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과 대 쟁투를 벌이는 베드로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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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 11 과 대쟁투를 벌이는 베드로
기억절: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첫째 날(일) 어둠에서 빛으로
*도입질문: 우리는 언제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졌나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어둠은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이 처한 사망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빛이란 빛이신 하나님(요일1:5)과의 사랑의 관계를 통해 생명이 연결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어둠에서 빛으로의 전환은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시작점은 우리의 선택과 상관없이 창세전에 예수님께서 이미 이루셨습니다.(엡1:4-5) 창조주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책임지는 사랑입니다. 창조주의 의지로 인해 창조할 모든 사람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은 창조 전에 이미 모든 것을 책임지는 사랑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조건 없이, 선택도 하기 전에 모두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것을 담보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과거형)
창세전에 이미 모든 사람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옮기셨으므로 여기에는 사람들의 행위가 전혀 섞이지 않는 완전한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것입니다.(엡2:8-9)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후에 그 후에 성령의 은혜로 그들을 거룩하고 흠 없게 하십니다. 성령 하나님의 강권하시는 사랑으로 인해 하나님의 품성을 보고, 그 품성에 감동케 하셔서 하나님을 개인의 창조주와 구원자로 선택케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빛으로 옮겨지는 순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율법을 명령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으로 받아들이게 하여 율법 속에서 하나님의 품성을 발견하게 함으로, 은혜와 율법이 하나 되게 하셔서 율법 안에 있게 하십니다.(롬3:31- 이때의 율법은 억압하거나 명령하는 율법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약1:25)입니다.)
둘째 날(월) 동료 압박
*도입질문: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지혜는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우리는 이 땅에 처하여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혼자나 혹은 가족끼리만 살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야만 하는 환경이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지혜와 순결이 다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을 “이리 가운데 있는 양”(마10:16)으로 표현하셨습니다. 문 밖에만 나가도 이리들이 우굴거리는 세상의 환경 속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잘 사는 방법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마10:16)하게 사는 것입니다. 이런 삶은 세상에 처해 살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세상에 속해 살지 않는 삶으로 하나님을 중심과 최우선 순위에 두는 삶을 의미합니다. 살아가는 방식과 살아가는 이유가 다르기 때문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이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이 필요하고 지혜와 순결의 삶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비록 세상에 처하여 살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 살 때,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제로 인한 감동의 삶은 세상에 처해 사는 하나님 백성들에게 힘과 용기의 근원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삶의 에너지는 역동적이어서 사망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의 주목을 끌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경험하지 못한 모습으로 인해 그들의 갈증이 더 심해질 것이고, 그들의 갈증은 하나님 백성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통해서만 해결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소수의 입장처럼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창조주 하나님의 세상임을 기억하시고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얻은 사랑의 감동 에너지로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마5:16)
셋째 날(화) 더 확실한 예언
*도입질문: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의 터전에서 얼마나 중요할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어둠이 둘려 있는 이 세상에서의 삶에서 빛이신 하나님을 증거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내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시119:105)입니다.
특별히 성경 그 자체보다도 성경이 증거 하는 예수님(요5:39)을 만나고 그 예수님이 무조건적인 사랑의 감동으로 인해 사랑이 반사될 때, 그곳에 생명에너지가 있으며 어둠을 살만한 빛의 에너지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창조하신 분과 그분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감동될 때에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조건적 사랑이 아닌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을 사람으로 태어난 존재들이므로 그런 사랑을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기까지는 모든 사람들은 허전하고 방황하고 힘든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생명이며 이 땅을 살 수 있는 생명에너지입니다. 사랑은 사랑으로서만 일깨워집니다.
사랑으로 인한 감동은 무조건적이고 지속될 때에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랑을 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때에 모든 사람은 이 땅에 살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의 감동으로 반사되는 사랑이 나타날 때,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순간이 됩니다.
넷째 날(수) 조롱하는 자들
*도입질문: 예수님의 재림을 조롱하는 사람들은 어떤 근거로 재림을 믿지 못할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베드로는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나타나서 예수님의 재림을 믿는 사람들을 조롱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믿지 않는 이유는 세상이 처음 창조된 그대로 지금까지 존재한다는 가설을 근거로 주장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주장은 자신들의 생각 속에 있는 가설일 뿐, 성경의 모든 내용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잘 못된 생각일 뿐입니다. 지구는 여러 번에 걸쳐서 격변이 있었습니다. 가장 심한 격변은 노아의 시대에 있었던 홍수 사건이었습니다. 당시의 혼수는 하늘에서 비가 오는 형태의 홍수가 아니라 땅에서도 물이 솟아나고, 하늘에서도 비가 내리는 형태의 홍수였습니다.(창7:11)
궁창을 만들기 전의 형태처럼 물들이 서로 만나서 하나가 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지구는 대대적이고 전반적인 지각 변동이 있었습니다. 산과 골짜기의 모습이 창조 때의 모습이 아니라, 홍수로 인한 격변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홍수로 인한 격변설을 입증하는 여러 가지 증거들이 세계 도처에서 발견되지만, 그런 증거들에 눈 감고 성경 말씀을 거절함으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에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 상태에서 예수님의 재림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고전12:9) 성령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믿음의 선물을 사람들의 의지로 거부하게 되면 사단이 그 빈 마음을 점령하여 사단이 주는 거짓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마12:43-45)
성령을 구하며,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매일 담대히 나아가는 선택이 중요합니다.(히4:16)
다섯째 날(목) 그 날을 재촉함
*도입질문: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베드로는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권유하였습니다. 이 권유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재림을 바라보고 사모합니다. 그런데 왜 재림을 그렇게 사모하는 걸까요? 재림을 기다리는 주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적극적으로 성령을 구하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은 사단의 영이 지배할 수 있습니다. 사단의 영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게 되면, 우리의 생각과 목적도 사망적인 것으로 변하게 됩니다. 재림을 기다리는 이유 역시 사단이 주는 영의 지배를 받으면 이기심이 작동하여, 재림으로 인해 우리가 누릴 특권들에 초점을 맞출 수가 있습니다. 죽음이 없기 때문에, 아픔과 슬픔이 없기 때문에, 살 집이 있어서..등등.
그러나 그것은 본질을 생각하지 못한 내용들일 뿐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마음을 채우게 되면 재림을 기다리는 이유 역시 성령께서 밝히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주요한 사역이 바로 “세상(세상 사람들)이 잘 못 생각하고 있는 점을 깨우쳐 주”(요16:7 현대인의 성경)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재림도 이기적인 죄의 본성대로가 아니라 성령께서 예수님의 품성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신 것처럼, 그 사랑의 감동으로 그런 사랑을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싶고 간절히 사모하게 되기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게 하십니다.
재림을 기다리고 재림으로 이루어지는 이득으로 인해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재림하시는 예수님과의 사랑 때문에 그 사랑의 대상이 되시는 예수님을 기다리기에 재림이 기다려지고 사모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접하고 그 사랑에 감동되는 삶이 될 때, 새로운 생각의 전환(회개)을 할 수 있고, 그 사랑만이 혹 늦게 오신다 할지라도 기다릴 수 있는 힘을 갖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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