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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의인들이 받는 복(교사들을 위한 강해와 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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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의인들이 받는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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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1일 안식일

일몰:오후 5시 54분

 

기억절 : “의인의 머리에는 복이 임하나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잠 10:6).

 

도입)

오늘의 기억절에서 의인의 머리에 복이 임하는 것은 그가 지혜로운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지혜는 위로부터 주신 지혜, 여호와를 경외할 때 얻는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하나님을 잘 안다는 것은 복입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잘 모르기에 인간은 각기 제 길로 가는 것입니다. 율법사와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을 잘 안다고 했지만 실상은 그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위로부터 오는 지혜의 복을 받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를 진실로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걸어가고자 힘쓰게 되는 것입니다. ‘의인의 머리’와 ‘악인의 머리’를 대구법으로 가져와도 좋아 보일듯하나 솔로몬은 의인에게는 ‘머리’라는 단어를 선택하였지만 악인에게는 ‘입’이라는 단어를 선택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의인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깊이 생각을 하는 자입니다. 반면에 지혜가 없는 악인은 깊이 생각하기 이전에 먼저 말을 내뱉는 자입니다. 지혜자는 말을 쉽게 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지혜가 없는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다고 솔로몬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 없이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입에 독을 머금고 있다가 토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악인은 그 내뿜은 독으로 인해 결국은 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잠언 10장에서 ‘입이 미련한 자는 멸망’할 것을 3번씩이나 언급하고 있습니다(8절, 10절, 14절). 입이 미련하다는 것은 그 뜻이 ‘어리석은, 바보’를 내포하고 있기에 ‘어리석게 말을 하는 자’라 할 수 있습니다.

 

연구 범위 : 잠 10:1~14, 마 19:19, 잠 11~12장, 요 3:16, 잠 13장.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이번 과에서 의인들이 받을 복을 살펴보려고 한다. ‘의로운’을 뜻하는 히브리어 ‘차디크(zaddiq)’는 잠언 10장의 핵심어이다. 이 말은 ‘공의’로 번역되는 ‘체데크(zedeq)’에서 유래했는데 ‘체데크’는 잠언 전체 서론에서 등장한다. “…솔로몬의 잠언이라 이는…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잠 1:1~3). 잠언에 따르면 지혜는 의로운 것이다. 여기서 의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행하는 것을 의미하며, 믿음 안에서 행하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인물이 되며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실천하라는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이다. 의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일종의 선물이다. 의의 반대는 어리석음과 불충성이다. 지혜는 ‘공의’ 또는 ‘의’이지만 어리석음은 죄악이다. 이번 주에 공부하는 말씀 속에는 이 둘 사이의 차이점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안교반과 소그룹을 일원화시키면 가장 좋습니다.

 

안교 활동반과 교과 토의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좋은 선택의 결과와 나쁜 선택에서 오는 결과의 차이점을 이해한다.

➋ 느끼기 : 우리의 안녕을 바라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바람을 신뢰한다.

➌ 행하기 : 긍정적인 결과와 부정적인 결과의 원인을 깨닫고 더 나은 선택을 하기로 결심한다.

 

Part 1. 인사 안교 반장 또는 소그룹 리더

서로 인사를 나누고 손님을 환영해 줍니다.

출석과 공부를 확인하고 안교헌금을 걷습니다.

결석자와 구도자에 대한 보고를 듣고 방문 계획을 세웁니다.

 

Part 2. 나눔 안교 교사 또는 소그룹 리더(A나 B 중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A. ❶ 자신의 말 한마디나 한 가지 행동이 주위 사람에게 전염되었던 경험을 이야기해 봅시다.

❷ 우리가 선택하는 의 또는 악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얼마나 파급효과가 강하다고 생각합니까?

❸ 의인들의 선택이 결국 좋은 보상을 받으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❹ 의인이 받는 복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기 위해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B. ❶ 당장의 이익은 없지만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일들에 대해 예를 들어 보십시오.

❷ 오직 현실만을 생각하는 악인과 달리 영원한 미래를 염두에 두는 의인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됩니까?

❸ 거짓을 말하는 개인과 그것을 허용하는 사회가 결국 파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❹ 우리가 일상적인 상황에서 내릴 수 있는 ‘의인의 선택’은 어떤 것일까요?

 

결론 :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이로운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우리의 삶 속에 작용하는 원인과 결과의 원리를 설명해 주십니다.

 

Part 3. 실천 안교 반장 또는 소그룹(예비) 리더

❶ 친교를 위한 특별 활동 계획을 확정짓습니다.(2월 14일 또는 15일)

❷ 안식일 오후 활동을 소그룹 모임, 방문 활동, 봉사 활동 중에서 선택합니다.

❸ 특별 활동과 안식일 오후 활동을 위해 기도합니다.

 

첫째날(일) 1월 25일 의는 전인적이다

 

“의인의 머리에는 복이 임하나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의인을 기념할 때에는 칭찬하거니와 악인의 이름은 썩게 되느니라”(잠 10:6~7).

 

교사강해 1)

말씀 중심의 삶은 거룩한 습관들로 훈련되어지는 삶을 의미하며, 우리가 매일의 삶을 살 때에 순간적이고 일회적인 제한적인 회심의 삶이 아닌 전인적인 회심을 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회심이란 우리의 어떠한 능력과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며 은혜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의지와 생각과 행동이 주체되었던 삶의 모든 범주 안에 있는 것들을 오직 하나님의 뜻에 초점이 맞추어져 생활하는 훈련이 되어 진다면 그리스도의 거룩한 삶의 모습을 닮아가는 제자로서의 삶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수용하고 그 말씀을 삶 속에 행동으로 나타낼 수 있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람은 그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을 합니다(11절). 그러므로 의인의 입은 항상 주위 사람들에게 생명수와 같은 기쁨과 평안을 줍니다. 반면에 악인은 남에게 해를 입히는 독과 같은 말만 합니다. 또한 “명철한 자”는 항상 말을 조심하여 남과 소모적인 논쟁을 피하지만, “지혜 없는 자”는 아무 생각 없이 무분별하게 말을 함으로써 남들과 다툼을 일으키고 결국 자신이 큰 피해를 입습니다(13절). “지식을 간직”한다(14절)는 것은 적당한 때에 필요한 말을 하는 신중한 언어생활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지혜로운 자는 신뢰와 인정을 받게 되는 반면, 미련한 자는 함부로 말해 스스로 곤경에 빠집니다. 또한 적절한 말과 의인의 지혜로운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지만, 어리석은 말은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끕니다.

 

잠 10:1~7을 읽어 보라. 삶과 믿음에 대하여 어떤 다양한 원리가 여기에 제시되었는가?

 

한 남자가 배 위에 올라 자신이 앉은 자리에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이 중단하도록 요구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당신들이 참견할 일이 아니야. 이건 내 자리라고!” 이처럼 황당한 반응이 바로 죄인들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변명이다. “내 인생이야! 당신과 무슨 상관인데?”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지 않든지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특히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 좋든지 좋지 않든지 다른 사람이 저지른 행동의 결과를 어느 정도 느껴본 적이 없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잠 10:3~5은 영적인 삶과 도덕적인 삶 그리고 육체적인 삶과 물질적인 삶이 어떻게 결합하는지에 대해 다룬다. 요지는 이렇다. 부자라도 악과 도덕적 잘못을 저지르면 얻는 게 없을 것이며, 가난한 자일지라도 의롭게 살면 보상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잠 10:6~7에서 음욕이 간음과 같고 증오가 살인과 같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유사한 옛날식 표현을 발견한다. 증오심을 감추고 말하는 것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악한 생각은 종종 우리의 몸짓이나 음성의 고저에서 무심결에 노출된다. 다른 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최선의 출발점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레 19:18, 마 19:19과 비교해 보라)는 것이다.

7절에서 제안하듯이 우리가 남긴 선한 인상은 다른 사람에게 지속적인 감화를 끼칠 수 있다. 알고 보면 우리는 상당히 상식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나쁜 평판을 얻는 것보다 좋은 평판을 얻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교훈 : 우리의 삶은 의롭든지 악하든지 우리 주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우리의 육체와 물질적인 삶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부가적용)

마음은 우리 속에 꿈틀거리고 있는 세계관입니다. 사고방식이며 관점입니다. Life style이며 나도 모르게 선택하는 습관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마음의 변화에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변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없습니다. 무늬는 그리스도인일 수 있지만 내면은 세속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문제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변화입니다. 구원은 무엇입니까? 변화입니다. 뭐가 변하는 것입니까? 너희 몸, 즉 전 인격이 변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려로서 썩지 아니할 몸, 신령한 몸, 영광의 몸을 입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내면적이고 정신적인 모든 변화를 가져 온 총체적이고도 전인적인 큰 변화를 정확히 표현한 말일 것입니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왜 지금 그대의 영적 상태와 선택이 중요합니까?

하나님은 한 사람의 선택이 선악간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지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그분은 아담 한 사람의 선택과 타락으로 인류 전체가 받게 될 고통을 아셨습니다. 반면 아브라함 한 사람의 믿음에서 만민에게 복을 베풀 방법을 보셨습니다. 둘째 아담으로 오신 한 사람, 예수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을 의인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불합리한 상황에 처해 있는 우리 안에서 ‘한 사람’을 바라보십니다. 오늘 그 ‘한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 적용 |

오늘 그대가 내릴 결정이 주위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생각해 보십시오.

 

영감의 교훈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 - “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다. 하나님과 진정으로 연결된 사람은 하늘의 빛을 반사함으로써 세상과 교회에서 구원하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선한 행위, 믿음직한 행위의 향기는, 심지어 우리 믿음 안에 있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도 그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교회증언 4권, 356).

 

기도

아버지, 저는 오늘 저의 작은 선택이 저의 삶 전체와 주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게 주신 믿음으로 의로운 결정을 내리기 원합니다. 그것이 당장은 손해가 될지라도 선한 열매가 되어 돌아오게 해 주시옵소서.

 

둘째날(월) 1월 26일 의로운 자들의 입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잠 10:11).

 

교사강해 2)

의인의 입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생명 샘과 같습니다. 갈증으로 죽어가던 사람이 샘물을 마시고 생기를 얻듯이 의인의 말은 힘과 용기를 줍니다. 에스겔은 거룩한 물이 성소에서 나와서 흘러가면서 모든 것을 살려내는 환상을 보았습니다(겔47:1-12). 성령은 사람들을 살려내며 그들에게 생기를 줍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한 사람은 입으로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줍니다. 그러나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고 있습니다(11(하)). 의인의 입은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샘이지만, 악인의 입은 사람을 죽이는 독사와 같습니다. 악인은 입은 독을 가진 독사처럼 사람들을 해치고 좌절하게 만듭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발람 선지자는 교묘한 술수로 이스라엘 민족을 타락하고 수많은 사람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후에 그를 죽이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입술과 혀로 이루어진 입은 잠언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하는 신체 기관이다. 개역개정판에서 ‘입’은 50번, ‘입술’은 40번, ‘혀’는 16번 사용된다. 특별히 입의 사용은 잠언 10~29장의 핵심 주제이다.

기본 전제가 중요하다. 우리의 말은 선악간에 매우 영향력이 크다. 혀는 우리에게 부여된 최고의 선물이 될 수도 있고 최악의 선물이 될 수도 있다. 혀에 대한 이런 상반된 가치는 잠언이 다루는 가장 중요한 교훈 가운데 하나이다. 참으로 입은 생명을 주기도 하고 죽음을 주기도 한다.

잠 10:11~14을 읽어 보라. 의인들의 화법과 어리석은 자들의 화법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11절에서 “생명의 샘”이라는 표현을 주목하라. 그것은 지혜의 특성들을 상징적으로 설명한다. 이 표현은 생명의 근원이신 여호와와 관련되어 있다(시 36:9). 겔 47:1~2도 성소로부터 물이 흘러나오는 유사한 장면을 묘사한다. 예수님도 성령의 선물을 설명하기 위해 같은 은유를 사용하셨다(요 4:14). 따라서 의인들의 입을 “생명의 샘”에 비유한 것은 그들의 입을 하나님과 관련시킨 것과 같다.

긍정적인 생명의 선물이 바로 입을 특징짓는 요소이다. 이런 특성은 입의 합당한 기능이 무엇인지 말해 준다. 그것은 악이 아닌 선을 위한 힘이 되어야 하며 죽음이 아닌 생명의 근원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내용은 약 3:2~12에서도 반복된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히 1:3)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따라서 말은 오직 창조적인 목적에 맞게 사용되어야 한다.

 

교훈 : 말은 창조 또는 파괴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창조의 목적에 맞게 입술을 사용해야 한다.

 

부가적용)

사람은 그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을 합니다(10:11절). 그러므로 의인의 입은 항상 주위 사람들에게 생명수와 같은 기쁨과 평안을 줍니다. 반면에 악인은 남에게 해를 입히는 독과 같은 말만 합니다. 또한 “명철한 자”는 항상 말을 조심하여 남과 소모적인 논쟁을 피하지만, “지혜 없는 자”는 아무 생각 없이 무분별하게 말을 함으로써 남들과 다툼을 일으키고 결국 자신이 큰 피해를 입습니다(13절). “지식을 간직”한다(14절)는 것은 적당한 때에 필요한 말을 하는 신중한 언어생활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지혜로운 자는 신뢰와 인정을 받게 되는 반면, 미련한 자는 함부로 말해 스스로 곤경에 빠집니다. 또한 적절한 말과 의인의 지혜로운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지만, 어리석은 말은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끕니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사람들은 그대의 말에서 희망을 느낄까요? 아니면 절망을 느낄까요?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듯이 하나님을 닮은 인간의 말에도 큰 힘이 있습니다. 우리의 말은 때로 사람에게 생명과 희망을 불어넣기도 하고 때로 절망과 좌절을 심어주기도 합니다. 긍정적인 말은 창조의 능력을 발휘하지만 부정적인 말은 파괴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세상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말 한마디, 감사의 표현, 칭찬과 격려, 부정적인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지혜로운 발언에 주목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말들의 창조적인 능력을 알아 보십니다.

 

| 적용 |

오늘 그대는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생명의 말’을 건네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경우에 합당한 말 - “세상은 조급함과 교만과 이기심과 탐욕과 폭력으로 가득 차 있으며, 혼란과 소동과 다툼의 광풍 속에서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온유하고, 순결하고, 고상하고, 고결하고, 거룩한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 시간 허비요, 허튼 소리처럼 우리에게 들릴는지 모른다. 그러나 성화된 심령과 입술로부터 나오며, 경건하고 일관성 있는 그리스도인 행실에 의해 뒷받침되는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의 금 사과와 같을 것이다”(교회증언 3권, 247).

 

기도

하나님, 죄악을 품고 있는 마음에서 무심결에 나오는 말들이 독이 되고 있습니다. 제 마음을 정결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마음을 품기를 원합니다. 제 입술에서 생명과 용기와 희망을 북돋는 하늘의 언어가 나오게 해 주시옵소서.

 

셋째날(화) 1월 27일 의인들의 희망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잠 11:3).

 

교사강해 3)

지금의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정직한자들은 손해를 입거나 실패를 할 것 같고 약은 수로서 남을 모략하고 악하게 하는 사악한 자들이 이익을 얻고 성공을 할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잠언 말씀에서 정직한 자는 성실한 자이며 그 성실로서 자기를 인도하고, 그 공의로 인하여 구원을 얻을 뿐 아니라, 온 마을(성읍)이 정직한 자의 축복을 인하여 진흥(振興)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반하여 사악한 자는 패역한 자이며 그 악으로 인하여 자기 자신을 망하게 하고, 자기의 악(惡)에 잡히고, 그리고 사악한 자는 그 입으로 그 이웃을 망(亡)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9).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이 정직한 자인지 사악한 자인지를 잘 분별하기 힘이 들 때도 있으며 혼돈이 될 때도 있지만, 정직과 사악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어떠한가에 달려 있고 이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를 다루십니다. 특히 성경에서 정직한 자는 욥을 가리켜 ". . .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며 악에서 떠난 자"(욥1:1)라고 설명함으로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한 자가 어떠한 자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직한 자는 공의를 가진 자(:6)로서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으며(롬5:2;3:28)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사악한 자는 악한 자로서 지금 당장은 오히려 잘되고 성공을 한 것처럼 보여도 결국 자신의 그 악으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멸망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7-8)고 말씀합니다.

 

위 성경절이 맞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러한 영적 진리가 드러난 경우에 대하여 보거나 들은 예가 있는가? 아니면 적어도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춰볼 때 이 말씀을 단지 믿음으로만 받아들여야 하는가?

잠언 11장을 읽어 보라. 여기서 다루는 다양한 주제 중에서 악한 자들에게 일어나는 것과 반대로 신실한 자들에게 이르는 큰 복은 무엇인가?

미래에 대한 의식과 아직 가시화되지 않은 가치는 의인들로 하여금 바르게 살도록 동기를 부여한다(고후 4:18 참고). 미래에 대한 희망 때문에 의인들은 겸손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동정심을 가지고 행동한다.

반면 악인들은 오직 현재 안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오직 눈앞에 보이는 것과 당장의 보상에만 관심이 있다. 그들은 남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며 기만술과 악습에 의지한다. 예를 들면, 고객을 속이는 상인은 높은 매상으로 당장의 보상을 받겠지만 결국 고객을 잃고 사업은 망한다(잠 11:3, 18).

 

교훈 : 거짓과 속임수를 사용하여 당장의 이익을 추구하는 악인들은 결국 망하지만 정직하고 진실하게 사는 의인들은 미래의 보상을 받는다.

 

부가적용)

엄밀히 말해서 개인의 정직함과 개인의 평판은 다릅니다. 우리의 평판은 사람들이 우리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입니다. 반면 우리의 정직함은 우리가 실제로 누구인가와 직결됩니다.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잠 11:3) 정말 맞는 말입니다. 거짓이라는 불안한 기초 위에 세운 집이 무너지자 삶이 함께 무너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A라고 말하면서 C로 행동하는 리더들과 조직 전체의 이중성이 사회의 많은 부분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삶을 마감하면서 사무엘은 공동체 앞에 서서 말했습니다. “나는 정직하게 살았다. 내가 잘못한 일이 있다면 말해 보라. 사실대로 말하겠다.”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당신은 언제나 옳은 일을 했습니다. 당신은 정직한 사람입니다. 사무엘 당신은 신실한 사람입니다. 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끝나는 날 우리 모두 이런 평가를 받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의 결정과 선택은 얼마나 먼 미래에 관한 것입니까?

스칸디나비아에 서식하는 레밍이라는 설치류는 집단자살로 유명합니다. 자살의 이유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양한데 그들이 섭취하는 풀에서 그 원인을 찾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먹는 풀 속에는 소화액을 중화시키는 액체가 있기 때문에 레밍들은 더 많은 양의 소화액을 분비시켜야 하고 그로 인한 에너지 사용이 그들로 하여금 더 허기지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결국 눈앞의 먹이를 찾아 집단적으로 이동하는 레밍은 시력이 좋지 않은 탓에 강과 바다를 만나도 새로운 먹이만 생각하고 무모하게 뛰어들어 죽음을 맞이합니다. 마치 결코 만족이 없는 것들을 쫓다가 최후를 맞이하는 근시안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 적용 |

그대가 이미 선택한 것 중에 영원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바꿔야 할 선택은 무엇입니까?

 

영감의 교훈

이익처럼 보이는 손실 - “하늘 천군과 자신을 부인하는 구속주가 바라보시는 그대의 하늘 기록에 그대가 이들을 원함으로 탐욕, 인색, 이기심, 거짓 거래 등의 딱지가 결단코 붙지 않도록 하라. 그런 것들은 이 세상의 관점에서는 당장의 이익을 가져다주겠지만, 하늘의 관점으로 보면 엄청나고도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이다. 주께서는 인간처럼 보지 않으신다. 하나님을 계속 신뢰하는 데에 안전이 있다”(교회증언 2권, 72).

 

기도

하나님, 우리에게 하늘의 소망과 영생의 약속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비록 짧은 세월을 살아가지만 크고 작은 선택과 결정의 순간에 눈앞의 만족보다 영원한 가치를 생각할 수 있도록 늘 우리를 깨우쳐 주시옵소서.

 

넷째날(수) 1월 28일 의인들의 진실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내어도 거짓 증인은 속이는 말을 하느니라”(잠 12:17).

 

교사강해 4)

잠언은 지속적으로 의인과 악인을 대조합니다. 그리고 의인과 악인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줍니다. 그리고 깨닫게 되는 것은 의인과 악인의 대표적인 차이점이 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의인과 악인의 차이점이 그들의 마음의 생각과 삶의 방식의 차이점을 여러 가지로 언급하지만 의인과 악인의 중요한 차이점은 말에 있음을 말씀합니다. 말이 의인과 악인의 실상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얼굴이 좀 험악하고 사납게 생겼다고, 옷차림이 좀 싼 티가 난다고, 하는 일이 투박하다고 해서 그가 의인이고 악인이 아니라, 그가 하는 말이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밝혀준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은 그 사람의 생각과 내면과 인격, 실상을 밝혀주는 가장 대표적이고 가시적이며 현실적인 척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살리고 죽이고, 세우고 넘어뜨리며, 사람을 돕고 해치고, 연합시키고 훼방하는 그 모든 것이 말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말로 사람을 살리고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말로 영혼에 유익을 주고 마음을 회복시켜 주는 자입니다. 생의 용기와 희망, 소망을 갖게 하고, 구원의 진리를 알게 하는 사람입니다. 이사야50:4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이 말씀이 비단 신학교수들과 학문을 많이 닦고 지식이 많은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난 자라면, 내가 정녕 주님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천국의 사람이라면 말로 사람을 도와줄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말로 사람을 도와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과 공동체에 덕을 세우고 유익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17절에서 19절입니다.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내어도 거짓 증인은 속이는 말을 하느니라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 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고, 말에는 반드시 결과가 따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위로의 보상이든지 아니면 영원한 수치이든지 버려짐이든지 상실입니다.

 

언어에 관한 주제 특히 거짓말과 진실한 말에 초점을 맞춰 잠언 12장을 읽어 보라. 우리가 여기서 찾을 수 있는 정직과 거짓에 대한 기별은 무엇인가?

철학자 시셀라 보크(Sissela Bok)는 거짓이 사회에 얼마나 유해한지를 설득력 있게 예증하며 이렇게 적고 있다. “구성원이 진실한 메시지와 기만적인 메시지를 구별하지 못했던 사회는 멸망하였다.” - Lying: Moral Choice in Public and Private Life (New York: Pantheon Books, 1978), p. 19. 보크의 서론에 따르면 아우구스티누스도 이렇게 말했다. “진실에 대한 관심이 붕괴되거나 다소 약화되기만 해도 모든 것이 묘연해진다.” - 상동, xv.

엘렌 화잇은 이렇게 말했다. “거짓을 말하는 입술은 하나님께 모독이 된다. 그분은 ‘점술가들과…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고 선언하신다. 진실한 말이 정직하지 않은 손과 불확실한 이해에 붙들리지 않게 하라. 그것으로 하여금 생명의 일부가 되게 하라. 진리를 아무렇게나 취급하고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감추기 위해 그것을 모른 체 하는 것은 믿음의 파선을 의미한다.… 허위를 말하는 자는 싸구려 시장에 자신의 영혼을 팔고 있는 것이다. 그의 거짓은 위기 상황에 도움을 주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래서 공정한 거래로는 얻을 수 없는 사업의 확장을 이루는 것처럼 생각할 것이다. 결국 그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자신이 거짓말쟁이다보니 다른 사람의 말도 믿을 수 없게 된다”(My life Today, 331).

언어의 엄청난 감화력을 생각한다면 거짓말 역시 말이기 때문에 그러한 영향력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거짓말을 들을 때에 상처와 배신감, 모욕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거짓을 비정상적인 것보다 더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는 사회가 총체적인 혼란에 빠지리라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교훈 : 거짓말은 그것을 말하는 사람뿐 아니라 그것을 허용하는 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쳐 마침내 그 사회에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부가적용)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낸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 진실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오직 진실을 말하는 자여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주 안에서 한 몸의 지체가 되었으므로 서로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에베소서 4: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냅니다. 그는 옳은 것을 말합니다. 진실과 의는 함께 갑니다. 옳은 것은 참된 것이며 불의한 것은 거짓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다 옳습니다. 사람이 진리를 말한다면, 하나님의 법이 옳다는 것과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과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할 것입니다. 사람이 진리를 말한다면, 옳은 것을 말할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법의 의를 나타낼 것이며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나타낼 것입니다. 본문은 그러나 "거짓 증인은 궤휼을 말한다"고 말합니다. 거짓말은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거짓은 마귀의 죄악입니다. 예수께서는 마귀가 거짓말쟁이이며 거짓의 아비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8:44). 또 거짓말하는 자는 지옥에 들어갈 만큼 거짓말은 큰 죄악입니다(계 21:8). 거짓 증인은 궤휼을 말합니다. 궤휼은 거짓을 뜻합니다. 거짓 증인은 사실을 사실이 아니라고 증거하며 사실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 증거합니다. 그는 의와 선을 불의와 악이라고 증거하며 불의와 악을 의와 선이라고 증거합니다. 진실과 의는 하나님의 속성이며 하나님의 세계의 덕목이지만, 거짓과 불의는 마귀의 속성이며 마귀 왕국의 악입니다. 거짓과 거짓말은 성도에게 합당치 않습니다. 우리는 진리와 진실만 말하는 자가 되고, 의만 나타내는 자가 됩시다. 우리는 결코 거짓 증인이 되지 말고, 거짓말하는 자가 되지 맙시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의 거짓말은 자신에게 얼마나 파괴적입니까?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다른 각도에서 보면 거짓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어떤 사람들은 습관이 되어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하는 반면 아직도 많은 사람이 거짓을 말할 때 일종의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낀다. 이것이 바람직한 이유는 아직도 성령에 대한 감수성이 남아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혀 망설이지 않고 거짓말을 내뱉는 사람은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 적용 |

그대의 입술에서 꼭 제거해야 하는 ‘하얀’ 거짓말(스스로 선의라고 생각하는 거짓말)은 무엇입니까?

 

영감의 교훈

우리가 세상과 접촉하는 이유 - “우리는 세상의 거짓된 것에서 영향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도구로서 그분의 진리를 가지고 세상에 영향을 주기 위하여 세상과 접촉하고 있다”(교회증언 7권, 168).

 

기도

아버지, 저는 제 자신이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 거짓인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오직 아버지 앞에서 정직하게 제 모습을 나타내기 원합니다. 저를 고쳐주시옵소서. 거룩한 불로 제 마음과 입술을 정결케 해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다섯째날(목) 1월 29일 의인들이 받을 보상

 

“재앙은 죄인을 따르고 선한 보응은 의인에게 이르느니라”(잠 13:21).

 

교사강해 5)

재앙은 죄인의 뒤를 따라다닙니다. 여기에서 '따른다'고 번역된 말(라데프)는 '추적한다'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이 말은 어떤 대상을 집요하게 추적해서 반드시 따라잡는 것을 의미합니다. 재앙은 집요하게 죄인의 뒤를 추적해서 반드시 그 죄인을 따라 잡아 파멸로 이끕니다. 죄인은 죄를 범하면서 자신이 하는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는 자신이 범한 일에 대해 아무런 심판이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죄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오랫동안 기다려 주십니다. 지혜자는 이러한 때에 즉시 회개하고 죄에서 떠납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심판이 즉시 임하지 않는 것을 보고, 더욱 담대해져서 죄를 짓다가 갑자기 재앙이 임하여 멸망하게 됩니다. 때로 악인이 세상에서 재앙을 당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죄의 열매는 다음 대에 나타나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가 죽은 후에 하나님 앞에 가서라도 반드시 거두게 됩니다

 

잠언은 두 종류의 대조적인 사람들을 빗대어 수많은 교훈과 가르침을 제시하였다. ‘지혜로운 자는 이렇게 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저렇게 한다’, ‘경건한 자들은 이렇게 하지만 악인들은 저렇게 한다’는 식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우리 모두에게는 지혜로움도 있고 어리석음도 있다. 예수님을 제외하면 우리 모두는 죄인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롬 3:23)한다. 그러나 그 다음 절에 아름다운 약속이 있다. 비록 우리는 죄인이지만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롬 3:24)을 수 있다. 결국 인류는 구원을 받든지 아니면 멸망을 당하든지 둘 중 하나에 속하게 될 것이다.

요 3:16을 읽어 보라. 모든 인류가 양자택일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잠언 13장을 읽어 보라. 이 장은 의인들의 경험과 운명을 악인들의 경험과 운명에 어떻게 대비시키는가?

잠언 13장은 지혜로운 자를 오래가는 등불로 비유한 반면 악인은 꺼져가는 등불에 비유했다(잠 13:9). 지혜로운 자는 자신이 한 일에서 얻는 좋은 결실을 누릴 것이지만, 죄인들은 악을 거둘 것이다(2, 25절). 지혜로운 자는 자손들로 인해 그들 이후에도 미래가 확실하지만, 악인은 그 재산을 모르는 사람 즉 의인들에게 남기게 된다(잠 13:22).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의 생애가 불순종과 어리석음의 생애보다 훨씬 낫다.

 

교훈 : 우리는 모두 때로는 지혜롭고 때로는 어리석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의인들은 마침내 영생의 상급을 얻을 것이다.

 

부가적용)

재앙은 악인의 뒤를 추적하지만, 선한 열매는 의인의 뒤를 쫓아 다닙니다. 재앙이 끝까지 죄인을 추적해서 따라잡듯이, 선한 보응 역시 의인을 끝까지 추적해서 그에게 축복이 임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서 물 한 그릇을 대접한 것도 결코 그 상급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물론 의인이 행한 일에 즉시 그 보응이 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때가 되면 우리가 행한 선한 행위에 대해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를 행할 때에 낙심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려움 속에서 인내하면서 끝까지 선을 행하면, 반드시 선한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혹시 우리의 선행이 당대에 열매를 거두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다음 대에 나타나기도 하고, 또 하나님 앞에 갔을 때에 적절한 상급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지혜자는 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하여, 선하고 의로운 열매를 거두는 삶을 살아갑니다. 의인은 선한 행실로 빛을 발하고, 참된 기쁨이 없는 악인은 패망으로 끝납니다. 여기서 “교만”은 과장된 자아를 의미하는데, 자신의 약점과 어리석음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다른 이들과 심한 의견 충돌과 다툼을 빚게 됩니다. 11절에 나오는 “망령되이”는 히브리어로 ‘헛되다’라는 의미로, “망령되이 얻은 재물”이란 불법적으로 남을 속여서 빨리 모은 재물을 말합니다. 반면에 “손으로 모은 것”은 자신의 능력대로 최선을 다해 정당하게 모은 재산을 가리킵니다. 지혜는 그를 소유하는 자를 황폐한 삶의 공포에서 살려냅니다. 어떠한 위험, 심지어 “사망의 그물”까지도 피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지혜가 없는 사람은 교만하여 다른 이들과의 갈등을 자초하는 반면, 현명한 사람들은 새로운 의견과 생각에 열려 있습니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가 의를 선택하기 때문에 현재와 미래에 얻을 보상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어리석은 자의 선택을 좌우하는 요인은 당장의 이득이나 충동적인 욕구와 감정입니다. 반면 지혜로운 자의 선택은 원칙과 올바름, 불변의 가치와 기준에 좌우됩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불확실성에 약해지지만 지혜로운 자는 안전한 결말을 약속 받습니다. 우리도 본질적으로 어리석지만 믿음으로 말미암아 지혜롭고 의로운 자들의 상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적용 |

그대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어떤 면에서 지혜로워졌다고 생각합니까?

 

영감의 교훈

영생의 상급을 위한 노력 - “영생을 얻기 위하여는 노력이 필요하다. 승리자가 되는 것은 오직 오랫동안 인내하는 노력, 고된 훈련, 엄격한 투쟁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광야의 유혹을 승리하신 ‘승리자’의 이름으로 그분이 승리하신 것처럼 인내하며 단호하게 승리한다면, 영생의 상급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의 노력과 자아 부정, 그리고 인내는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물의 무한한 가치에 상응하는 것이어야만 한다”(증언보감 1권, 115).

 

기도

아버지, 어리석은 저를 믿음의 세계로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만히 두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제가 영원한 천국의 삶을 약속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어리석은 것에 현혹되지 않고 이 믿음과 선택을 끝까지 붙잡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여섯째날(금) 1월 30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공언(公言)하고 우리 이름이 교회 녹명책에 기록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가 어떠한 공언을 하든지 우리의 옳은 행실로 그리스도를 드러내지 않는다면 그 공언은 아무 소용이 없다”(실물교훈, 312~313).

 

“그리스도의 시대에 사람의 마음의 가장 큰 기만은 진리에 동의만 하면 의가 성립된다는 생각이었다. 모든 사람의 경험으로 보아 진리에 대한 이론적인 지식은 영혼을 구원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가장 어두운 역사의 장(章)들은 완고한 종교가들이 범한 죄악의 기록으로 채워져 있다.… 같은 위험이 지금도 존재한다. 많은 사람이 단순히 어떤 신학적 교의(敎義)에 동의하기 때문에 자신이 당연히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진리를 실생활에서 실천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을 진실하고 친절하고 참고 관용하고 거룩한 마음을 갖도록 하지 못한다면 그러한 신앙을 소유한 자들에게 저주가 되고 그들의 감화로 말미암아 그것은 세상에 저주가 된다.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의는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뜻에 마음과 생애를 일치시키는 것이다”(시대의 소망, 309~310).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우리의 선택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선악간에 영향을 미치는지 토의해 보십시오. 이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러한 진실을 나타내는 첫 번째 예는 바로 타락의 이야기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선택은 오늘날까지 우리 각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선택이 가져온 선과 악의 정도를 측정하려는 시도는 솔깃하기는 하지만 실패로 끝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선택이 가져온 결과가 어느 정도까지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그분의 율법에 비춰볼 때 결과가 어떨지에 대한 두려움과 상관없이 우리가 옳은 일을 하기로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➋ 잠언은 의인과 어리석은 자를 예리하게 구분합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으로부터 무엇이 옳고 그른지 깨닫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리석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에 대해 매우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반면 우리가 한때 의롭다고 여겼던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이 속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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