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과 투쟁 중인 교회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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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과 투쟁 중인 교회
기억절: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첫째 날(일) 에베소 교회
*도입질문: 에베소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이었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는 요한 당시에 실제로 존재했던 일곱 개의 교회들입니다. 그러나 요한 당시의 교회에만 한정된 것도 아닙니다. 요한 당시의 교회에 있었던 일곱 교회들이지만, 하나님은 당시의 일곱 교회의 형편을 통해 사도 시대부터 예수님 재림 때까지의 교회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일곱 개의 구분으로 각 시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곱 교회의 특징은 각 성도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는 세 가지의 생각 속에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니골라 당이 갖고 있었던 이설과 맞서기 위해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였습니다. 틀린 교리와 틀린 성경의 해석에 맞서다 보니까 변증적인 교리 해설과 성경 해석에 집중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까 너무나 이론적인 면에 치중되어 무엇이 옳고 바른 것인가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이설에 무너지지 않고 교회는 옳은 교리 속에 굳게 세워졌지만, 너무나 이성적인 면만 발달하다보니까 가슴으로 느끼는 사랑의 신앙은 점점 잃어버려지게 되어 딱딱한 교리와 율법만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교리나 지식은 사람의 마음과 정서에 좋은 감화를 주지 못합니다. 옳고 바른 것인 맞는데 그곳에는 감동은 없습니다. 감동하지 못하는 신앙은 메마른 신앙, 지식의 신앙으로 발전하여 교만에 이르게 합니다.(고전8:1)
예수님은 사랑이므로 예수님의 사랑에 감동될 때, 교리나 지식도 감동의 마음으로 따르고 싶은 마음을 통해 이루어져 나가게 됩니다.
예수님 당시에 교리와 지식으로 머리를 가득 채웠던 종교 지도자들의 마음에는 예수님의 사랑이 있을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교리와 지식이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교리와 지식이 있었어도 예수님을 늘 배척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들의 머리로 연결되지 않고 가슴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가슴이 뜨거워지고 감동될 때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고, 예수님의 말씀에도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에베소 교회의 문제는 마음으로 감동된 신앙이 없다는 것이고, 그것은 아무리 바른 교리와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사랑이신 예수님이 없는 신앙이므로 생명 없는 신앙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심각한 생명이 없는 신앙의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당사자는 심각한 느낌이 없는 이유는 사랑이 생명임을 알지도 못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교리나 지식이 너무나 완벽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은 재림교회의 모습과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사랑에 대한 감동이 없는 교리적 신앙, 바른 것처럼 보이지만 늘 허전한 신앙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으로 인한 감동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회개입니다. 회개란 생각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내 자신의 생각이 교리나 지식의 최우선 순위에서 예수님과 예수님의 사랑으로 그 순위가 바뀌어야만 한다는 생각의 변화가 중요합니다. 이런 생각의 변화를 주시는 분은 성령하나님이십니다. 성령께서만 세상이 잘 못 알고 있는 점을 깨우져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요16:8, 현대인의 성경)
에베소 교회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재림교회를 위한 처방은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품성을 보고 그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인해 기존의 생각(조건적 신앙, 율법적인 신앙, 은혜와 율법을 분리하는 신앙)에 변화를 일으켜서 무조건적인 주님의 사랑에 감동되어 은혜와 율법을 하나로 일치 시키는 신앙의 모습이 절실합니다.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절실합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품성을 보고 감동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첫 사랑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둘째 날(월) 서머나와 버가모
*도입질문: 서머나 교회와 버가모 교회에 있었던 선악의 대 논쟁은 어떤 것이었나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서머나 교회의 시대에 사단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혹독한 핍박을 가하였고, 버가모 교회의 시대에 사단은 핍박 대신 이교와의 통합으로 인한 세속화를 가져왔습니다. 핍박도 어려움을 주었고, 세속화도 하나님을 떠나게 하며, 하나님을 오해하게 하여, 신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전략을 행했습니다.
진리는 왜곡되어 발견하기가 어렵게 만들었고, 하나님의 품성은 극도록 오해하게 만들어서 하나님을 부담스러워하게 만들었습니다. 무서운 하나님, 벌주시는 하나님으로 인식하게 만들어서 신앙하는 것 자체를 어렵게 만들었고, 신앙을 하더라도 다른 하나님(고후11:4)을 믿게 함으로 결과적으로는 생명과 단절되고 종교적인 형식만이 강조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보여 지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오해로 인해 신앙에 기쁨이 사라졌고, 부담만 가중되는 오늘날 교회의 모습입니다.
사단이 주는 어려움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확신을 갖고 하나님 편을 선택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바른 진리에 굳게 서서 이설로부터 벗어나야 하고, 진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 진리가 더욱 견고해져야 합니다. 사단의 다양한 시험으로 성도들이 하나님 편에서 떨어져 나가길 기대하지만, 하나님으로 인한 사랑의 감동은 핍박에서도 견디게 하고, 세속화에서도 빠지지 않게 합니다.
셋째 날(화) 두아디라와 사데
*도입질문: 두아디라 시대와 사데 시대의 암흑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호하셨나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두아디라 시대는 영적 암흑기의 시대였습니다. 말씀도 없었고, 진리도 없었고, 사람들이 만든 잡다한 짐들만 무겁게 내리 눌렀습니다. 신앙하는 기쁨과 감사보다는 행위 위주의 신앙으로 인한 부담스럽고 고통스러운 신앙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고행과 행위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신앙으로 인해 전혀 다른 하나님을 믿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품성과 진리를 간직한 소수의 남은 자들을 준비하셨고, 진리 속에 있는 생명의 불꽃을 작지만 끊어지지 않게 보존하게 하셨습니다.
소수이긴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불꽃에는 생명이 있으므로 또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가 있었고, 더 큰 불꽃을 위해 준비되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말씀과 말씀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을 통해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가진 소망의 이유로 인해 하나님 편에 굳게 설 때 하나님은 작은 불꽃을 통해 큰 불을 일으키실 수가 있으셨습니다.
넷째 날(수) 빌라델비아 교회
*도입질문: 빌라델비아 교회가 칭찬 받았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빌라델비아는 유일하게 책망이 없이 칭찬만 있는 교회였습니다. 형제 사랑으로 똘똘 뭉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고, 말씀에 있었던 하나님의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교회였습니다.(요일4:7-8)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지속될 때 비록 작다 할지라도 그곳에 생명력이 있습니다.
모든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의 감동 속에 거하게 될 때 생명력 충만하며, 부흥과 개혁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교리나 지식도 생명을 위한 귀한 도구들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 회복입니다.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하지 않고, 무조건적인 사랑의 확신에 따른 믿음이 세상을 이기는 힘입니다.(갈5:6, 요일5:4)
다섯째 날(목) 라오디게아 교회
*도입질문: 라오디게아 교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무엇이며 그것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라오디게아 교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예수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관한 것은 많은데 정작 예수님과의 사랑의 교제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감동은 없어서 생명력이 없는데, 교리나 지식으로 모든 것을 가졌다고 착각함으로, 가장 중요한 것을 잃었으면서도 잃어버린 사실 조차도 모르고 있는 점이 가장 심각합니다.
예수님이 없는 신앙은 껍데기 신앙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감동된 신앙이 아닌 신앙은 종교적 형식만 있는 신앙일 뿐입니다.
오늘날 재림교회의 모습과 많이 닮아 보입니다. 교리는 완벽하지만 신앙에 감동이 없습니다.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뜨거움이 없습니다. 밋밋한 신앙, 교리만 붙들고 있는 모습이 라오디게아 교회와 흡사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해봐야 합니다. 의무와 순종보다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감동이 우리로 하여금 의무와 순종을 즐겨하고 싶게 만듭니다.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에 감동할 때만 우리에게 주신 의지의 자유로 예수님을 선택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감동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과의 개인적인 교제를 통해 깊게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인해 말씀 속에서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의 사랑에 접촉되어야 합니다. 사랑할 때 생명력이 있게 되고, 생명력은 믿음을 만들어냅니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갈5:6)이 하나님의 뜻에 즐겨 순종하고 싶은 힘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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