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과 귀에서 발까지(교사를 위한 강해와 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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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귀에서 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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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0일 안식일
일몰:오후 5시 32분
기억절 : “네 발이 행할 길을 평탄하게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잠 4:26).
도입)
잠언에는 ‘아들아’라고 부르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를 교훈하듯, 하나님의 자녀들을 교훈하는 책이 바로 잠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을 ‘아들아’라고 부르시며 말씀하십니다.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잠 4:20)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삶에서 옳은 길에서 떠나지 않으려면 바라보는 목표가 옳은 것이어야 합니다. 정확한 선한 목적이 있어야 바른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성경 전반에 걸쳐 그 목적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사랑의 관계, 믿음의 관계, 순종의 관계, 연합의 관계를 유지해야 선한 길로 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라"(잠 4:25). 결론적으로 마음을 지키는 비결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표가 뚜렷한 상태로 인생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인생의 길을 가는 중에 특히 눈과 귀, 사람과의 교제를 대단히 주의하여 다른 길로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연구 범위 : 잠 4장, 왕상 3:9, 마 13:44, 잠 5장, 고전 10:13, 잠 6:1~19.
청각은 우리의 걸음걸이에 영향을 미친다. 심지어 몸의 균형은 우리가 얼마나 잘 듣느냐에 따라 좌우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규명되었다. 마찬가지로 훈계 또는 교육, 즉 우리가 들어야 할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잠 4:7은 “지혜가 제일이”라고 말했다.
학생은 좋든지 싫든지 훈계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한 고대 이집트의 교사는 다소 역설적인 의미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소년의 귀는 등에 있다. 그래서 맞아야 듣는다.” (고대 이집트 예술 속에서 학생들은 종종 등에 큰 귀를 가진 모습으로 묘사된다.)
옳고 그름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옳은 것 또는 그르지 않은 것을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 지혜로 단련을 받기 위해 우리는 합당한 훈계를 듣고 따르며 순종해야 한다. 그래야 잘못된 방향으로 행하지 않게 된다.
*기억절 낭독·노래 MP3를 이용하면 기억절을 더욱 잘 외울 수 있습니다. (안교·선교 홈페이지 안교자료실)
안교 활동반과 교과 토의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잠언에서 묘사하고 있는 지혜가 “하나님의 지혜”(고전 1:24)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음을 깨닫는다.
➋ 느끼기 : 하나님의 현명한 훈계를 무시함으로 얻을 고통과 어리석은 행동이 가져올 상처를 감지한다.
➌ 행하기 : 우리의 우둔한 심령에 유일한 해결책이신 그리스도를 찾는다.
Part 1. 인사 안교 반장 또는 소그룹 리더
서로 인사를 나누고 손님을 환영해 줍니다.
출석과 공부를 확인하고 안교헌금을 걷습니다.
결석자와 구도자에 대한 보고를 듣고 방문 계획을 세웁니다.
Part 2. 나눔 안교 교사 또는 소그룹 리더(A나 B 중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A. ❶ 자주 들어도 고마운 잔소리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❷ 경청의 자세는 지혜를 얻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❸ 하나님의 교훈을 경청하지 않고 자신의 지혜에 의지하는 사람은 자신과 가정, 우정과 일터를 지키는 일에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❹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위한 각자의 노력이나 결심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B. ❶ ‘그때 거절하기를 잘 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면 이야기해 보십시오.
❷ 우리가 자신과 가정, 우정과 일터를 지키기 위해 거부해야 하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❸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는 사람이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❹ 우리가 유혹이나 악한 생각을 피해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론 :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소망을 주셔야 우리는 지혜롭게 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멋대로 살 때 우리는 줄곧 어리석음에 말려들기 때문입니다.
Part 3. 실천 안교 반장 또는 소그룹(예비) 리더
❶ 안교반의 활동 목표(1기 친교, 2기 초청, 3기 추수, 4기 번식)를 안내합니다.
❷ 장기적으로 매 기마다 어떤 활동에 중점을 둘 지 의견을 나눕니다.
❸ 단기적으로 안교반 단합을 위해 무엇을 할지 의견을 나눕니다.
첫째날(일) 1월 4일 들으라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내 입의 말을 잊지 말며 어기지 말라”(잠 4:5).
교사강해 1)
잠 4:20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성경말씀을 듣고, 설교를 듣고, 좋은 대화를 하며 소리 내어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계속 소리를 통해 긍정적인 입력을 함으로써 왜곡되고 부정적인 사고들이 고쳐지는 것입니다. 언어가 사고 체계를 지배합니다.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언어를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쓰는 말에서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자고 권하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우리 믿는 사람들은 긍정적인 언어가 아닌 믿음의 언어를 매사에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언어를 사용하는 교육이 중요합니다. 교육은 반복, 지속훈련을 시킴으로써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다. 그러나 사람을 바꾸는 것은 교육이다.”라고 말했지만 인간의 교육으로도 인간을 완전히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임재는 우리의 생각과 정서를 바꾸고 우리의 삶의 모습을 통째로 바꾸어줍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려면 그분의 은혜 아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잠언 4장을 읽어 보라. 어떤 실질적인 진리가 여기에 있는가? 하나님께 충실한 삶을 살기 바란다면 어떻게 이것을 우리의 삶에 적용해야 하는가?
‘경청’은 교육의 첫 단계이다. 히브리인들의 사고방식에서 지혜와 지성의 위치는 두뇌에 있지 않고 귀에 있다. 이는 우리가 어떤 문제를 개념화시키거나 해결하기 전에 먼저 그것을 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듣는 것이 중요하다. 솔로몬이 지혜를 구할 때 그는 구체적으로 “듣는 마음”을 주시도록 간청했다(왕상 3:9).
그러므로 지혜의 첫 행위도 듣는 것이다. 이는 지혜가 외적인 근원(이 경우에는 부모)으로부터 비롯됨을 암시한다. 우리는 스스로 지혜를 발견할 수 없다. 자수성가한 인생이란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의 영역에서는 불가능한 개념이다. 지혜란 받아야 하는 어떤 것이지 자신의 재능으로 형성할 수 있는 것도, 우리의 탁월성과 사고 능력을 통해 발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경청’(히브리어로 ‘마음을 기울임’)할 수 있는 능력은 심적인 몰두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지혜를 탐색하는 일은 단순히 냉정하고 객관적인 작업이 아니다. 각 사람의 중심이자 (히브리인들의 사고방식 에 따르면) 감정의 자리인 마음은 지혜를 탐색하는 일에 가담한다.
마 13:44과 렘 29:13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과 잠언 4장에서 설명하는 지혜에 대한 탐색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 13:44).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3).
교훈 : 우리는 스스로 지혜로워질 수 없다. 믿음이 들음에서 나는 것처럼 우리는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함으로 지혜를 얻어야 한다.
부가적용)
잠언 4장은 우리에게 자신의 인생행로를 주의 깊게 살펴보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잠언 4장의 구절들은 의인의 자유롭고 거침없는 길과, 악인의 어둡고 혼돈스러운 길(19절)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4절).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23절). “네 발의 행할 첩경을 평탄케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26절). 각 구절은 우리의 삶에서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평가해 보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47세 된 어떤 오스트리아인은 자신의 재산과 사치스런 낭비가 자신에게 참된 인생과 행복을 누리게 하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린 후 그의 전 재산인 4백7십만 달러를 기부금으로 내놓았습니다. 칼 래비더는 런던의 「데일리 텔레그래프」 신문에 “내가 원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위해 노예처럼 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최고급’의 삶이란 것이 얼마나 무섭고, 정신없고, 그리고 감정이 메마른 것인지를 깨달았을 때, 그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충격이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그의 돈은 중남미 사람들을 돕기 위해 그가 지정한 자선사업의 재원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한 사람들의 모습에는 이런 변화가 있습니다. 천국을 발견한 사람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의 ‘듣는 마음’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습니까?
같은 설교를 들어도 은혜를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각자의 영적 필요가 다르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설교를 해도 같은 현상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듣는 마음’의 차이 때문입니다. 예배에는 성실하게 참여하지만 설교에 감동을 받지 못했던 어떤 신자가 성경 말씀을 묵상하거나 암송한 후부터 설교를 통해 은혜를 받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지혜를 구하기 앞서 ‘듣는 마음’을 주시도록 기도하는 것이 옳습니다.
| 적용 |
그대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듣고 실천한 결과 - “생명의 말씀을 연구함으로써 학도들은 넓고, 고상하고, 숭고한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만일 그들이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되면 그들 역시 다니엘처럼 모든 분야의 학문에서 발전하게 될 것이다. 마음이 순결해지므로 그들은 강한 마음의 소유자가 될 것이다. 모든 지적 능력이 일깨워질 것이다”(치료봉사, 466).
기도
아버지, 은혜 받지 못하는 이 병든 마음을 고쳐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생명력을 느끼며 그 안에 담긴 사랑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읽고 듣는 모든 말씀 속에서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주시는 음성을 깨달을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둘째날(월) 1월 5일 가족을 지키라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잠 5:18).
교사강해 2)
솔로몬은 젊어서 정략결혼으로 인해, 수많은 이방 공주들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에게 만족과 참 사랑을 주지 못했습니다. 솔로몬이 전도서에서 노래했듯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헛되듯이 많은 아내들도 그랬습니다. 이러한 솔로몬에게 뒤늦게 참 사랑을 알게 하고, 참사랑을 나누게 된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그가 바로 술람미 여인입니다. 이 여인은 정략결혼으로 만난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만난, 자연 미인이었습니다.(햇빛 아래서 양 떼를 지키고, 포도원에서 일하다가 보니 피부가 검게 그을린 아가씨!)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으로 인해 참 사랑을 알고 나눈 경험을 토대로 그 자녀들 내외에게 오늘 본문과 같은 귀한 교훈을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귀한 교훈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합당한 대가지불을 하고 나서야 깨닫습니다. 이제 솔로몬이 가르치는 행복한 부부관계에 대하여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먼저 15-16절입니다.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우물과 샘은 같은 의미입니다. 한 남편의 한 아내를 일컫습니다. 아내를 우물과 샘물로 비유하여 한 남편이 한 아내에게만 정성을 쏟고, 또 만족을 얻으며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지혜자의 교훈입니다.
우리가 지혜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어도 우리는 여전히 매우 주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 길에서 장애물을 만나기 때문이다(벧전 5:8 참고). 우리가 마주할 가장 큰 위험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민감하며 내적인 영역인 가정에 관한 것이다.
잠언 5장을 읽어 보라. 우리는 어떤 위험들을 경계해야 하는가?
첫째 위험은 우리 자신에게서 시작된다. 그것은 우리의 언어 속에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말이 부적합하거나 혼란스러운 의사를 전달하지 않도록 혀를 단속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입술은 우리의 지식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우리의 영적 관점을 반영해야 한다.
둘째 위험은 가정에 끼어드는 다른 남자 또는 다른 여자에게서 비롯된다. (비록 본문은 그 위험이 ‘낯선 여자’에게서 온다고 언급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 말을 포괄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유혹은 남자나 여자 모두에게서 올 수 있다.) 그들은 한 배우자로 하여금 결혼 서약을 깨도록 유혹할 수 있다. 이런 죄가 얼마나 파괴적인지 경험하거나 목격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본문에 따르면 대개 달콤한 말로 시작되는 이런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지혜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이다. 영감적인 훈계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에 순종함으로 우리는 더욱 본질적인 것에 집중할 수 있고 그럼으로 간음과 다른 어떤 유혹에 대해서도 자신을 방어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간음하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음녀”가 머무는 곳을 피하고(잠 5:10), 그녀의 문에 접근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잠 5:8).
교훈 : 가정을 파괴하는 유혹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의 말씀을 경청하며 자기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이다.
부가적용)
먹을 양식이 없어서 도둑질을 한 사람은 사람들이 멸시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먹을 것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도둑질을 했기 때문입니다. (예) 장발장. 그러나 그가 할 수 없이 도둑질을 했다 해도 그가 들키면 책임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도둑질을 한 사람은 들키면 도둑질 한 것의 7배를 갚아야하기 때문에 그가 가진 전 재산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유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도둑질 한 사람보다 더 큰 형벌을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아내를 두고 남의 아내를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유부녀와 간음한 자는 그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그녀의 남편은 질투로 인해 크게 분노하게 되고 무자비한 보복을 받게 됩니다." 이 경우 그 남편은 질투로 인해 크게 분노했기 때문에 어떠한 벌금이나 대가로도 그 보복을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솔로몬은 "유부녀와 간음하는 자"에게 그가 결국에는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하고, 큰 상처를 입으며, 수치와 모욕을 씻을 길이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유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도둑질하는 자보다도 더 사악한 죄를 범하는 것이며, 또한 도둑질을 한 사람보다도 더 미련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나눌 수 있는 것이 있고, 나눌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이나 물품은 얼마든지 나눌 수 있고, 할 수 있는 대로 나누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정신이고, 성경의 정신입니다. 하지만 결단코 나누어서도 나눌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부관계입니다. 성경은 부부 외의 모든 성관계를 엄격하게 금하는데, 지혜자 솔로몬도 분명하게 선을 긋습니다. 부부관계는 부부사이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들은 이 선을 넘어서려고 합니다.(외도, 뿐만 아니라 혼음 또는 동성애까지 확대되고...) 물론 이 역사는 현대만이 아니라 과거 오래 전에도 있었습니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말씀으로부터 멀어질 때 자신이 얼마나 유혹에 취약하게 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마지막으로 다른 남자나 여자를 사랑할 모든 위험에 대처할 최선의 방책은 사실 “네가 젊어서 취한”(잠 5:18) 자기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이다. 전도서의 기자는 다음과 같은 조언을 되뇐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전 9:9). 가지고 있는 것을 감사히 여기면 다른 곳을 쳐다보지 않게 된다.
| 적용 |
고전 10:13을 읽어 보십시오. 여기서 말하는 시험과 다른 유혹에 노출되지 않으려면 그대에게 어떤 대책이 있어야 할까요?
영감의 교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정 - “아내는 자기 남편을 존경해야 한다. 남편은 자기 아내를 사랑하고 소중히 해야 한다. 그들의 결혼 서약이 그들을 하나로 결합시킨 것처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주 안에서 그들을 하나 되게 해야 한다. 결혼 관계에 들어가는 이들이 함께 예수를 배우고자 힘쓰며 더욱 더 그리스도의 정신에 물들게 되는 일보다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일까?”(그늘 없는 가정, 114).
기도
아버지께서 저의 영적 성장을 위해 허락하시는 시험이 아닌 스스로 절제하지 못해 생긴 유혹에 흔들리는 저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말씀으로 제 마음이 무장되어서 이미 주어진 행복의 울타리를 잘 지키고 간수하는 지혜를 알게 해 주시옵소서.
셋째날(화) 1월 6일 우정을 지키라
“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잠 6:1~2).
교사강해 3)
이웃을 위하여 보증을 서는 일들이 특히 정치 경제적으로 황금기를 구가하던 솔로몬 당시에는 이런 일이 보편적으로 행해졌습니다. 그러나 경솔하고 성급한 담보 행위는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채무자가 사고로 인해 채무를 갚을 능력이 없거나, 고의로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에 담보를 제공한 사람은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빛을 갚기 위해서 몸을 팔아 남의 종이 되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당시에 큰 사회적인 문제의 요인이 되었습니다. 담보나 보증이 오늘날에도 얼마나 많은 경우에 한 가정을 파탄 나게 하고 가정을 심각한 어려움에 처하게 하는지 오늘날에도 담보와 보증으로 인한 어려움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로마서 13장 8절에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했습니다. 사랑은 많이 주는 것도 좋고 많이 받는 것도 좋습니다. 사랑의 빚은 많이 질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보증이나 담보를 부탁하여 어찌 내 유익을 위해 상대를 염려하게 하고 괴롭게 하며 망하게 만드는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교회에서도 성도 간에 보증을 서거나 돈을 빌리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이기에 사단이 역사하니 될 일도 더 안 풀려 망하기 쉽습니다. 교회는 사업이나 세상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예배드리며 하나님과 교통하기 위해서 오는 곳입니다. 주 안에서 형제끼리 영적인 교제를 해야지 육적인 교제를 하는 곳이 아니지요. 특히 교역자나 장로 등 신실해 보이는 사람이 부탁한다고 해서 무조건 믿고 돈을 빌려주거나 보증을 서 주면 안 됩니다. 이로 인해 실족당하고 교회를 떠나거나 믿음 자체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일 보증이나 담보를 부탁받았다면 모든 것을 신중히 결정해야 합니다. 보증을 서면 반드시 스스로 매이게 됨을 명심하여 후회가 없는 결정을 해야 합니다. 사람은 내일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합니다. 동업 제의를 받고 잘될 것 같아 담보를 잡히고 투자했는데 얼마 안가 망하는 일도 흔합니다. 인간은 자기에 대해 책임을 질 수가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누군가 이렇게 기도한 적이 있다. “주님! 저를 제 친구들로부터 지켜주옵소서. 그러면 제가 원수를 돌보겠습니다.” 잠언은 우정의 취약성을 다룬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친구들을 보호하며 동시에 필요한 경우 어떻게 그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지 조언한다. 히브리어로 ‘친구’는 우리 곁에 있는 ‘이웃’, 즉 이미 친구이거나 친구가 될 수 있는 자들을 의미한다. 성경이 말하는 지혜는 인간관계를 가치 있게 여기며 그러한 관계 속에서 배려와 존중을 요구한다.
잠 6:1~5을 읽어 보라. 솔로몬은 어떤 문제를 언급했는가? 해결책은 무엇인가? 우리는 여기서 어떤 중요한 영적 원리를 찾는가?
모세오경은 백성들에게 가난한 자들을 돕고 이자를 받지 말고 돈을 꾸어주라고 권유하는 반면 잠언은 빚을 지고 있는 친구에게 무분별한 재정적인 후원을 삼가도록 경고한다(출 22:25). 자선의 의무는 공의의 의무를 배제하지 않는다(출 23:2~3). 물론 우리가 할 수 있는 상황에서 관대할 필요는 있지만, 우리의 자선이 낭패가 되어서 돌아오지 않으리라 확신할 만큼 지혜로워야 할 것이다(잠 22:27).
잠언은 우리에게 지혜로운 조언을 제시한다. 첫째 경고는 우리의 말에 관한 것이다. 상황을 파악하고 친구를 도울 여력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그렇게 한 뒤에 말하고 약속하라. 따뜻한 우정과 순간적인 감정은 우리의 다짐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나중에 그 결정에 대해 후회할 수도 있다.
그대가 아무리 선량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감당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행동과 실행에 앞서 생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요지는 우리에게 채무가 발생하면 남에게 의지하기보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을 낮추고 실수를 인정하며 은혜를 구하는 일을 포함하여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교훈 : 우정은 중요한 것이지만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종류의 재정 후원을 약속해서는 안 된다.
부가적용)
보증이란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에 그를 대신해 채권자에게 채무를 이행할 것을 부담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상대의 동산, 또는 부동산의 유치권, 질권, 저장권 등의 물적 담보나 보증, 연대채무 등의 인적 담보를 요구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담보나 보증을 서지 말라고 하신 것일까요? 만일 일가친척이나 가까운 친구가 보증을 서달라고 요청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거절하면 의가 끊어지거나 우정이 깨질 수 있고, 자칫 원수를 맺을 수도 있기에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보증을 서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다수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기에 빚에 쪼들리다가 화병이 나서 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족이 거리로 쫓겨나고 기업이 파산하는 등 그 폐해(弊害)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금한 것은 하지 않는 것이 진리이며 옳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 없어 보증을 서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보증을 서지 않는 것이 진리이고 사랑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담보를 서 줄 때 확실히 보증 받을 수 있는 담보가 있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담보나 보증이 필요한 것 자체가 이미 자신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재력으로 감당할 수 있다면 담보나 보증을 요구할 필요가 없지요. 따라서 타인에게 보증이나 담보를 세운 자체가 이미 분수와 한도를 넘어선 일입니다.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여지가 많다는 것입니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우정을 지키며 친구를 도울 수 있는 적절한 기준은 무엇일까요?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2). 성경은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말고 돕도록 명령하고 있습니다. 갑작스런 재난과 곤경을 당한 경우 도움을 베푸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과욕으로 인한 손실이 예상될 때 우리는 규모와 계획의 변경을 권유하는 편이 낫습니다. 또한 주변의 일시적인 도움보다는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문제도 존재합니다. 우리는 충동적인 재정적 지원이 우정뿐 아니라 내 삶의 근거까지 위협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 적용 |
재정적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돕는 지혜로운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영감의 교훈
금전의 가치 - “금전이 큰 가치를 지닌 까닭은 크게 선행을 베풀 수 있기 때문이다. 금전이 하나님의 자녀의 수중에 있을 때에는 그것이 주린 자의 양식이 되고, 목마른 자의 음료가 되고, 헐벗은 자의 옷이 된다. 또 그것은 압제받는 자에게 방어가 되고, 병든 자에게 도움이 된다. 그러나 금전이 생활필수품을 마련하고, 다른 사람에게 복을 끼치고, 그리스도의 사업을 진전시키는 목적 이외에 사용되면 모래 이상의 가치를 지니지는 못할 것이다”(청년에게 보내는 기별, 310).
기도
아버지, 제게 남을 도울 수 있는 마음과 여력을 허락하옵소서. 그러나 과욕과 과신을 멀리하게 하옵소서. 오히려 제게 근면함을 주셔서 제 주변이 소박한 넉넉함과 만족을 누릴 수 있게 하옵소서.
넷째날(수) 1월 7일 일터를 지키라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잠 6:10~11).
교사강해 4)
잠은 게으름의 대표적인 품목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잠을 많이 잡니다. 잠을 많이 자는 사람은 부지런히 일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일하고 있는데, 자신은 자고 있으면 그만큼 생산할 수 없습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라는 속담처럼 일찍 일어나 일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일찍 일어나야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습니다. 일을 더 많이 해야 더 많은 것을 생산할 수 있고 벌 수 있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결코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곤핍이 군사같이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잠자기를 즐겨하는 자는 헤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잠 23:21). 영적인 게으름도 가난의 열매를 맺습니다. 게을러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집니다. 영적인 힘이 빈약해집니다. 병을 고칠 수 없고 귀신을 물리칠 수 없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약해지고 게을러 성경을 잃지 않으면 영적인 양식이 없습니다. 영적인 창고가 가난하게 됩니다. 영적 음식이 없어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게을러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없으며 하나님의 풍성함을 누릴 수 없습니다. 게을러서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으면 천국에서의 상급도 없습니다.
잠 6:6~8을 읽어 보라. 우리는 개미에게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개미는 근면할 뿐 아니라 감독이 없어도 스스로 일한다. (체중에 비례하여 개미가 옮길 수 있는 짐과 사람이 옮길 수 있는 짐을 비교한다면 개미의 노동은 사람의 노동보다 훨씬 강도가 높다.) 개미들이 열심히 일하는 주된 이유는 미래 때문이다. 그들은 고난의 계절(겨울)을 내다보고 스스로 대비한다. 우리는 계획을 수립하거나 어떤 활동에 가담하려고 할 때에 개미로부터 미래에 대하여 생각하는 지혜를 배운다. “부모나 교사, 학생이나 노인 혹은 청년 모두가 이 문제를 숙고해야 한다. 이 땅에서 사는 짧은 세월에만 초점을 맞추어 영원한 미래에 대해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면, 현재 그가 꾀하는 사업이나 인생 설계도는 완전하지도 건강하지도 않다”(교육, 145).
잠 6:9~11을 읽어 보라. 게으른 자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게으름뱅이에게는 배울 것이 없다. 오히려 그들은 개미에게서 배울 필요가 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잠 6:6). 개미가 일하는 동안 게으른 자들은 잠들어 있다. 개미가 추수 때에 곡식을 모으는 동안 게으른 자들은 나태함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두 손을 모으고 있다. 개미들은 자신보다 더 무거운 짐을 옮기면서 능력 이상의 노력으로 미래를 대비하건만 게으른 자들은 현실에 안주하여 오직 자신에게 얽매여 있다.
교훈 : 우리는 미래를 대비하여 열심히 일하는 개미로부터 지혜를 배워야 한다. 지혜가 없는 사람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며 나태함에 빠진다.
부가적용)
게으른 사람은 가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가난하면 돈 있는 사람의 부림을 받습니다. 그들의 노예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특히 돈으로 세상이 움직이는 자본주의 시대에는 가난하면 거의 돈 있는 사람들의 부림을 당하게 됩니다.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잠 12:24) 게으른 자가 부림을 받는 것은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가난하기에 있는 자에게 머리를 조아리게 됩니다. 가난한 사람은 먹고 살기 위해 부자에게 가서 일을 하고, 부자들의 비위를 맞춥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거리를 주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대기업체는 매우 돈 많은 부자입니다. 사람들이 대기업체에 몰려드는 것은 일거리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만일 돈이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대기업체에 들어가지 않아도 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기업체에 들어가기 위해서 기업주에게 최대한 잘 보이려고 애씁니다. 그 기업체에 들어가서도 기업주인 회장에게 머리를 조아립니다. 이것이 부림을 당하는 한 예라 할 수 있습니다. 가난하면 사람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도 없으면서 없는 사람을 무시합니다. 게으름의 종착지는 결국 망함입니다. 인생이 망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일을 게을리 하는 자는 패가하는 자의 형제니라”(잠 18:9). 자기의 일을 게을리 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가난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난은 솔로면의 표현을 빌리면 “패가 하는 자의 형제다”. 패가는 집안이 망하는 것을 말합니다. 형제는 매우 밀접한 관계이고 비슷하기 때문에 “패가 하는 자의 형제는 곧 집안이 망한 사람과 같이 그 사람도 망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게으름이 집안을 망하게 하고 사업을 망하게 하고 우리의 모든 삶을 어렵게 합니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하나님이 바라시는 근면한 삶이란 어떤 것일까요?
하나님은 안식일 계명에서 엿새 동안에는 힘써 일하고 제칠일에는 안식을 취함으로 노동과 휴식의 균형을 명령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위해 엿새 동안 힘써 일해야 할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막연히 노후를 위해 노동을 극대화하고 재물을 과하게 축적하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상의 짧은 인생보다 영원한 삶을 위해 더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생계를 위한 노동 못지않게 복음 사업을 위해서도 열정을 다할 필요가 있습니다.
| 적용 |
그대가 반드시 개선해야 할 게으름이나 나태함은 무엇에 관한 것입니까?
영감의 교훈
작은 교사들의 교훈 - “우리는 이러한 작은 교사들로부터 충실함의 교훈을 배우게 된다. 지혜의 근원이신 창조주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재능을 이와 같은 근면으로 활용했다면 우리의 유용성을 위한 역량이 얼마나 크게 확대되었을까. 그토록 작은 미물에도 하나님의 눈이 머물고 있는데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사람을 어찌 눈여겨보지 않으시며, 사람에게 부여한 모든 우월함에 상응하는 되돌림을 요구하지 않으시겠는가?”(교회증언 4권, 455).
기도
아버지, 제게 명확한 목적의식을 주시옵소서.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할 일과 하늘까지 이어갈 일이 무엇인지 알아 세월을 허비하지 않고 늘 근면하게 노력함으로 어떤 상황을 맞이해도 항상 준비되어 있는 인생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다섯째날(목) 1월 8일 자신을 지키라
“불량하고 악한 자는 구부러진 말을 하고 다니며…그의 마음에 패역을 품으며 항상 악을 꾀하여 다툼을 일으키는 자라”(잠 6:12~14).
교사강해 5)
패역을 품은 마음은 미움을 가진 마음, 교만한 마음, 분노하는 마음입니다. 이런 사람은 다툼을 즐깁니다. 그러면 싸움의 끝이 없습니다. 잠26:20-21에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장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숯불 위에 숯을 더하는 것과 타는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같이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시비를 일으키느니라"고 했습니다. 미운 마음으로 말을 옮기고 부풀리면서 분노의 마음에 불을 지릅니다. "불량하고 악한 자"(블리야알)는 무가치한 악마 같은 존재와 동일한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고후 6:15; 벨리알). 이러한 자는 음흉해서 자기의 감정과 의사를 그대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의 입에서는 거짓되고 속이는 말(궤휼-비꼬인 말)이 끝없이 나옵니다. 그는 은밀한 방법으로(눈짓과 손가락질) 자기의 의사를 표시합니다.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은 자기의 의사가 악하기 때문에 그것을 숨기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교만하고 완고하여 남의 훈계와 충고를 듣지 않으며, 항상 악한 일을 일으키고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아무 이유 없이 싸움을 일으킵니다. 이러한 자들은 회개할 기회가 주어져도 그것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악을 행하기 때문에 재앙이 갑자기 그에게 임하게 됩니다. 그는 재앙이 임할 때에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잠언은 삶의 세 가지 영역 즉 가정, 사회적 관계 그리고 직장을 위협하는 특정 해악들에 대해 경고한 뒤에 우리에게 악인들의 자화상을 제시한다. 그것은 역설과 날카로운 심리학적 관점으로 가득한 하나의 풍자이다. 두 개의 시(잠 6:12~15, 16~19)는 일곱 개의 동일한 시적 음률로 평형을 이루며 유사한 주제를 다룬다. 여기서 악인의 생각은 마치 마음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묘사되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마침내 행동을 통해 바깥으로 드러난다.
잠 6:14, 18과 마 15:19을 읽어 보라. 여기서 밝혀지는 요점은 무엇인가?
“그대가 헛된 상상에 빠져서 마음이 부정한 주제에 골똘하도록 허용한다면 그대는 마치 그대의 생각이 실천에 옮겨진 것이나 다름이 없을 정도로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있는 것이다”(재림신도의 가정, 334).
잠 6:12~19에는 어떤 경고가 주어졌는가? 본문이 그리는 장면은 역설적이다. 악인의 걸음은 게으름뱅이의 모본을 따른다. 그 둘의 태도는 서로 달라 보이지만 동일한 교훈을 전한다. 둘 다 자신 안에만 머문다. 둘 다 그들 외부에서 오는 훈계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지혜나 성향을 따른다. 게으름뱅이는 잠들어 있어 귀와 발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악인은 발과 입만 움직일 뿐 귀는 사용하지 않는다. 결과는 동일하다. 둘은 모두 멸망으로 향한다.
한편 악의 결과는 두 가지로 나타난다. 그것은 상대뿐 아니라 죄인 자신까지 해한다. 거짓말쟁이는 마침내 자신의 거짓을 믿는다. 악행의 마지막 결과는 사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불화와 갈등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죄의 감화가 죄인에게만 국한되는 경우는 드물다. 다른 이들도 그 죄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하며 대개 더 심한 고통을 겪는다.
교훈 : 우리는 악한 생각이 마음에 머물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지혜를 거부하고 자신의 지혜에 의존하는 악인들은 타인과 자신 모두를 해한다.
부가적용)
장을 보러 읍내에 나온 한 농부가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렀습니다. 그는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머리를 숙이고 경건히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때, 도시에서 온 불량배 몇 명이 옆자리에 앉아 시끄럽게 떠들다가 그들 중 하나가 농부에게 건방진 투로 물었습니다. “어이, 농부 양반! 촌놈들은 식사를 할 때 다들 기도를 하나보지?” 그러거나 말거나 농부는 개의치 않고 묵묵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다 마치고 나서 불량배에게 점잖게 한마디 했습니다. “다들 기도를 하는 것 아닐세, 개나 돼지들은 그냥 먹어!” 이 세상에는 불량하고 악한 자들 말을 구부러지게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말을 함부로 하거나 교양이 배제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배제될 것입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개나 돼지들은 기도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세상의 각종 죄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잠 25:28). 우리는 지난 기에 죄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여러 번 배웠습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두 가지를 반드시 해야 합니다. 우선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악한 생각을 소홀히 하면 마침내 그 생각들이 내 삶에서 구체화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성경 말씀과 성령의 음성에 연결시켜야 합니다. 결국 자신을 지키는 데 실패하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 적용 |
그대가 마음을 지키기 위해 꼭 차단해야 할 것과 연결시켜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영감의 교훈
마음을 충실히 지키라 - “사탄의 간계에 빠지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은 영혼의 통로를 잘 지켜 불순한 생각을 일으킬 것은 읽거나 보거나 듣지 않아야 한다. 마음은 영혼의 원수가 제시하는 모든 주제들을 닥치는 대로 생각하도록 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마음은 충실히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밖에 있는 악이 속에 있는 악을 일깨워 영혼은 어둠 속에서 방황할 것이다.”(사도행적, 518).
기도
아버지와 멀어졌던 제 마음은 스스로 주인 행세하며 많은 실패를 가져왔습니다. 이제 이 마음을 방치하지 않고 성령님께 맡깁니다. 제 마음을 하늘의 음성과 지혜로 채워 주시옵소서. 마음에서 이룬 성공이 생활의 빛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여섯째날(금) 1월 9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재림신도의 가정>, 326~339 “도덕적 표준”, <치료봉사>, 489~491 “대인관계”, <교육>, 117~120 “다른 실물 교훈”을 읽어 보라.
“성경을 연구하려는 사람은 배우는 자의 정신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 자신의 의견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알기 위하여 성경의 각 페이지를 연구해야 한다.… 지적 무능력과 도덕적 결함의 중요한 원인은 바로 가치 있는 목적을 향한 정신 집중의 결함에 있다.… 출판사로부터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인쇄물의 대홍수로 인하여, 사람들은 노소를 물론하고 조급하고 피상적인 독서를 하는 습관이 붙어서, 일관성 있고 건전한 사고를 할 마음의 힘을 잃고 있다”(교육, 189).
“솔로몬은 태만의 기질과 영혼의 육체를 타락시키는 습관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자들에 대한 견책으로써 개미의 근면성을 지적했다. 개미는 앞날의 계절을 위하여 준비하지만 추리력을 가진 많은 인간들은 앞날의 영생을 위한 준비에 실패하고 있다”(부모와 교사와 학생에게 보내는 권면, 190).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개인적인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어떻게 남을 도울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다음의 성경절과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는 교훈을 가르친 이번 주 교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
➋ 천연계로부터 배워서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교훈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요? 그러나 세상이 타락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천연계로부터 얻은 교훈에 주의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➌ 잠 6:16~19에 나오는 일곱 가지 혐오스런 것들을 읽어 보십시오.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눈에 그토록 나쁘게 간주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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