 예배의 날로 준수하였다.

 

부가적용)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영생을 얻지 못하고 영광의 몸을 가지지 못하고 신령한 몸을 가지지 못하면 여전히 우리의 삶은 종살이와 같고 쉼이 없는 인생이 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얻은 자들에게만 진정한 안식이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종살이 하는 이 땅의 모든 백성들을 향하여 부르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하셨다. 진정한 안식, 진정한 쉼을 가진 자들은 영생을 가진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신령한 몸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실 수 있으신 예수님 안에 있을 때에만 진정한 쉼이 있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신 것처럼 우리의 죗된 몸, 낮은 몸, 이 몸에서 영광의 몸으로 신령한 몸으로 우리를 바꾸어 주시어야 진정한 안식이 시작되는 것이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시니라고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 자들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 아닌(요일 5:1) 자들에게는 영원한 안식은 없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는 안식일에 영적 쉼을 충분하게 누리고 있습니까?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유대교에 기원을 둔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약 성경이 지정한 날에 예배를 드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뒤 거의 20년 후에도 바울은 여전히 안식일에 회당에 출석하는 “관례”를 따랐다(행 17:2).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 대신 일요일을 준수했다는 증거는 성경에 없다.

 

| 적용 |

안식일이 진정한 영적 휴식이 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영감의 교훈

영원한 안식일 - “안식일은 인류가 타락하기 이전에 에덴동산에서 시작되었으며 아담과 하와가 지켰고 온 하늘의 천군들도 역시 이날을 지켰다.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날에 쉬셨으며 그날을 축복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나는 안식일이 절대로 폐지되지 않을 것을 보았다. 구원받은 성도들과 모든 하늘의 천군들은 크신 창조주를 기념하는 날로서 안식일을 영원무궁토록 지킬 것이다”(초기문집, 217).

 

기 도

생계를 위해,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발길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덧없고 허무한 세상 속에서 아버지와의 관계의 끈을 붙잡고 잃어버린 의미와 목적을 찾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셋째날(화) 기쁨의 날(막 2:27~28)

4월 29일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 2:27~28).

 

도입)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안식일을 만드시고 참된 안식을 경험하게 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이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 심령에 없는 사람은 안식이 없다. 왜냐하면 이 안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요일5:1)라 하였다. 예수께서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는 것이 무슨 뜻인가?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후4:4) 예수 그리스도 곧 그분이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처럼 썩지 아니할 존재, 신령한 존재로 창조되었던 존재였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들, 곧 저들이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다. 첫 아담에게서 난 자들은 곧 자기 형상, 곧 아담의 형상대로 썩어질 자녀들을 낳았다.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아담이 일백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창5:1-3)에서 보듯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썩지 아니할 존재, 신령한 존재로 남자와 여자를 지으셨으나 아담은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 일백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는데 이곳에 보면 아담의 후손들이 모두 몇 900여세를 살다가 결국은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궁극적으로 생명이 없다는 것,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2)고 말씀하신다. 예수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과 관계가 없는 자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마음에 없는 자들은 생명이 없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들은 곧 안식, 곧 생명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시며 안식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안식일을 지킨다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이 안식일 준수가 무엇을 포함하는지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 시대의 일부 바리새인들이 그랬듯이 오늘날의 사람들도 안식일을 규칙과 규율이라는 엄격한 벽 안에 가둔다. (반면 어떤 이들은 안식일을 다른 날과 다를 바 없는 날처럼 보낸다.) 안식일은 짐이라기보다 즐거운 경험이 되어야 하며, 그러면서도 여전히 거룩하게 지켜야 할 날이어야 한다.

예수님이 지상에 계셨을 때, 일부 종교 지도자들은 안식일 계명에 39개의 계명을 덧붙였다. 백성들이 39가지 법을 지킨다면 안식일을 완벽하게 지키리라는 논리였다.

이렇게 긍정적인 의도로 법을 만들었지만 그 결과 기쁨의 날이 되어야 할 안식일은 많은 이에게 하나의 멍에가 되었다.

막 2:23~28을 읽어 보라. 제자들은 왜 곡식을 뽑았는가?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도 제자들의 행동에 가담하셨는가? 만약 제자들이 성경의 율법을 어겼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어느 안식일, 예수님과 제자들이 밭을 질러 걷고 있을 때였다. 배고픈 제자들은 곡식을 뽑아 허기를 채우기로 결심했다. 그 밭은 그들의 것이 아니었지만,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에 타작과 추수를 금지하는 율법에 대한 위반으로 해석하지 않는다면 그 같은 행위는 모세의 법에 의해 허용되었다(신 23:25, 출 34:21 참고). 예수님은 곡식을 먹지 않았지만 제자들의 행위를 방어하셨다. 예수님은 다윗과 그의 부하들도 배고팠을 때에 ‘금지된’ 성소의 떡을 먹었던 사실을 바리새인들에게 상기시키셨다.

막 2:27~28에서 예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말해, 안식일은 경배를 드릴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날이지 그날이 경배를 받기 위해 제정된 것이 아니다.

 

교훈 : 안식일은 부담을 가지고 규칙을 지키는 날이라기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기쁨과 자유를 경험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부가적용)

예수가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는 자들이다. 예수가 없는 자들은 또한 안식이 없는 자들이다. 에덴동산에 생명과와 선악과를 두신 가장 중요한 의미는 그리스도 곧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이 아닌 것, 곧 선악과를 택한 아담과 하와에게 생명이 거두어진 것은 생명과 안식은 곧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증명하는 매우 중요한 징표이다. 생명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할 때 인생에게 안식과 기쁨이 시작이 된다. 주님이 없이는 인생에겐 쉼과 아무런 기쁨은 시작이 될 수가 없다. 기쁨을 누린다 할지라도 그것은 영원하지 않은 기쁨일 뿐이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3-4)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고 그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안식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생의 참된 안식이 되신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가 안식일에 누리기를 원하는 자유와 기쁨은 어떤 종류입니까?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안식일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선물이다. 그날은 억압이 아닌 자유와 해방을 주는 날로 이해해야 한다. 안식일은 진실로 그리스도 안에서 쉼과 자유를 경험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 적용 |

그대가 평일에는 하기 어렵지만 안식일에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영감의 교훈

안식일의 목적 -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 그분의 요구는 합리적이며 당신의 품성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에 일치된다. 안식일의 목적은 모든 인류에게 유익을 주기 위함이다. 사람이 안식일에 맞추어지도록 창조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안식일이 사람의 창조 후에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제정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 세상을 만드신 후 안식하셨으며, 창조하시고 만드시던 모든 작업으로부터 안식하신 그날을 거룩하게 하시고 축복하셨다”(교회증언 2권, 582).

 

기도

안식일을 지기 어려운 짐과 멍에로 오해하도록 조장하는 사탄의 저주를 극복하고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축복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하옵소서. 그 안에 있는 진정한 자유와 해방, 기쁨을 온전하게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넷째날(수) 치유의 날(눅 13:16)

4월 30일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눅 13:16).

 

도입)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 곧 천국복음의 내용이 무엇인가?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딤후 1:10)이다. 예수께서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은 사망을 폐하시는 것 곧 복음으로써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시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난 이후 참된 안식을 잃어버렸다. 사망을 통해 인간은 진정한 안식이 사라지게 되었다. 18년 동안을 사탄에게 매인 바 되어 안식을 잃어버린 딸에게 안식일에 의도적으로 이적을 행하시는 주님의 목적은 안식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시작되는 복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복주시고 거룩하게 하신 목적은 참된 생명, 썩지 아니할 생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어지는 축복임을 선포하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사람을 건강하고 온전하게 하는 이 기적들을 의도적으로 안식일에 행하심으로 우리의 생명의 주인, 곧 참된 안식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보여주신 사건들인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그분은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았”다고 선언하셨다(창 1:31). 아마도 세상은 모든 면에서 완전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죄가 출현하자 세상은 악에 의하여 타락하였고 그 영향이 모든 곳에 나타났으니,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이 질병과 퇴화와 사망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이다.

우리는 종종 죽음을 삶의 일부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죽음은 삶의 일부가 아니라 삶의 정반대이다. 우리는 절대 죽음을 경험하지 말아야 했다.

원래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안식일을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행하신 가장 극적인 치유의 기적이 안식일에 일어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막 3:1~6, 눅 13:10~17, 요 5:1~9, 9:1~14에서 안식일에 일어난 치유의 이야기를 읽어 보라. 이 기적들은 안식일의 진정한 목적에 대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가르치는가?

안식일에 일어난 모든 치유의 기적은 극적일 뿐 아니라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밝히는 역할을 한다. 막 3:1~6에서 예수님은 손 마른 남자를 치료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수사적인 질문을 던지셨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막 3:4). 만약 해방의 날에 누군가에게 고통을 떨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사실 꼬부라진 여인에게 일어난 기적은 해방이라는 안식일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증명한다(눅 13:10~17). 예수님은 치유에 대하여 비난을 받자 이렇게 질문하셨다.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눅 13:16).

 

교훈 : 안식일은 원래 하나님이 인간의 유익을 위해 주신 날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를 질병의 고통에서 해방시키시기에도 적합한 날이었다.

 

부가적용)

인간의 모든 고통과 질병과 괴로움은 안식의 주인이신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떠났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이 땅에 오셔서 사망을 폐하시고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딤후 1:10)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진정한 안식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고 그분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안식일은 인간에게 주신 최상의 축복이며 복의 날이며 인생이 거룩함을 누리게 되는 축복된 날이다. 이는 매우 특별한 날이며 매우 감사해야 할 예배의 날이기도 하다.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경배하며 우리 모든 인생들에게 주신 영원한 생명을 인해 감사들 드려야 할 날이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하나님은 안식일에 그대를 위해 쉬지 않고 어떤 ‘일’을 하실까요?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해방의 주제는 38년 동안 병을 앓았던 베데스다 연못가의 남자와 선천적인 맹인으로 태어난 남자를 고쳐주셨던 이야기에도 나타난다(요 5:1~9, 9:1~14). 치유의 기적을 행함으로 예수님이 안식일을 범했다는 바리새인들의 주장을 듣고 그분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는 사실을 상기시키셨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안식일에 치유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불행을 가볍게 하는 일이라면 하나님은 쉬지 않으신다.

| 적용 |

그대가 안식일에 할 수 있는 ‘일’이란 어떤 종류입니까?

 

영감의 교훈

안식일의 구호 봉사 - “넷째 계명에 의하여, 안식일은 휴식과 종교적 예배에 바쳐져 있다. 세속적인 모든 일은 중지되어야 하지만, 자비와 자선의 일은 주님의 목적과 일치한다. 그런 일들은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되어서는 안 된다. 괴로워하는 자를 구제해 주고, 슬퍼하는 자를 위로해 주는 것은 하나님의 성일을 존중히 하는 사랑의 활동이다”(구호봉사, 76).

 

기도

아버지, 이 해방의 날, 저를 억누르는 모든 질병과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신 멈추지 않는 그 손길을 얹으셔서 저도 이 매임에서 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다섯째날(목) 새로운 세상

5월 1일

 

도입)

최초의 안식일을 주신 하나님의 뜻은 복을 주시고 거룩하게 하신 목적이었으나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이 복과 거룩함이 훼손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안식의 주인이시오 생명의 주인이심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당신께서 친히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공포하시고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자들에게 다시금 새로운 생명과 영생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시고 참된 안식이 예수께 있음을 공포하시며 자신에게로 인류에게 초청의 기별을 보내셨다. 바로 예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들어 주실 우리의 창조주이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만이 우리에게 새 하늘에서 보여주실 영원한 안식의 주인이시며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실 우리의 구주이시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 능력을 상기시킬 뿐 아니라 세상을 회복하시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가리킨다. 안식일에 일어난 치유의 사건들로 인해 영원한 회복을 보증하는 약속은 효과적으로 강화되었다. 안식일은 자체의 독특한 방식으로 지구 초기의 역사로부터 인류 최후의 운명에 이르는 관점을 제공한다. 다시 말하지만 안식일은 창조와 구속을 모두 가리킨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이미 한 번 창조하셨다. 그러나 죄로 인해 세계는 오염되었다. 하지만 이 오염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구원의 계획에 있어서 핵심 요소는 회복이다. 이 회복은 단지 지구뿐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던 그리고 그 형상으로 거듭나서 새 땅에 거주하게 될 백성들도 포함한다. 처음 지구를 만드시고, 제칠일마다 우리의 송축을 받으시는 하나님이 지구를 재창조하실 것이다. 창조를 기억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면 우리가 일주일에 한 번 특별한 방식으로 그날을 지키도록 명령을 받았을지 생각해 보라.

다음의 성경절들을 읽어 보라. 각각의 말씀은 안식일의 의미와 관련하여 어떤 기별을 전하고 있는가?

사 65:17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이전 것은 생각나지 아니할 것”

사 66:22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벧후 3:9~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계 21:1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고후 5:17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갈 6:15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계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교훈 : 죄로 오염된 세상은 재창조될 것이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것이

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첫 번째 창조와 재창조의 약속을 기억하게 한다.

 

부가적용)

안식일은 창조주가 계심에 대한 표시다. 안식일은 창조주가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안식, 곧 쉼은 우리 하나님, 곧 예수님이 없이는 누릴 수 없는 복이다. 이 땅에 곧 안식의 주인이신 그분을 모시게 될 때 모든 인생은 참된 안식에 들어가게 된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실 때, 인생은 참된 안식일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없는 안식은 모두가 헛된 안식의 포장일 뿐이다. 영원하지 못한 일시적 평안과 안식에 속지말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으신 분이시오, 영원한 안식을 주실 수 있으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재 창조하여 우리에게 다시 안식을 돌려주실 우리의 영원하신 구주이심을 잊지 말자.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는 안식일에 어떤 의미에서 세상의 재창조를 기다립니까?

안식일은 태곳적 세계의 완전했던 조화와 인류에게 허락된 최상의 행복을 상기시킵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상적인 세상을 꿈꾸게 하십니다. 그래서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그리고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는 “은혜의 해”(눅 4:8)를 마음속에 그리고,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계 21:4) 않은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 적용 |

우리가 안식일을 통해 재창조의 소망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영감의 교훈

그리스도의 능력의 표징 - “안식일은 하늘과 땅과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붙드시는 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것과 그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는 것을 선언한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능력의 표징이다. 그리고 안식일은 그리스도께서 거룩하게 하시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다. 안식일은 그리스도의 성결하게 하시는 능력의 표징으로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속한 이스라엘의 일원이 되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시대의 소망, 288~289).

 

기 도

예수님, 십자가에서 저의 옛 자아가 죽고 부활을 따라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속사람이 새로워질 때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도 더 커져갑니다. 새로운 세상의 주님을 찬양할 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여섯째날(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5월 2일

 

“하늘에서 대쟁투가 시작된 시초부터 하나님의 율법을 전복하는 것이 사탄의 목적이었다. 사탄은 이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창조주를 반역하였다. 그는 하늘에서 쫓겨났지만 이 세상에서 여전히 동일한 그 싸움을 계속해 오고 있다. 인류를 기만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게 하는 것이 그가 꾸준히 추구해 오는 목적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모두 버리든지 아니면 일부분을 버리든지 그 목적이 성취되므로 궁극적인 결과는 같다. 율법의 한 조목을 범하는 자는 온 율법에 대한 경멸을 나타낸다. 그의 감화와 행동은 범죄의 편에 있으며 그는 결국 율법을 ‘모두 범한 자’(약 2:10)가 된다”(각 시대의 대쟁투, 58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위에 있는 엘렌 G. 화잇의 글은 이번 기 교과의 서론에서 언급했던 내용을 더욱 완전하게 설명합니다. 안식일의 중요성과 기독교 내에서 안식일을 둘러싸고 일어난 일들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사탄의 공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➋ 예수님은 여러 차례 안식일을 범한다는 고소를 당하셨습니다(막 3:2, 눅 13:14, 요 5:18, 9:16). 출 20:8~11을 읽고 이런 고소의 가치를 평가해 보십시오. 위의 말씀들이 예수께서 안식일을 범한 증거라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➌ 세속적인 의무를 이행하다보니 평일에는 어렵지만 안식일에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는지 토의해 봅시다.

 

➍ 각자 안식일을 어떻게 지키고 있는지 점검해 봅시다. 안식일은 우리에게 자유와 휴식과 해방의 날입니까? 아니면 우울하고 얽매이는 느낌이 들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날입니까? 어떻게 하면 다음의 말씀처럼 안식일을 기쁘고 즐겁게 보낼 수 있을까요?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사 5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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