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과 구약의 믿음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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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과 구약의 믿음
기억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3:13)
첫째 날(일) 어리석은 갈라디아인들
*도입질문: 갈라디아인의 어리석음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갈라디아 교인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의 복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 은혜를 믿음으로 감동 속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선택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감동의 신앙에서 자신의 행위를 더 우선시하는 신앙으로 바뀌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갈라디아 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확신의 믿음에서 자신의 행위를 믿는 신앙으로 바뀌었을까요? 그런 신앙이 어리석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담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그의 마음에 자리 잡았던 죄의 본성은 교만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을 때 생명의 빛이 사라졌습니다. 그때 그들이 한 행위는 스스로 그 빛을 대신하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해 입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자마자 새로운 본성이 만들어졌습니다. 사단이 주는 거짓말로 인해 하나님 없이도 스스로 살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어리석은 생각과 행동인데, 그 이유는 하나님을 떠나는 선택을 한 순간 그것은 하나님과의 분리로 인해 하나님 보시기에 죽었기 때문에 죽은 사람이 하는 모든 행동은 하나님 보시기에 다 죽은 행실이기 때문입니다.(히6:1)
하나님 보시기에 죽은 행실임에도 불구하고 그 행위가 스스로의 구원을 위해 행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어리석은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유일한 생명이 되심을 성령의 은혜로 지속적으로 받아들이고 믿어야 합니다.
둘째 날(월) 성경에 근거를 둠
*도입질문: 바울이 가르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진리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바울 당시의 성경은 구약 성경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구약 성경의 말씀을 통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설명하였습니다. 흔히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진리는 신약 성경에서만 나오는 진리로 생각하지만 구약 성경 역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의 초점은 예수님입니다.(요5:39) 예수님이 누구시며 그가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품성을 바라보고 깨달을 때 예수님이 나의 창조주이며 구원자가 되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시는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구원이 확정됨을 확신하게 됩니다.
셋째 날(화) 의롭게 여김을 받음
*도입질문: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이유는 믿음 때문일까요? 순종 때문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의 작품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갈 바를 알지 못하여 나왔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지만, 그 이후의 삶은 믿음 없음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연속이었습니다. 아내를 아내라고 부르지 못하고 자신 목숨을 위해 누이라고 부르기로 하였고,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한 약속의 아들이 태어날 것을 믿지 못하여 이스마엘을 낳게 되었고, 계속되는 하나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믿음 없는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밤 하늘의 별들을 보게 하셨고, 바다 모래를 보게 하셨습니다. 수 없이 펼쳐진 별들과 모래들처럼 수 많은 자손들이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 태어날 것을 시각적 확신이 들도록 이끄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람과 사래의 이름을 아브라함과 사라로 바꾸셔서 그 이름의 의미인 열국에 아비와 열국의 어미라는 단어가 익숙해지게 하셔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태어나게 하실 아들에 대한 확신이 자연스럽게 들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약속의 아들 이삭이 태어났을 때 아브라함과 사라는 자신들이 믿음 없음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느끼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롭다고 선언하실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작품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기게 되자 그 믿음대로 순종할 수 있는 능력도 없게 되었습니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갈5:6)이 억제할 수 없는 순종의 마음이 들게 하여 순종하게 하십니다.
넷째 날(수) 구약의 복음
*도입질문: 구약 시대에는 율법만 있었고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가르쳤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율법은 율법을 주신 분의 품성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은 하나님 품성의 사본이라고 말합니다. 율법에는 하나님의 품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요5:39) 율법에서 그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품성을 발견하고 그 하나님으로 인한 확신의 믿음을 갖게 하고자 한 것이 구약에서 율법을 주신 목적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언약이라고 불렀고, 언약의 핵심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실 것에 대한 약속입니다. 율법(성경)을 주신 분의 입장에서 바라보지 않으면 율법은 행위로 말미암는 의를 가르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습니다.
율법(성경)의 주제는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의 품성입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의 품성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인 율법에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느낄 때 감동이 오고 그 감동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선택하게 됩니다.
다섯째 날(목) 저주로부터 구원받음(갈3:9-14)
*도입질문: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는 자는 저주 아래 있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스스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믿음입니다. 이런 생각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악입니다.(렘2:13) 나면서부터 이미 하나님과 분리되어 태어남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사망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할 수 있는 일이 죄의 일들 밖에 없으며(엡2:3) 죽은 행실 뿐이므로 어떠한 것을 행한다 할지라도 생명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 상태는 하나님 보시기에 사망의 상태이므로 저주 아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상태에 대한 해석을 마치 하나님께서 저주하시는 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에서의 모든 행위들이 사망이기에 하나님께서 또 저주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상태는 사단이 지배하는 저주의 상태 속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위치가 나면서부터 이미 죽은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행위(십자가에서의 죽으심)만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임을 깨달고 그런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하여 하나님에 대한 신뢰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생명의 소망이 생기고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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