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과 사도들과 율법(토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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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사도들과 율법
사도 시대에 생존했던 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직접 들은 자들이다. 그들은 왜 안식일 지켰을까? 라는 논증은 시대적 교회의 마지막 시대인 라오디게아 교회에도 같은 기별로 적용된다. 사도들은라오디게아교회시대에 태어나도 안식일을 지켰을 것이다.
마음은 이완과 타성이라는 타기의 관습이 아니라
그러한 타기의 관습조차 다 걸러 낸 다음
생체 그 자체로 응집된 진실이다.
초월을 꿈꾸는 자는 초월을 버리고
마음은 일상성 즉 생활주변을 맴도는 것을 말한다.
마음이 간직하고 있는 사랑이라는 성서적 개념이 안식일임으로
안식일로 파악되는 마음의 정서는
곧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행위를 말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경험의 모습은
객관적인 질서의 세계 혹은 우주의 모습과는 다른 개념의 모습이다.
등질적인 시공간 안에서
숨 막히는 세계를 벗어난 구체적인것,
즉 보기도하고 생각도하는
그리고 경험하기도하는 세계 곧 마음의 세계이다.
가설과 선입관을 지워버리고
순수한 경험자체를 승인하는 방법이다.
심비라 함은 우리를 전 생활이
실제로 그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바의 직관되고 경험되고
경험 될 수 있는 세계라 규정할 수 있다.
더 연역하면 그 세계는 지각 가능성과
인간적인 관심을 전제로 하고 있은 세계이다.
태양은 아침을 앞세워 동에서 뜨고 그와 함께 따듯해진다.
그것은 엄밀한 수학적인 인과성에 바탕을 둔
천동설 지동설을 말하는 객관세계와 다르다.
메를로-퐁티는 자연적 태도에 대하여
다른 여러 태도와 나란히 서는 태도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모든 태도와 입장을 선행하는 근원적 태도이다.
모든 인식은 선행하는 세계의 개시(開示)이다.
이러한 자연적 타도는
<세계가 먼저 있고 그 안에 인간이 있다는 근대인식론의 주체>가
바로 생각위에 운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도식은 의식적으로 제지하여
의식의 순수한 표상을 잡는 소위 현상학적 환원이다.
많은 사람들은 일상성에서 자기를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데
그 안에서 눈을 뜨는 상태를 믿음이라고 말한다.
형이하학적 우주의 중심은 핵이며
이 핵은 생명의 씨를 품고있어
핵분열을 통해 생명을 연장시킨다.
마찬가지로 형이상학적으로 우주의 중심점은 안식일이고
안식일 안에 생명이 있어
7일이라는 마디를 통해 영원을 향해 생명을 연장시킨다.
영생은 두 가지 요인이 공존할 때 가능하다.
안식일과 생명과(生命果)이다.
이 두 요소는 절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영원을 존속시킨다.
안식일을 범하는 죄를 지으면
생명과가 있는 곳에서 추방당함으로 생명과를 먹을 수 없다.
생명과는 공간적이고 안식일은 시간적이다.
그러므로 영생으로 이끄는 시공간의 함수관계는
안식일 준수와 비례한다.
사도 시대에 생존했던 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직접 들은 자들이다.
그들은 왜 안식일 지켰을까? 라는 논증은
시대적 교회의 마지막 시대인 라오디게아 교회에도 같은 기별로 적용된다.
사도들은 라오디게아교회시대에 태어나도 안식일을 지켰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의 중심은 선악과와 안식일이다.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은 그 속에 핵이 있다.
중대한 요인은 암세포에도 핵이 있지만
이 핵은 암세포를 전위시켜 처참하고 살인적인 세포가 되어 사람을 주검으로 몰아붙인다.
더 나아가 핵은 인간의 두뇌에 악용되어 핵무기로 돌변한다.
안식일도 마찬가지다.
안티안식일은 암적 안식일이 되어
인류로 멸망으로 이끈다.
정상적인 세포와 암세포의 모양이 같은 것과 같이
하나님의 안식일과 적그리스도의 안식일이 모양세가 같다는데 있다.
저녁이면 해가 지고 아침이면 해가 뜨는 모양세가 같은 하루이다.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하리>라는 안일한 생각이
암세포처럼 인류를 멸망으로 이끈다.
이 기별이 세천사의 기별의 핵심이다.
창조주를 기억하라 너희가 만일 바벨론에 속해버린다면
섞인 것이 없는 포도주처럼
섞인 것이 없는 진노의 잔에 멸망할 것이다
시; 케세라세라(Que Sera Sera)
강위덕
캐스터 네츠로 엉덩이를 흔들어 보아요
춤을 추듯,
스스로의 허무
무너지는 스스로를 가누고 있는
삭막한 바람의 모습으로
케세라세라(Que Sera Sera)
케세라세라(Que Sera Sera)
캐스터 네츠로 엉덩이를 흔들어 보아요
춤을 추듯,
주검이 이르기 전
그때까지만
시 해설
인생이 앉아있는 혼자라는 이름의 의자가 있다.
딱딱한 의자만큼이나 인생은 굳어간다.
누구에게 슬픔을 이야기하나.
안에서 고독이라는 벌레가 기침을 마구 해댄다.
밟으며 지나온 하얀 서리에 대해 생각한다.
이력(履歷)
이(履)는 구두 혹은 밟다라는 뜻이다.
력(歷)은 지나가다라는 뜻이다.
인생의 이력서를 써내려갈수록
인생의 발목을 감고 피어오르는 안개와,
밟고 지나온 길의 하얀 서리를 생각한다.
밟으면 밟히고 뒤돌아보면 사라져버리는 것,
화장을 진하게 하는 여자의 마음에 외로움이 있다는 말과 같이
인생의 고독이 심한사람일수록 춤을 춘다.
케세라세라를 외친다.
갈때까지 가보자하면서 주검을 제촉한다. 일상화를 외면하는 자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눈을 뜨는 상태를 믿음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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