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과 유다의 마지막 다섯 왕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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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과 유다의 마지막 다섯 왕
기억절 :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22:16)
첫째 날(일) 요시야 왕의 치세에서
*도입질문: 요시야 왕은 어떤 왕이었나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이번 과에서는 남방유다의 마지막 다섯 왕을 살펴볼 것입니다. 남방 유다는 20명의 왕이 있었는데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 왕 이전에 있었던 16번째 왕이 바로 요시야입니다. 요시야는 기원전 640년-609년에 왕으로서 나라를 다스렸고 왕이 될 때의 나이가 8살이었습니다.
그의 조부는 므낫세였고 그의 아버지는 아몬이었습니다. 그들은 남방 유다 역사 가운데 가장 악한 왕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철저히 하나님을 떠나 우상에 빠졌고, 그들의 통치로 인해 남방 유다 모든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요시야가 하나님 편에 섰다는 것이 기적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요시야가 하나님 편에 굳게 설 수 있었던 이유는 성전에서 발견한 율법책 때문이었습니다. 율법책에서 발견한 참된 진리를 따라 성실히 따라갔을 때 자연스럽게 우상을 버리게 되었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지도자의 영향력은 그 나라 전체에 미쳤습니다. 요시야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그런 삶을 살자, 신하들과 백성들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요시야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우상 숭배에 빠져서 나오지 못했던 이유는 성령이 그들에게는 역사하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성령이 주시는 사랑의 호소를 그들이 철저히 거절했기 때문입니다.(사34:21)
요시야에게 역사하셨던 성령은 “죄가 많은 곳에 은혜를 더 주시는”(롬5:20) 하나님의 품성대로 요시야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역사하셨지만, 그럴수록 그들은 성령의 호소를 무시하고 사단이 주는 악한 정신에 사로잡혀 우상에 집착하게 된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귀에 들려주시는 사랑의 호소에 민감하여야 합니다.
둘째 날(월)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
*도입질문: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을 통해 배울 교훈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요시야가 죽고 난 후에 왕이 된 사람은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였습니다. 그런데 여호아하스는 당시의 강대국이었던 애굽과의 관계를 좋게 생각하지 않음으로 애굽의 바로에 의해 애굽에 끌려가서 그곳에서 죽었습니다.(대하36:4, 왕하23:31-34)
그래서 여호아하스 대신 여호아하스의 동생인 여호야김이 왕이 되어 남방유다를 다스렸습니다. 여호야김은 애굽에 의존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애굽이 강대국이기 때문에 애굽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바벨론으로부터도 안전할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남방 유다가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거부함으로 하나님의 안전보호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므로, 바벨론이 침공할 것인데 저항하지 말고 포로가 되어 70년을 견딘 후에 돌아오라는 기별을 무시하고, 애굽에 의존함으로 하나님을 정면으로 거절하였습니다. 또한 애굽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애굽에게 조공을 바쳐야 했으므로 이 일을 위해 백성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거두어 들였고, 백성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호화로운 궁정을 짓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아버지 요시야의 영향력 속에 가장 깊숙이 있었던 두 아들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하나님도 함께 버렸습니다. 가정의 영향력은 가족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긴 하지만 자신의 신앙, 자신의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간접적인 신앙의 경험은 위기의 때에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게 합니다.
가정의 신앙적 분위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모든 가족들이 각각의 하나님을 알아가는 신앙입니다. 어린 자녀들도 그 자녀의 나이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알 수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해 온 가족이 함께 영향력을 발휘하는 가정은 심히 아름다운 가정입니다.
셋째 날(화) 여호야긴의 짧은 통치
*도입질문: 여호야긴은 어떤 통치력을 보여주었나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여호야김이 죽은 후 그 뒤를 이은 왕은 여호야김의 아들인 여호야긴입니다. 그는 남방유다의 19번째 왕이었습니다. 여호야긴은 18살 때 왕이 되었고, 겨우 3개월 반 동안만 왕으로 통치하였습니다.
기원 전 597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남방유다를 재차 침공하였고 이 때에 여호야긴과 왕모와 왕비들과 여러 왕족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리고 포로생활 37년째인 기원전 561년에 느브갓네살의 후계자인 에윌므로닥에의해 사면되었습니다.
바벨론에 있는 동안 여호야긴은 바벨론 왕의 식탁에서 먹었고 자신의 왕복을 입을 수 있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포로가 잡혀간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과 함께 계시며, 그들에게 희망의 기별을 선지자들을 통해 전달하셔서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에 대한 소망으로 현실을 잘 견디도록 하셨습니다.
바벨론에 포로잡혀 온 남방유다 백성들은 바벨론 사람들과 섞이지 않고, 한 곳에서 남방유다 사람들의 공동체를 이루도록 허락되었습니다. 이들을 위해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부르셔서, 절망이 아닌 소망 속에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게 하셨습니다. 같은 기간에 왕궁에서는 다니엘을 통해 하나님은 바벨론 왕과 신하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셨고, 그 영향력으로 바벨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앍게 되어 생명 속에 있기를 소망하셨습니다.
넷째 날(수) 막다른 길의 끝
*도입질문: 남방유다의 마지막왕 시드기야는 어떤 왕이었나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시드기야는 21세에 남방 유다의 왕으로서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전 왕들의 행적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지 못하였고 그 결과 남방 유다는 멸망을 하게 됩니다. 시드기야는 이방 모든 가증한 일을 따라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였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기별을 받아들이지 않고 인간적인 생각속에서 판단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바벨론에게 항복하였다가 기간이 차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시드기야는 애굽과 공조하여 바벨론의 침공을 막아내고자 하였습니다. 바벨론은 597년 바로의 군대를 물리쳤음에도 불구하고 시드기야는 바벨론과 여전히 맞섰고 결국 586년에 많은 희생을 내고 멸망하고 맙니다.
바벨론의 침공은 남방 유다가 하나님을 떠난 결과였습니다. 남방 유다가 하나님을 떠남으로 하나님께서 벌을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결과가 하나님의 보호하심 밖으로 나간 것이었고, 하나님의 보호하심 밖에 나가자마자 바벨론의 호전성이 남방 유다를 침공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남방 유다의 상태를 드러내셨고, 그 결과까지 말씀하심으로 바벨론의 포로가 될 것이지만 반드시 다시 돌아올 것이므로 저항함으로 희생당하지 말고 인내하여 기다리라고 하셨지만 남방 유다사람들은 하나님도 믿지 못하였고, 예레미야의 기별도 거절하였습니다.
사람들의 생각과 판단보다 하나님의 생각과 판단을 신뢰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힘써 하나님을 아는 일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알게 될 때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되고 그 사랑의 감동은 하나님을 나의 개인의 창조주와 구원자로 선택하게 합니다. 그런 상태가 되면 나의 창조주께서 주시는 기별을 받아들이고 따르게 됩니다.
이것이 내 스스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나님께서 내 속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사업들입니다.
다섯째 날(목) 암흑의 세월
*도입질문: 하나님을 떠난 남방 유다인들과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소망은 무엇이었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하나님을 떠나는 선택의 결과로 인해 고통은 매우 컸습니다.(렘2:19) 선택의 자유를 주시는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나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에게 성령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생명의 길로 돌아오도록 호소하시지만 강제하지는 못하십니다. 성령의 호소가 무시되어질 때, 그래서 그들의 선택을 인정하실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은 말 할 수없는 가슴 아픔을 경험하십니다. 주고 싶지만 거절함으로 주지 못하는 사랑에 하나님의 가슴은 터질 듯이 답답하십니다.(호11:8)
그리고 하나님을 거절함으로 만들어지는 고통에 하나님은 남방 유다 백성들과 함께 하시고 새로운 희망의 기별로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십니다.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것이고 예루살렘이 회복과 재건이 되어 약속된 메시야가 오시리라는 희망의 기별을 주셨습니다.
우리들의 삶이 절망의 연속처럼 보이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에게 희망의 기별은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편(시118:6)이시며 우리를 데리러 오시겠다는 약속(요14:1-3)입니다. 약속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크기가 희망의 크기가 됩니다.
우리의 삶에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알아갈 때, 모든 고통과 답답함의 상황도 넘어서게 되는 믿음이 만들어집니다.(고후4: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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