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과 예레미야서의 교훈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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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과 예레미야서의 교훈
기억절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렘 23:5)
첫째 날(일) 예레미야의 하나님
*도입질문: 선과 악의 대논쟁의 중심이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선과 악의 대논쟁의 핵심은 하나님의 품성에 관한 것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하여 하나님의 품성인 무조건적인 사랑은 우주의 질서를 위해서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단은 “하나님의 능력은 원했지만 품성은 원치 않았습니다.(시대의 소망 영문, 435쪽) 조건적인 사랑으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판단하게 되자 무조건적인 사랑은 위험해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무조건적인 사랑은 죄가 많은 곳에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은혜를 더 해주기 때문입니다.(롬5:20)
이런 사랑은 한다면 우주의 모든 거민들이 하나님을 떠날 것이기 때문에 우주의 질서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 대신 자신의 생각인 조건적인 사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생각은 사랑이 갖고 있는 생명적 에너지를 모르기 때문에 생긴 오해입니다. 사랑은 죽음처럼 강(아8:6)하며 죽음보다 강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신의 영원한 죽음을 십자가에서 선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지신 무조건적인 사랑과 사단이 생각하는 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논쟁이 대논쟁(대쟁투)의 핵심이며, 예레미야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은 무조건적인 사랑이었습니다. 렘 31:3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렘 3:7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게로 돌아오리라 하였으나…” 그러나 이런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끝까지 거부하여 강제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품성대로 그들의 선택을 인정하면 그것은 생명과의 단절로 죽음이 되는데 그때에도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그들의 선택에 대한 모든 결과를 하나님 자신에게 돌려서 렘 11:22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청년들은 칼에 죽으며 자녀들은 기근에 죽고”라고 표현하십니다.
글로만 보면 오해할 수 있는 하나님의 품성을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13:8)는 말씀에 의지하여 볼 때 그 글속에 하나님의 책임지시는 사랑의 품성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반응이 회개입니다.(롬2:4) 회개해야 사랑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감동이 자신의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오해와 생각에 대하여 회개하게 됩니다.(욥42:5-6)
둘째 날(월) 종교의식과 죄
*도입질문: 종교 의식 속에 있어도 하나님은 그것을 죄라고 하실 수 있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성경이 말하는 죄의 정의는 사망입니다.(롬6:23) 죄의 동의어는 악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악의 정의는 생명이신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 대신에 자신의 행위(종교의식 포함)로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끊임없이 “율법의 행위”(갈2:16)에 의지하는 것입니다.(렘2:13)
성경은 하나님 자신이 생명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요14:6)
종교적 의식이 율법의 행위로서 구원받고자 하는 모든 행위들은 그것이 거룩해 보이고, 선한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만이 생명임을 거절하는 것이 됨으로 모두가 사망 즉 죄와 악입니다.(사1:11-13)
종교 의식을 제정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창3:21) 하나님이 제정하신 종교 의식의 핵심은 제단 위에 올려 져서 죽는 어린 양이 우리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제단 위의 어린 양으로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게 하는데 있습니다. 잘 못한 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사망 때문에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대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게 하는데 종교 의식의 핵심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볼 때(롬5:8) 그 사랑에 의해 사랑이 일깨워지고 그 사랑에 끌려지게 됩니다.(요12:32)
종교 의식에서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보지 못하면 그 의식은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종교 의식에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볼 때 그 사랑에 반응하게 되고, 그 반응이 회개이며 순종이며 감사와 찬송입니다.
셋째 날(화) 심령의 종교
*도입질문: 종교 의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종교 의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종교 의식에 참여하는 자들의 마음입니다. 종교적 행위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의식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나의 마음의 반응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인류를 다 용서하시고 사랑하시고 구원하셨지만, 그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개별적인 반응에 의해 개별적으로 구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품성이 무엇임을 가장 잘 드러냅니다. 십자가에 보여 진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의 심령을 주님께로 끌리게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행복하게 살기 위해 태어났으므로, 창조주의 사랑에 끌리게 되어 있습니다.
감동을 주는 사랑은 조건이 없을 때의 사랑입니다.
십자가에서 보여 진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게 될 때, 그 사랑에 대한 감동은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강력한 능력이 됩니다.(롬8:35-39)
넷째 날(수) 우상들의 황혼
*도입질문: 우상들은 헛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우상숭배에 빠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우상들은 사람들이 만들었습니다.(렘10:3-5) 그래서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생명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든 우상에게 끌리고 의지합니다. 왜냐하면 우상들에게 사람들이 가진 조건적인 품성을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만든 모든 우상들은 사람들의 품성처럼 조건적입니다. 사람들의 정성과 노력에 따라 우상들이 반응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우상들을 만들었고, 사람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우상 역시 사람들의 품성인 조건적 품성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품성대로 우상을 만들고 자신들이 생각할 때 맞다고 생각하는 품성을 우상에게 투영하여, 우상들에게 지극정성을 다 한 후에는 그 정성에 맞는 보상을 우상으로부터 기대하는 것입니다.
우상들은 사람들의 눈에 보입니다. 사람들의 손에 만져집니다. 보이고 만져질 때만 믿는 사람들의 한계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시는 하나님보다, 존재하지 않지만 자신들이 만들어 보고 만지게 되는 우상에게 끌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이고 만져지는 현상들이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고 계신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하나님이 발견될 때 만들어집니다.
다섯째 날(목) 남은 자들
*도입질문: 성경은 남은 자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나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예레미야 당시에도 대 다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에 빠지고 멸망과 포로로 잡혀갔어도 여전히 남은 백성들이 존재하였습니다. 그들은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 지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중요한 책임이 있었습니다.
남은 자에 대한 사상은 예레미야 시대 뿐만 아니라 아담의 시대로부터 세상 마지막까지 계속하여 보증하고 있는 사상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구원이 하나님 자신에게 있기에, 하나님만이 사람들의 유일한 생명임을 알고 그 지식을 전달한 사람이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남은 자는 혈통이나 조직에 속하기 때문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여자의 씨(예수님)의 남은 자손”(계12:17)이므로 예수님을 통해 무조건적인 사랑의 품성을 아는 사람들로 구성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졌습니다. 계명을 명령이 아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실 약속으로 이해하고 예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통해 예수님에 대하여 말할 것이 있는 사랑의 증거를 가져서 예수로 난 믿음(계14:12)으로 예수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의 진리를 가졌기 때문에 남은 자가 아니라 성경의 진리인 예수님과 사랑의 교제 속에서 예수님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 자가 남은 자이고, 예수님의 품성을 아는 남은 자손들을 통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생명의 기별을 증거하고 싶어합니다.
“이 세상을 덮고 있는 어두움은 하나님께 대한 오해의 어두움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지혜와 지식을 잃어버리고 있다. 그러므로 많은 부분들에서 하나님의 품성을 잘 못 이해되며 그릇 해석되고 있다. 이러한 어둠이 깊어져 가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기별이, 그 빛이 어둠에 전해져야 한다. 이 기별은 광범위한 감화력과 구원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바른 이해가 널리 알려지게 해야 한다. 이 어두운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의 빛 곧 그분의 인자와 긍휼인 그 진리의 빛을 비춰 주어야 한다.... 세상에 비칠 ‘마지막 자비의 빛’, 세상에 전파 되어야 할 ‘마지막 긍휼의 기렵’은 곧 하나님의 사랑의 품성을 드러내는 것이다.”(실물교훈 415-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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